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공공의 적2>의 모든 것 [3] - 5가지 소문과 진실
2005-02-01
글 : 문석
<공공의 적2> 현장을 둘러싼 5가지 소문과 진실

프롤로그

2004년 9월26일 크랭크인해 12월5일 크랭크업한 <공공의 적2> 현장은 유달리 분주했다. 다양한 액션이 담긴 적지 않은 규모의 영화를 달랑 두달 하고도 열흘 만에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강철중의 어린 시절 모습을 김상진 감독이, 오토바이와 자동차 액션장면을 장윤현 감독이 각각 촬영한 것도 이들 감독의 특기를 뽑아내자는 발상일 뿐 아니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그것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80일 남짓한 기간에 촬영을 마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이 때문인지 <공공의 적2> 촬영장 주변에는 ‘그 영화, 시나리오 없이 찍는다며?’ 같은 괴담급 소문부터 ‘배우가 무슨 역할을 맡을지 모른 채 현장에 온다더라’는 기이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대부분의 소문이 그렇듯, ‘땐 굴뚝 위의 연기’와 과장, 허풍이 만나 뭉게뭉게 피어오른 <공공의 적2> 촬영장의 소문과 진상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소문: <공공의 적2>의 ‘공공의 적’은 원래 마약범이었다?

“<실미도> 끝나면 <공공의 적2>를 할 거고, 시나리오는 김희재 작가가 써야 한다.” <실미도>의 수중신이 촬영되던 2003년 7월 말 말타공화국의 해양스튜디오 로비, 강우석 감독은 김희재 작가와 정선영 PD를 로비 커피숍에 앉혀놓고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협의도, 논의도, 의사타진도 아닌 그저 일방통보였다. 당황한 김희재 작가는 반발했다. 성공한 영화의 속편에 대한 부담과 코미디를 해보지 않은 데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강우석 감독의 설득은 집요했고, 결국 김 작가는 승낙하고 말았다. 당시 강 감독이 김 작가에게 제시한 건 딱 세 가지. ‘제목은 <공공의 적>, 주인공은 검사, 주연은 설경구’뿐이었다. 그럼에도 “어찌나 일이 빨리 진행됐는지, 강 감독님이 서울에 도착한 지 1주일 만에 진행상황을 체크해보라고 지시했는데 김 작가는 이미 기본적인 자료조사가 끝난 상태였다”고 정선영 PD는 말한다.

영화 전반을 자문해준 김희준 검사를 만나 다양한 사례를 수집한 뒤 2004년 1월부터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됐고, 초고는 3월쯤 나왔다. 초고의 ‘공공의 적’은 마약사범이었다. 김희준 검사가 담당했던 ‘물뽕 사건’이 계기가 됐다. 김 검사의 증언과 사건기록을 바탕으로, 김 작가는 수사기관이 확인하지 못한 신종 마약을 만든 업자들이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유통시킨다는 내용의 초고를 만들었다. 그는 “진짜 공공의 적은 다음 세대를 좀먹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초고를 본 강 감독은 “김 작가 주변에 마약사범 몇명이나 있어? 내 주변엔 거의 없거든. 그리고 이 정도는 진정한 공공의 적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두 번째 버전의 공공의 적은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였다. “그때 중소기업 사장들이 잇따라 자살을 하고 있었는데, 돈 놓고 돈 먹기를 위해 금융기법을 활용하는 몰염치한 인간을 사회의 악으로 내세웠다.” 김희재 작가의 의도는 이번에도 강 감독에 의해 거부당했다. “이보다 좀더 세고 강력하고 모두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적을 내세우자”는 것. 세 번째로 생각해낸 게 사학재단 비리였다. 당시 검찰에서 수사하던 한 사학재단의 비리에서 떠올린 소재는 강 감독으로부터 “아, 이거면 되겠다”는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두 번째 소문: <공공의 적2> 현장엔 시나리오가 없었다?


