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박찬욱·홍상수 인터뷰 [2] - 박찬욱 감독 인터뷰 ①
2005-01-11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사진 : 오계옥

“구원을 향한 몸부림, 그것이 중요하다”

복수 3부작의 대단원인 신작 <친절한 금자씨> 촬영 중인 박찬욱 감독 인터뷰

스타는 이따금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마련이다. 촬영 대신 편집을 처음 한 날이라고는 하나 박찬욱 감독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설마 사진 촬영을 의식한 감독의 배려? 물론 아니다. 여느때 입던 옷이 빨래통 속으로 들어갈 때가 된 참에 마침 세탁하기 전에 한번 더 입으려고 했던 양복이 눈에 띄었다. 양복을 입으니 입지 않고 쟁여두었던 셔츠를 입게 됐다. 그런데 그 셔츠는 단추를 끝까지 매지 않으면 칼라가 위로 툭 삐져나왔고, 넥타이 없는 정장을 즐기는 데이비드 린치 따라하기도 아니니 할 수 없이 넥타이까지 매게 됐다. 별다른 의도없이 배치된 외모는 매끈한데 눈가에 피곤함이 짙다. 두달 전쯤, 천식 때문에 ‘위기’를 겪고 담배를 끊었는데 금단현상 때문에 잠을 자꾸 설친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평한다. “담배 끊었는데 좋아지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자기 몸에 무심한 듯한 감독이지만 제작사를 직접 차려 촬영에 들어간 <친절한 금자씨>는 하나부터 열까지 치밀한 고안과 계산하에 진행되고 있다. 65회 촬영예정에 지금까지 10회 촬영을 마쳤다. 어렵사리 인터뷰 약속은 받아냈으나 시나리오는커녕 변변찮은 시놉시스조차 얻어볼 수 없었고, 촬영장 접근은 ‘금지’됐다. 도리없이 시나리오를 모니터해주었던 다른 감독과 프로듀서들에게 귀동냥을 청했다. 인터뷰까지 종합해보면, 복수 삼부작의 대단원은 화사하고 서정적인 복수극이다. 모성애와 자매애가 모티브로 작용해 극한적인 복수의 인과율에 따사로운 포옹의 여지를 줄 것이다. 여기에 “어떤 결론을 향해, 미리 잘 배치된 복선과 암시에 의해 퍼즐 맞추기처럼 가는 게 아니고 그냥 물 흐르듯 가는 이야기”가 가벼운 터치의 윤활유로 작동할 것이다. 차갑고 건조했던 <복수는 나의 것>, 정교하게 짜맞춘 활화산 같았던 <올드보이>와 비교하면 스타일과 이야기 양면에서 세 가지 색 연작을 이루기에 알맞아 보인다. 복수라는 테마에 대한 최종 정리도 필요해 보인다. “자신이 추락해가는 걸 의식하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이의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힌트가 될 터이다.

-주변 취재를 해보니 공통적으로 이영애 이야기를 하더라. 시나리오가 이영애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거라는 게 확 느껴지고, 영화가 나오면 ‘이영애론’이 가능할 것 같다고도 한다.

=금자씨는 여고생 때 아무 생각없는 철부지였기 때문에 어떤 ‘실수’를 하게 된다. 그뒤 백 선생과 모종의 범죄를 저지르고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녀 혼자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감옥에 가게 됐다. 그런데 백 선생이라고 하니까 자꾸 백윤식 선생을 말하고 최민식마저도 이거 원래 백윤식씨한테 맡기려고 했던 건데 퇴짜맞고 자기한테 온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아무튼 그 백 선생이 복수의 대상이다.

-금자씨가 스스로 감옥에 간 게 아닌가.

=맞다. 죄를 스스로 뒤집어쓴 거니까. 배신을 당한 거고 그래서 복수를 결심하는 거다. 성격으로 말하면, 철없는 여자였으나 냉정하고 사악한 여자가 됐다가 결국은 불쌍한 여자가 된다. 촬영 초반이긴 하지만 주로 과거장면을 찍고 있는데 코믹한 게 생각보다 많다. 문소리나 전도연이 했으면 안 웃길 텐데 이영애라서 그런 게 많다. 이영애는 뭐랄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있지 않나. 현실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가졌다거나 증오하는 감정을 가졌다거나 누구를 이용해먹는다거나 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 연기를 하는 걸 본 적도 없고. 그런 이영애가 한번도 해보지 않은 표정을 짓고 이영애로서는 너무나 낯선 맥락 속에 던져지기 때문에, 계속 낯설고 그것이 낯설다 못해 코믹한 지경이 된다. 약간 미친 것 같기도 하고, 맛이 살짝 간 것 같은 표정도 있다. 그래서 본인은 당황해하고 있지만, 나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웃음) 관객이 좋아해야 할 텐데.

