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19세기말 파리, 그 음란한 매력, 해외신작 <루팡>
2005-01-17
글 : 김도훈

변장술의 귀재이자 달콤한 연인, 살인을 혐오하며 낭만적인 모험을 즐기는 우아한 범죄자. 괴도 루팽은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이 1905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열정적인 범죄의 예술가다. 차가운 이성과 합리적 사고방식의 명탐정 홈스에 대응하기 위한 완벽한 프랑스식 대구라고 할까. 물론 홈스보다 조금 더 글래머러스하고 조금 덜 진지한 ‘프랑스적 쇼맨십’의 소유자는 무성영화 시절부터 여러 차례 스크린에 그 모습을 드러내왔다. 미국 무성영화 시대의 아이콘인 존 배리모어를 비롯하여, 희대의 매력남들이 루팽의 매력을 등에 업고자 애썼음도 당연한 일일 테다.

새로운 시대의 영웅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법. 새로운 <루팡>은 <벨파고>의 감독 장 폴 살로메에 의해 거대 자본과 특수효과를 등에 업고 프랑스식 블록버스터로 재창조됐다.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루팽’ 연작 중 <칼리오스트로의 백작>을 각색한 21세기 버전 <루팡>은 루팽이 어린 시절을 보낸 우울한 노르망디로부터 시작해 1890년대의 글래머러스한 파리로 향한다. 스무살의 아름다운 청년 아르센 루팽은 천부적인 도둑의 피를 자랑하며 신출귀몰 경찰들을 희롱하고, 사교계에도 진출해 귀부인들의 마음을 헤집어놓는다. 그러나 이 미스터리한 미남자의 세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백작부인 조세핀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조세핀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밀을 간직한 보물의 열쇠, 3개의 십자가에 대한 비밀을 루팽에게 알려주고, 루팽은 곧 역모를 계획하는 의문의 결사체, 불로장생약으로 수백년 동안 영원한 젊음을 이어온 백작부인 조세핀의 과거, 추접한 욕망과 음모가 뒤엉킨 세기말 파리의 음란한 매력 속으로 빠져든다.

새로운 <루팡>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극도로 호사스러운 영화미술. <버라이어티>가 “음험하고 부산스럽게 들뜬 19세기 말 파리의 진짜 느낌과 장르영화에 적합한 대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호평했던 영화 속 파리는 자본의 힘을 빌려 거대하게 재현되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백작부인 조세핀 역을 맡아 낯선 프랑스 배우들 사이에서 익숙한 매력을 풍기는 것도 반가운 일. <할리우드 리포터>는 “몇몇 결점들을 지니고 있지만, 유혹적인 선물들로 가득한 이국적인 선물꾸러미”라며 새롭게 창조된 루팽의 모험에 톨레랑스(관용)를 보냈다. 장 폴 살로메의 <루팡>이 고귀한 원작에 대한 신성모독인지 혹은 블록버스터로 화려하게 만개한 프랑스판 슈퍼히어로의 재림인지는 3월 국내개봉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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