애초 <공공의 적2>는 ‘쉬어가는’ 프로젝트였다.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로 모든 스탭과 배우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짧고 편하게” 끝낼 수 있는 영화로 <공공의 적2>를 선택했다. 당연히 시나리오에는 1편과 마찬가지로 코미디와 액션이 적당히 섞여 있었다. 하지만 크랭크인을 하던 9월26일, 상황은 모두 바뀌어버렸다.

이날 촬영분은 한상우(정준호)의 골프장학재단 설립식 장면. 스탭들은 촬영장소로 서울 강남의 R호텔의 홀을 빌려놓았다. 이 정도 규모라면 100∼200명 정도 되는 엑스트라가 들어찰 수 있었다. 그런데 강 감독이 돌연 10월 초로 잡혀 있던 크랭크인 날짜를 1주일 앞당겼다. 제작진이 부랴부랴 R호텔에 연락해보니 그날엔 이미 예약이 차 있었다. 부리나케 알아본 결과 그랜드 힐튼호텔의 홀이 여유가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애초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는 점이었다. 정선영 PD는 공간이 텅 비는 게 이상할 것 같아 엑스트라를 400명 정도 불렀다. “그런데 리허설을 위해 홀로 들어온 강우석 감독의 눈빛이 이상했다”고 정 PD는 기억한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분위기는 더욱 범상치 않아졌다. 이날 그저 “놀러왔던” 김희재 작가는 사태의 심각함을 직감했다. “부총재와 한상우가 만나는 장면이 머릿속의 생각과 규모 면에서 너무 달랐다. 이 장면에 실리는 무게감이 다르더라. 애초 부총재는 단역 정도였는데, 힘이 실리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우석 감독이 촬영을 마치고 나가다가 김 작가에게 말했다. “나, 이 영화 좀 벌여야 되겠어. 내일 사무실에서 보자구.”

다음날 강 감독은 김 작가와 정 PD에게 “처음엔 <공공의 적>을 계속 이어지는 시리즈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안 되겠다. 2편으로 끝내자.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를 여기서 다 하자”고 말했다. 결국 ‘공공의 적’의 수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정경유착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시나리오 속의 코미디는 모두 걷어냈다. 러닝타임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극의 무게감이 훨씬 더해져 웬만한 코미디로는 조화를 이룰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영화의 절반 이후 부분은 다시 써나가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결국, 강 감독이 고치지 않을 부분을 촬영해나가는 와중, 김 작가는 후반부의 이야기를 거의 갈아엎어버렸다. ‘존재하지 않는 시나리오’라는 괴담은 여기서 시작됐다. 하지만 정 PD는 “초반부를 찍는 도중, 시나리오 개정판이 나왔고 콘티 작업까지 이뤄졌다”고 말한다.

세 번째 소문: <공공의 적2>의 스탭과 배우들은 강우석 감독의 변덕에 시달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스탭과 배우들의 혼란은 불가피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쪽은 미술팀이었다. 미술 컨셉을 상당 부분 바꿔야 했기 때문. 조성원 미술감독은 이미 찍었던 룸살롱 격투장면을 보강하기 위해 세트를 다시 만들어야 했고, 항상 발생하는 감독의 급작스런 주문에 허둥지둥 대응해야 했다. 제작팀 또한 힘들어졌다. 시나리오가 바뀐 탓에 애초 섭외했던 로케이션 장소를 포기하고 새로운 곳을 헌팅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선영 PD는 6명밖에 안 되는 제작팀을 3팀으로 쪼개, 한팀은 현장을 지키고, 다른 팀은 다음 촬영을 준비하고, 또 다른 팀은 헌팅을 계속하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촬영이 끝나도록 현장을 한번도 접하지 못한 제작팀원이 있을 정도였다. 시나리오가 여러 번 바뀌다보니 스탭들은 대화를 할 때 “그게 며칠 몇시 버전이냐”고 따져야 했다.

