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칼럼]
23일 방영된 K2 드라마시티 <아빠 돈 내세요>
2005-01-25
글 : 김진철 (한겨레 기자)

아빠의 슬픔에 따뜻한 눈길
성찰없는 갈등미봉 아쉬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한 티브이 광고 덕에 한참 유행했던 동요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며 퇴근길 어깨 처진 남편을 다독이던 아내도 비슷한 류의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아이와 아내가 남편에게 힘을 북돋워 힘든 세상 잘 이겨내라는 메시지를 담았단다. 그러나 그 뒤에 숨은 뜻은 가혹하게 읽히기도 했다. 아이가 “아빠 힘내서 돈 많이 벌어오세요”라고 철없이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이라면, 또 아내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고, 꿋꿋이 구조조정 한파에 살아남아 가족 부양 잘 하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이 얼마나 쓸쓸하면서도 섬뜩한가.

지난 23일 밤 한국방송에서 방영된 드라마시티 <아빠 돈 내세요>가 이야기를 시작한 지점도 그런 것이었다. 다만, ‘경제난 속 벼랑 끝에 내몰린 가장’과 사회 풍경을 날카롭게 각을 세워 그려내기보다는, 코믹하고 따뜻한 시선 속에 담아내려 했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전개됐다. 돈을 받아내야 살 수 있는 채권 추심원과 돈 낼 능력이 안 되는 신용불량자들이 차가운 겨울나기에 나선 모습이었다. 아빠 봉수(권해효)는 집에서 아이들 과외 공부 가르치기에 열중하는 실업자다. 잘 살아보자고 사업을 벌였다가, 빚만 잔뜩 지고 신용불량 상태에 빠졌다. 그는 아빠 자리를 지키려고 아들, 딸 가르치는 일에만 집착한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가 싫다. 아이들은 제발 돈 벌어와서 학원에 보내달라고 봉수의 속을 뒤집는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봉수는 집을 나온다. 오랜 백수생활 끝에 채권 추심회사에 가까스로 취직한 병호(문천식)는 천성이 순진하고 착하다. 빚을 받아내기는커녕, 채무자들에게 끌려다니고 대신 빚을 갚아줄 수 없는 자신을 자책하기까지 한다. 봉수도 빚을 받아내기 위해 만났지만, 가족이 등돌린 봉수를 자기 집에서 지내게 한다. 마음 약한 병호 위에는 팀장 마리(문정희)가 있다. 그는 사람 다루는데 이력이 났고, 빚 받아내는데 천부적인 능력을 지녔다. “공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봉수는 마리의 도움으로 방송 퀴즈대회에 나가 3라운드까지 올라가지만 “이 상금이라도 가져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며 4라운드 진출을 포기한다.

이야기는 너무나 단순해, 역설적으로 메시지를 찾아 듣기가 힘들었거나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거의 없었다. 우리 시대 가난한 아빠는 가난 때문에 가족에게 내몰린다. 아빠의 속 사정 따위는 소통의 부재로 아이들(가족)에게 이해되지 못한다. 갈등은 티브이 퀴즈쇼를 통해 짐짓 풀리는 듯 보인다. 소식이 끊긴 아빠를 아이들은 티브이 화면 속에서 재회한다. 아빠는 진땀을 흘리며 문제를 풀어내고, 아빠를 그토록 미워하던 딸은 눈물을 흘릴 듯 아빠의 모습에서 감동한다. 퀴즈쇼에서 모든 갈등이 풀리거나 꿈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의도된 ‘절반의 성공’으로 현실성을 담보하려는 제작진의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퀴즈쇼에서 이룬 절반의 성공은 갑작스런 가족의 화해를 낳고, 돌아온 아빠를 기다리는 것은 아이들이 어색하게 부르는 노래 “아빠 힘내세요~”였다. 근본적인 갈등을 풀어내는 장치는 드라마에 없었다. 다만 다급히 문제를 봉합하려는 불충분하고 마음 급한 연출만 남는다. 코믹과 풍자는 간간이 눈에 띄었으나, 조화되지 못해 단절된 그것들은 겉돌거나 알맹이가 없었다. 좀더 깊은 성찰이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권해효, 김경식, 문천식, 문정희가 풀어낸 블랙코미디 연기는 뛰어났다. 화면을 알록달록 꾸민 잘 편집된 장면들이나, 고화질 촬영도 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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