[스페셜1]
박찬욱·홍상수 인터뷰 [4] - 홍상수 감독 인터뷰 ①
2005-01-11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영화가 주는 영향을 보는 게 흥미로웠다”

신작 <극장전> 촬영 중인 홍상수 감독 인터뷰

홍상수 감독은 여섯 번째 영화 <극장전>에서 자신이 다루는 매체인 영화를 소재로 삼는다. 하지만, <극장전>은 영화 역사 기술에 대한 애정에서 발동한 것도 아니고, 영화의 자기 반영적 매체성에 대한 매혹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다. 이건 홍상수의 영화다. 사람들이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그 삶의 일부에 호기심을 품거나, 의문을 던지면서 선택된 무엇이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고, 그러고도 그 영화에 영향을 받고, 또 모방을 하고, 그 모방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익숙한 세계의 낯선 감각’은 또 한번 열리는 것이다.

<극장전>의 골자는 영화 속 영화와 영화 속 현실이다.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 상원(이기우)과 여자(영화 속 현실의 여배우 최영실이 이 인물을 연기한다)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쯤에 놓여 있고, 그들은 뭔가 또 귀여운 짓들을 할 테고, 그 영화를 본 영화 속 현실의 영화감독 동수(김상경)는 우연히 배우 최영실을 만나게 되고, 필시 그녀와의 이야기는 엎치락뒤치락 진행될 것이고, 영화 속 영화와 영화 속 현재의 시간 및 장소와 행동들은 “모방과 반복”이라는 구조로 돌아가며 서로를 묶어낼 것이다.

거칠게 보면 분명 여전히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되풀이할 것 같다. 그런데 <극장전>에는 처음 시도되는 것들이 많다. 홍상수 감독은 처음으로 제작사 ‘전원사’(회사 앞에 그냥 정원이 하나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를 차렸고, 그동안 2년에 한편꼴로 만들어오던 사이클을 반으로 줄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후 거의 1년 만에 다시 후속작을 만들고 있다. 새로운 배우들하고만 작업해오던 규칙을 깨고 <생활의 발견>에 이어 김상경과 두 번째로 작업하는 것은 어쩌면 <극장전>을 예상해볼 수 있는 키워드가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다른 두 주인공 이기우와 엄지원은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 중 가장 어린 나이의 역할을 맡는다. 그뿐만 아니라, 고정되어 있던 프레임은 이제 분방하게 움직인다. 그것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패닝 정도가 아니라, 현란한 줌렌즈의 사용이다(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다들 촌스럽다고 기피하는 줌렌즈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것만큼 이채로워 보이는 것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의 사용이다. 그동안 인물의 내면을 들려주지 않던 홍상수의 영화에 드디어 에코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극장전>은 흥미롭다. 하지만 예상은 금물이다. 만들고 있는 그조차도 부닥쳐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만들기도 전부터 너무 많이 말하는 것 같다. 잘못하면 헛소리가 될 수도 있다”고 홍상수 감독이 걱정을 하는 이유는 대략 24회차 남은 촬영 모두가 그렇게 발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촬영 초반이니 소개 차원에서 새 영화 <극장전>에 대한 대략의 설명을 부탁한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어떤 식으로건 짧게는 몇분, 길게는 하루, 이런 식으로 그 영화에 받은 영향 속에 놓여 있을 때가 있다. 어느 땐가 그런 반복적인 일상 경험이 영화의 거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느낀 건 오래됐다. 터프한 마초영화 같은 걸 재밌게 보고 나오면 나도 주인공처럼 담배를 막 그렇게 피우더라. 그런 내 자신이 우습더라. 아, 이런 게 있구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걸 이번에 해보자는 생각이 든 거다. 영화 속에서 받은 영향이 어떻게 나타나나 쳐다보는 것 자체가 다시 곱씹어볼 만한 거리라고 생각한 건, 모방이 심해지면서 다시 자기 반복되는 것이 구조적으로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 구조에 결국은 껴안아서 드러내야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과 태도가 조금씩 살이 붙으면서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다.

-어떤 점에서 <극장전>이란 제목은 영화 내용과 제목 사이에 거리를 두면서 느낌상으로만 연결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비교적 내용을 예상하고 가독할 만한 수준의 제목으로 지어졌다.