배우들 또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는 단역급에서 조역급으로 올라가기도 했고, 극중에서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했다. 정치권의 부총재 역을 맡았던 박근형의 비중은 작았다. 하지만 정경유착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그의 촬영 분량은 급증했다. 애초 3회 정도밖에 촬영분량이 없었지만 6회로 늘어났다. 강철중의 오른팔 구실을 하는 수사관 석신 역의 박상욱도 작은 역할에 캐스팅됐었다. 어찌어찌하다가 석신을 맡게 됐는데, 시나리오가 바뀌면서 가장 돋보이는 조역 중 하나로 부각됐다. 교통경찰 역을 맡았던 권태원의 경우 고깃집 주인, 고주망태, 순찰차 대원 등으로 거듭 캐릭터의 성격이 바뀌었고, 이 와중에 촬영장에 왔다가 허탕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오토바이 폭주족 대장 역을 맡은 김태환은 촬영 당일 캐스팅됐다. 촬영이 예정보다 빨리 끝나 며칠 뒤에 찍을 예정이었던 그의 장면이 급작스레 잡혔다. 김태환은 11시30분쯤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빨리 파주의 세트장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오후 2시쯤 도착해 시나리오를 받은 뒤 오후 4시30분 촬영에 임했다. <공공의 적> <실미도>에서 조감독을 한 백상열 조감독은 “<실미도> 같은 영화를 하고 나면 한국의 20∼30대 남자배우는 좍 꿰게 된다. 비상시에 아주 유용했다”고 말한다. 정 PD는 “배우들 또한 강 감독의 영화는 단역이라도 돋보이게 비춰주기 때문에 흔쾌히 응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슬픈 일화도 있다. 후시녹음 도중 여자배우의 목소리가 필요했던 그는 휴대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배우가 300명 이상 입력돼 있는데, 그중 여자배우는 한명도 없었다.” 여배우 없이 3편의 영화를 찍은 스탭의 설움이었다.

네 번째 소문: <공공의 적2>는 ‘속성 날림 공법’으로 찍혔다?


<공공의 적2>는 대부분의 장면이 세트에서 촬영된 <공공의 적>과 달리 로케이션이 많은 편이었다. 또 비중있는 액션신도 여럿 있는데다 ‘시나리오 사태’까지 터졌으니 예정된 ‘납기’를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 종료는 5일밖에 안 늦었으니 이런 추측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 하지만 스탭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상은 좀 다르다.

이 영화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찍힐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는 강우석 감독이었다. 워낙 성미가 급하고 현장을 빠르게 진행하다보니 스탭들도 여기에 맞춰야 했다. 조성원 미술감독은 아직도 진땀났던 한순간을 기억한다. 한상우가 골프장에서 정치인에게 뇌물을 챙기는 장면을 찍는데, 강 감독은 미리 준비한 보자기가 탐탁지 않았다. “거 왜 TV에 나오는 거 있잖아. 분홍색 보자기….” 15분 내로 분홍색 보자기를 구해야 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했다. 도심도 아니고 지방의 골프장이었던 탓에 미술팀 전원을 내보내 무조건 구해오도록 시켰다. 팀원들이 인근 민가를 두드리고 시장을 돌고 하는 와중, 그는 전화기 3개를 들고 계속 그들을 닦달했다. 그건 강 감독이 촬영을 하는 와중에도 30초마다 “보자기 왔냐?”고 물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만약 보자기가 조달이 안 돼 촬영이 늦어지면 화살이 고스란히 자기에게 박힐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4분33초 만에 분홍 보자기가 조달돼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고. 현장에서 ‘메롱이’라고 불리는 경광등이 확보되지 않았을 때도 퀵서비스를 기다리는 동안, 스탭들은 괜히 차 유리와 범퍼를 닦는 척하며 “슛 들어가자”는 감독의 재촉을 무마해야 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이 이유없이 스탭들을 재촉한 것은 아니었을 것. 이로 인한 효율성이 없었다면 이 ‘80일간의 촬영일주’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촬영 첫날에도 7신을 찍을 정도로 많은 신을 찍는데도 촬영종료는 항상 예정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심혁 조감독은 “스탭들끼리 내기를 하곤 했다. 오늘은 오후 4시에 끝난다, 아니다 4시 반이다, 라고.” 강 감독과 처음 작업하는 안 이사 역의 변희봉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촬영을 위해 두꺼운 파카를 준비해왔다. 한 스탭이 이유를 묻자 그는 “아, 오늘 밤 샐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굵은 감정선이 필요한 롱테이크가 있었던 탓에 촬영이 오래갈 줄 알았던 것.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촬영은 오후 9시 정도에 끝났고, “아, 이거 가도 되는 겁니까”라고 어리둥절하면서 촬영장을 나갔다. 이러한 효율성은 스탭의 충분한 휴식으로 이어져, 결국 다음날의, 그리고 촬영기간 내내 활력으로 되돌아왔다.