-본인이 당혹스러워 한다는 건.

=이영애도 사람이니까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연기로 표현한 건데 그걸 모니터로 보면 자기도 낯선 거지. 안 지어본 표정과 얼굴이.

-감독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맞아들어간 거네.

=관객이 좋아해야 하는 종류의 낯섦과 유머여야 할 텐데 과연 그런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스타에 대해 관객이 가지는 기대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익숙하고 기대에 부응하는 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러면 정도가 적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영애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것에서 많이 벗어나서.

-최민식이 나오기는 하지만 <올드보이>의 유지태 같은 비중을 가진 상대역은 아니라고.

=유지태의 배역만큼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소실점이다. 그 사람을 향해서 모든 일이 집중돼 있다. 등장 시간은 유지태보다 짧지만 유지태의 경우, 그가 왜 악행을 저지르는구나 하는 게 공감도 되고 동정도 되는 인물이었다면 여기서의 최민식은 퓨어 이블(순수 악)이라는 점이 다르다. 왜 저런지도 알 수 없고 그걸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관객이 최민식을 보면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떠올릴 텐데,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나.

=전혀 없다. 원래는 최민식한테 시킬 역할도 아니었고 그냥 노바디였다. 아무도 모르는 처음 보는 배우를 생각했다. 그래야 퓨어한 느낌이 더 살 것 같아서. 그런데 처음에는 역할을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이 사람을 향해 집중되는 이야기라서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등장하는 시간이 일정한 분량이 됐고, 연기력의 비중이 커져버렸다.

-금자씨를 중심으로 많은 캐릭터들이 스쳐지나가는데, 특히 감옥에서 만난 동료 죄수들이 나중에 복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출소 시기가 각각 다른 그 전과자들에게 금자씨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일일이 도움을 청한다. 금자씨는 이 일을 대비해 감옥에서 그녀들에게 엄청난 호의와 선행를 베풀어 호감을 사고 그렇게 때를 기다려온 거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자매애 같은 것이기도 하고, 당한 자들의 연대 같기도 하고.

-금자씨가 끝내 복수하려는 목적은 뭔가.

=선언처럼 대사로 분명하게 표현하는데, 최민식(백 선생)이 죽어야 하는 건 그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대수가 나를 15년 동안 감금했기 때문에 죽인다고 했다면 금자씨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큰 죄를 나로 하여금 짓게 한 죄, 그것 때문에 벌받아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 최민식(백 선생)은 감독이 생각해온 그 어떤 퓨어 이블을 캐릭터로 만든 것인가.

=그렇게 거창할 건 없다. 왜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으니까. 좀 단순하다. 그런데 나쁜 일을 한 사람에 대해 많은 설명이 없으니까 오히려 복잡한 인물인 것 같은 효과가 있다.

-복수 3부작의 대단원이어서 복수라는 테마에 대한 총정리가 있을 듯하다.

=물론 있는데 너무 단순해서 말하기 쑥스럽다. … 살인범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아이가 살아돌아오는 건 아니다, 라는 게 삼부작의 결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모르냐, 다 안다 이거지. 복수하는 사람도. 그게 허무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복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지.

-엔딩에서 <올드보이> 같은 반전은 없고, 축제 혹은 파티 같다고.

=그렇다. 그런데 그 파티는 결코 즐거운 파티가 아니고 즐거운 척하는 파티라는 게 컨셉이다. 복수를 끝내고 통쾌하고 후련한 것처럼 보이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른 게 동반한다. 말하자면 모호한 거다. 즐거운 건지, 즐거운 척하는 건지.

-한 평론가가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 “여자들은 희생되고, 남자들은 복수한다. 이 영화에는 이상한 마초주의가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이를 연장하면 <올드보이>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금자씨는 이것에 대한 역전인가.

=이상하군. <복수는…>에서 송강호의 죽음은 죽은 배두나의 복수인데. 여러 번 말한 것처럼 삼부작의 마지막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다. 제일 맘에 걸린 것은 <올드보이>에서 ‘미도’라는 인물이었다. 전개상 어쩔 수 없지만 끝내 진실에서 소외된 채 퇴장한다라는, 그리고 죽을 때까지 진실에서 소외되기를 관객이 기도해야 한다는 게 걸렸다. 예술적 성취와는 별개의 문제다. 스토리가 요구하는 바가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는 해도 각본 단계에서 내내 고민거리였다. 잘 좀 고쳐보라는 주변의 충고도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 시나리오를 손보다 해결이 안 되면서 다음에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그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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