=너무 메타영화라는 식으로 받아들일까봐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고, 기존 메타영화에 대한 대한 저항감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는 남들이 그렇게 생각해도 그렇게 안 만들면 되지 하고 부담감을 떨치기로 했다. <극장전>이라는 제목은 하여튼 극장이 나오니까, 그 말을 제목에 넣고 싶었던 것 같고, 어휘에서 오는 감, 읽을 때 느끼는 맛, 전에 어디서 좋게 읽었거나, 익숙하거나, 꽂혀서 남아 있는 어휘의 음감이나 리듬 같은 것들이 선택할 때 영향을 주는 것 같은데,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니까 옛날에 읽은 <만세전>이라는 소설을 내가 잘 본 것 같다. 아마 그게 연관돼서 <극장전>이란 제목이 나온 것 같고, 시점적으로 전, 극장 앞 전, 이야기한다는 전이고, 좋은 제목 같아서 정했는데 프린트 나오기 전까지는 가제 상태다. 다른 제목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보통은 그냥 간다.

-인물은 앞으로도 만들어져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극장전>의 주인공 동수와 상원과 영실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영화 속 영화에서는 상원(이기우)하고 배우 영실(엄지원)이 연기하는 여자가 나오고, 영화 속 현실에서는 배우 영실하고 영화감독 동수가 나온다. 영화 속 영화에서 상원은 재수를 막 시작하는 시점이고, 영실은 고등학교를 중퇴해서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안경점에서 일하고 있다. 영화 속 현재에서 동수는 감독 준비를 한 지 꽤 오래된, 거의 8년에서 10년 정도 했지만 장편은 못 만든 걸로 설정되어 있다. 성격이나 관계 같은 것들은 트리트먼트 쓸 때 잡아놓은 건 있지만, 배우들 만나고 촬영하면서 조금씩 구체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말하는 건 조금 섣부른 것 같다.

-지금까지의 영화 중 가장 어린 나이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화 속 영화의 구조적인 반복도 있겠지만, 영화 속 현실의 인물 동수가 영화 속 영화에 정서적인 반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거고, 소년이 남자로 변화하는 시점이랄까, 그런 원형적인 이야기가 무얼까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 같다.

-김상경과는 두 번째 작품이다. 그러나 같은 배우와 다시 작업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영화관에서 나온 사람을 설정한 다음,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영화감독 준비하는 사람이 떠올랐고, 거의 동시에 김상경이 떠올랐다. 김상경과는 <생활의 발견> 끝나고 나서 관계가 계속 지속됐고, 신뢰 같은 게 있었다. 그 사람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표현해주는 공감이 친밀함이나 애정 같은 걸 많이 키워줬고, 사람으로서 나하고 맞는 것도 있다. 그전에는 사진이나 영화에 나온 배우를 처음 만나서 느끼는 프레시한 맛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어느 땐가부터 이미 했던 사람하고 다시 하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 같은 게 조금씩 생겼다. <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은 할 수 있는 굉장히 많은 걸 했지만, 이번에는 또 어떻게 할지 나도 흥미롭다. 그전에 했던 것이 조금은 반복될 테고, 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이 발견돼서 섞일 거다.

-다른 배우는 혹시 생각해본 사람이 없나.

=없다. 영화 속 영화에 어떤 한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의 대강의 윤곽이 <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이 연기한 것하고 비슷할 거다. 내 전 영화를 다 봤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 관객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한테는 개인적으로 연관점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극장전> 영화 속 영화의 그 장면이 <생활의 발견> 그 장면 전에 있었던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런 연관이 재밌게 느껴졌고, 말이 되는 것 같았다.

-<생활의 발견>을 본 사람이라면 어떤 장면인지 쉽게 알 수 있겠다.

=오늘 촬영하는데, 뚜렷하게 보여지게 될지, 어떨지는 찍어봐야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모방과 반복이라는 모티브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나.

=내가 뭔가 구조화할 때 모방이나 반복이 중요한 틀이라고 생각해서 해보자 하는 건 아니고, 살다보면 그 틀을 사용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일상 현상들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틀들이 있는데, 할리우드의 드라마투르기 같은 게 있을 수 있고, 또 하나는 기존 사회에 통용되는 여러 가지 메시지나 이데올로기가 있을 수 있다. 나는 그 둘 모두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싶은 것 같다. 할리우드의 드라마투르기는 그 안에 소재를 끼워넣었을 때 알게 모르게 강요당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는 것 같고, 또 기존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걸 먼저 정하고 소재를 거기에 끼워맞췄을 때 나타나는 효과가 나한테는 뭔가 발견했다는 느낌을 안 준다. 일단은 그런 것에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생활, 경험이란 걸 해석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틀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지향점을 갖고 구조화를 하는 건데, 그러다보니 우연히 나타난 게 반복과 모방이라는 틀거리다. 몇번 해보다보니 인식하고는 있지만 의도한 건 아니다. 생활이란 덩어리를 해석하는 틀로서 나한테 유용하다는 생각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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