물론, <공공의 적2>의 스탭이 대부분 <공공의 적> <실미도>를 함께해왔다는 점 또한 이 ‘초스피드’의 원동력이 됐다. 워낙 호흡이 잘 맞고 시스템이 안정돼 있으니 괜한 기싸움을 할 필요도, 서로 눈치를 볼 필요도, 버벅거릴 가능성도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촬영지를 이동할 때 일부 스탭들이 1시간 전쯤 미리 넘어가 준비를 마쳐놓으니 시간손실이 줄 수밖에 없었다.

다섯 번째 소문: <공공의 적2> 현장에서 강우석 감독의 말을 알아듣는 스탭은 없었다?


강우석 감독은 성미만큼이나 말이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인터뷰를 할 때도 웬만해서는 받아쓰기 힘들 정도다. 결국 녹음을 하게 되는데, 글자로 옮길 때 그 ‘압축률’에 놀라게 된다. 같은 시간 동안 말한 글자 수가 다른 이의 2배 이상은 족히 되기 때문이다. 정선영 PD는 “그래도 기자들에게는 천천히 말하는 편이고 촬영장에서는 상황이 급박하니 말이 더 빨라진다”고 얘기한다.

강 감독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 <공공의 적2>로 처음 강 감독과 만난 조성원 미술감독의 별명은 ‘뭐래’였다. “촬영 전 한곳을 함께 헌팅차 갔는데, 강 감독님은 빠른 걸음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라. 나는 사진도 찍고 상세히 살펴보고 있는데, 나를 부르더라. 그래서 그쪽으로 막 뛰어가는데 이미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쪽에 도착하니까 이미 얘기는 끝났더라.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뭐래?’라고 물었다.” 그때만이 아니었다. 촬영장에서도 강 감독이 지시를 내리면, 그는 일단 알아듣는 척을 했다가 조감독이나 다른 스탭에게 “뭐래?”라고 물어야 했다. 말이 워낙 빠른 데다 앞뒤 정황을 떼고 ‘몸통’만 말하는 탓에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 단역배우 또한 감독의 지시를 알아듣지 못해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사실, 세 편째 강 감독과 함께하는 스탭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을 건 없었다. 공식 ‘통역’ 담당이었던 두명의 조감독조차 그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진 못했다. “뭐라고 지시가 나오면 일단 ‘예, 알겠습니다’하고 감독님 손가락이 가리키는 데로 뛰어간다. 막상 그쪽으로 가선 눈앞이 노래진다. 눈치를 보다가 다시 감독님한테 가서 다른 것을 묻는 척하다가 다시 물어보곤 했다”고 심혁 조감독은 말한다. 그렇다고 이 커뮤니케이션의 ‘혼선’이 악영향만을 끼쳤던 것은 아니다. 정선영 PD는 “결국 감독님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스탭끼리 단어를 조합해서 해독하면서 서로의 일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준비는 더 잘된다”고 말한다.

에필로그

강우석 감독의 현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비합리적이며 비체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작 강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본 스탭들은 ‘가장 훌륭한 현장’이라며 칭찬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효율성이나 흥행력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점은 “강 감독과 일하다보면 내 능력의 극한치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강 감독의 과욕과 대책없는 추진력이 감당하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열심히 일하면 결국 달성하게 되더라는 얘기다. “감독님은 다른 스탭들도 자신만큼의 프로정신을 갖기를 원하는 것 같다”는 정선영 PD의 해석처럼, 강우석 감독은 외적 구조보다는 내적 숙련성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장인의 상업영화’를 만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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