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의 신작 <공공의 적2>가 공개됐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실미도>의 1천만 관객 신화를 이어나갈 것이냐는 쪽보다는 ‘강우석 감독 최고의 영화’ 또는 ‘한국 장르영화의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았던 <공공의 적>(2001)의 영화적 성취를 계승할 것인가에 쏠린다. 그건 <공공의 적>이 안겨준 충격이 너무나 컸던 탓에 불가피해 보인다. 거대한 캐릭터의 힘 하나로 관객을 쥐락펴락했던 이 영화는 한국 상업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설경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가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에 대한 주목도가 남다른 것도 이런 탓이다. <공공의 적> 시리즈 2탄의 실체와 강우석 감독의 이야기, 그리고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제작과정을 돌아본다. 편집자
“1편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죽어도 듣고 싶지 않았다.” <공공의 적2>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강우석 감독이 한 이야기는 신작에 대한 의례적인 애정 피력이 아니었다. “1편의 그늘 아래서 비슷한 얘기를 답습하는 것은 감독으로서 죽음이라고 봤다”는 강우석 감독은 <공공의 적2>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장을 열고자 했다. <공공의 적> 시리즈의 2번째 영화이자 강우석 감독의 사회에 대한 본격적이며 노골적인 발언인 <공공의 적2>는 시리즈영화와 정치영화의 가능성을 동시에 타진하고 있다.
본격 정치영화로의 회귀 또는 실험
사실, 강우석 감독은 이미 ‘본격 정치영화’를 표방했던 스릴러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를 만든 경력을 갖고 있다. 이 작품은 감독 스스로의 말처럼 “너무 어린 시절에 만든 영화라” 성숙한 시각도, 영화적 완성도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미 교육문제를 다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등을 통해 꾸준히 사회적인 이슈를 건드려왔던 강우석 감독으로서 이 실패는 꽤나 뼈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투캅스>(1993)에서처럼 코미디라는 우회로를 통한 사회적 발언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게 했다. 그리고 비리 형사의 분투기 <공공의 적>(2001)과 한국 현대사의 급소를 찌른 <실미도>(2003)를 통해 그의 대사회 발언 수위는 놀랄 만큼 상승했다. 이들 영화의 대성공은 그로 하여금 14년 전의 미숙한 실수를 만회하고, 공공연한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을 만한 여유와 자신감을 제공했다. 결국, <공공의 적2>는 강우석 감독이 <누가…>의 실패 이후 긴 우회를 통해 축적된 힘으로 만든 새로운 정치영화다. 물론 검사와 사학재단을 기본 구도로 가져가는 탓에 정통 정치영화라 부르기엔 힘들지만, 언젠가 도전할 강우석 감독의 본격 정치영화의 실험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공의 적2>가 보여주는 현실은 꽤 적나라한 편이다. 공공의 적인 사학재단 이사장 한상우(정준호)는 재단의 자산을 모두 매각한 뒤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려 한다. 그로부터 엄청난 돈을 받아챙긴 한 정당의 부총재는 이를 비호하고, 검사 출신의 변호사 또한 강철중(설경구)을 회유하려 한다. 또 부총재는 권력의 실세를 통해 지검장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검찰 내부 또한 강철중이나 김신일 부장(강신일)처럼 정의로운 검사가 존재하지만, 정치권과 교감하는 정치 검사들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묘사 수위로만 본다면 <공공의 적2>는 기존 한국영화 중 가장 높은 수위에서 정치권을 비롯한 권력 상층부를 까발리고 있다. 영화는 폭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단을 주장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획득하려 한다.
한편, 시리즈영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공공의 적2>는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비록 강철중이라는 이름과 설경구라는 배우는 그대로 이어진다 해도, 이 영화처럼 주인공의 캐릭터가 바뀌는 속편은 사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머리 나쁘며, 단순하게 사고하고, 성질도 더러운 1편의 형사 강철중과 양복과 셔츠와 타이를 갖춰입은 채 검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2편의 검사 강철중은 도무지 연결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시리즈물의 지속성과 영화적 재미를 고려한 탓이었는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두명의 강철중에겐 의외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된다. “검찰 통틀어 내가 제일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하지”라는 대사처럼 2편의 강철중은 검사치곤 감과 느낌으로 수사를 펼치며, 범인 검거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현장파다. 1편에서 칼날에 얼굴을 긁힌 데 대한 원한에서 수사가 시작되듯, 2편에서도 한상우에 대한 오랜 원한이 강철중의 동물적 감각을 일깨운다. 무엇보다 법을 지켜야 하는 위치에 서 있음에도 법전 속의 법이 아니라 상식적인 마음속 정의라는, 자의적인 법 개념을 집행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는 연속성을 갖는다.
다른 캐릭터의 프랜차이즈, 전편의 그늘에서 벗어날까
그러나 이런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검찰이라는 지위는 ‘경’자와 ‘검’자라는 한 끗발 차이는 캐릭터의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법과 불법, 선과 악의 주변부를 어슬렁거리던 1편과 달리 2편의 강철중은 정의라는 잣대에서 있어 한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한상우 나쁜 놈이잖아요. 나쁜 놈 잡아야죠”라는 대사에서처럼 그는 그야말로 ‘공공’의 행복을 위해 ‘적’을 처단하려 한다. 또 검사라는 직업이 몸보다는 머리를 써야 하는 직업인 만큼 호쾌한 액션이나 저돌적인 몸짓도 희미해졌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강우석 감독이 자초한 일이다. 정치권과 맞붙기 위해 검사라는 캐릭터를 내세웠지만, 그 순간 한계가 명확해진 것이다. 강우석 감독의 장인으로서의 기질은 이 자승자박과의 싸움에서 드러난다. 액션을 중심에 놓고 풀어갈 수도 없지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머리싸움으로 가져갈 수도 없었기에 그는 강철중과 한상우의 기 싸움이라는 큰 축 위에 내외부로부터의 압력과 이 압력에 맞서가는 검찰조직이라는 구도를 덧붙여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남성들의 진한 멜로코드를 배치해 극적 비약을 위한 연료로 삼았다. 설경구가 술에 취해 석신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이나 강신일이 냄비를 박박 긁는 장면 등은 강우석 감독이 왜 관객을 ‘갖고 논다’는 평가를 받는지 알게 해준다.
<공공의 적2>에서 강우석 감독은 1편을 넘어서기 위해 스스로에게 쉽지 않은 문제를 냈다. 정치영화에 대한 지향과 캐릭터가 달라진 시리즈물에 대한 도전이 그것. 실제로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후련해지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이 나라가 걱정이구만”이라는 대사는 정치권에 대한 조소를 모아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시험에서 그가 100점을 맞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정치권을 비롯한 ‘공공의 적’들에 대한 훈계 또는 설교조의 꾸지람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극적 감흥을 가로막는다. 결국 영화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는 이야기를 되풀이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드라마가 탄탄하게 뒷받침된다 하더라도, 두 강철중의 기질이 비슷하다 해도 <공공의 적2>의 강철중에겐 정이 덜 가는 게 확실한 느낌이다. 특히 모든 상황을 몸뚱어리 하나로 돌파해내는 강철중의 ‘육체성’을 사랑했던 이들이라면 검찰 조직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상명하복의 시스템이 체화된 2편의 강철중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긴, 이런 불만이 <실미도>보다 <공공의 적>을 아끼는 쪽에서 나온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 장르영화의 걸작’ <공공의 적>이 드리운 그늘이 그만큼 짙고 크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