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4일 저녁, 용산CGV 극장의 전관을 빌려 치른 <그때 그 사람들> 시사회가 끝난 뒤 제작사인 MK픽쳐스의 이은 대표와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심재명 사장, 임상수 감독, 그리고 백윤식과 한석규 등 20여명의 출연진과 스탭 그리고 송강호를 비롯한 명필름의 지인 등 40명이 대학로 카페 장에서 술자리를 함께했다. 1월21일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 1차 심리가 열린 직후였고 28일 2차 심리가 열리기 전이라서 그런지 25일 저녁의 그때 그 사람들 입가에선 영화 시사회를 마쳤다는 기쁨과 불안감이 묘하게 교차했다. 영화상영 가부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2월1일 이전에 나올 예정. 11개 극장을 차례로 돌며 관객과 인사를 나누고,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질문의 포화에 갇혀 있던 탓인지 영화조차 보지 못한 백윤식과 한석규 등 출연진의 입가엔 피로감이 묻어나왔다. 혹시 있을지 모를 테러에 대비, 제작자와 감독에게는 보디가드가 따라붙었다. 처음엔 임상수 감독과 심도있는 인터뷰를 나누려 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인터뷰가 법적인 판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임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여 인터뷰는 미루기로 했다. 임 감독은 설령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본안 소송으로 다시 상영의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까지 임 감독의 휴대폰은 수시로 울려대며 각계의 반응을 알려왔다. 물론 상영금지는 가능성에 불가하지만, 이런 법적 공방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옭아맬 수 있는가를 이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찬반이 분분한 영화에 대해 남재일, 인정옥, 최보은, 허문영(가나다 순), 네명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함께 실었다. 이 색다른 목소리들이 영화 외적인 공방에 파묻혀 있는 영화의 얼굴을 관객에게 돌려줄 것이다.
임상수는 김기덕 반대편에 서서, 역시 김기덕만큼 고독하게 작업하는 스타일리스트다. 이해 못지않은, 아니 더 큰 오해를 받으며 억압적인 가부장제와 싸우지만, 두 사람은 노선만큼이나 싸우는 지점도 내용도 다르다. 김기덕이 최근 구도자적인 행보를 보이며 잠시 멈춰 있다면 임상수는 <그때 그 사람들>로 섹스에서 정치로 무대를 넓히며 의욕을 다지고 있다. 이른바 임 감독의 ‘떡’ 3부작(<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바람난 가족>)은, 섹스신 하나조차도 비관습적인 체위와 촬영기법으로 만든 개성적인 작품이다. 이 3부작은 선정적인 외피 속에 가족주의의 어두운 그늘을, 말맛이 살아 있는 대사에 신랄한 성 모럴 비판을 담고 있다. 임상수가 네 번째로 들고 나온 것은 그러나 의외의 정치드라마였다. 현대사의 전환점이라 할 10·26 사태를 다룬 <그때 그 사람들>에선 떡 3부작과 맥을 함께하면서도 그 세계와 결별하고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나서려는 임 감독의 야망이 엿보인다.
권위주의 시대는 끝났다
성 모럴이라는 전선에서 싸우던 임상수는 <그때 그 사람들>로 군사정권의 한복판에 뛰어들면서 전선을 확대한다. 데뷔작부터 줄곧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영작(映作)은 구경꾼이자 참여자로 시대를 향해 발언했지만 그의 자리는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중앙정보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주영작 과장은 총부리를 권력의 수뇌부에 들이대며 공적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다. “언제부터 형사와 검사들이 내 아랫도리를 관리해온 거니”라고 묻던 호정의 대사(<처녀들의 저녁식사>)를 <그때 그 사람들>의 문맥으로 바꾸자면 “언제까지 국가권력이 내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관리할 거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임 감독은 풍자라는 해머와 삽을 들고 나와 공권력과 극우세력이 땅에 파묻고 자물쇠로 걸어잠근 역사적 사실을 파헤친다. 그리고 그 사실을 현실정치의 장으로 복귀시킨다.
이순신 장군 동상 위를 날아가는 헬기장면은 임 감독의 시야가 어떻게 확장되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쿠데타를 상징하는 라이방 선글라스를 낀 채, 자신이 시대적 좌표로 내세운 이순신의 머리 위를 날면서, 각하는 물개 불알의 행방을 걱정한다.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배꼽 아래 일은 문제삼는 게 아니라”는 마초의 철학을 동원한다. 그의 채홍사인 주 과장은 이 최고권력자의 ‘배꼽 아래’를 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렌즈다. 직장인 여성과 10대 그리고 중산층의 성 모럴을 통해 권위주의와 위선을 통렬히 비웃던 임상수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가 18년간 절대권력을 구가했던 이의 ‘아랫동네’를 들춰낸다. 이런 지점에서 이 작품은 정치적으로 시야를 넓힌 ‘떡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애들은 매를 맞아야 큰다’고 믿는 후진적인 정치철학의 소유자이자 철권의 독재자를 질펀한 주연의 장으로 끌어내 확인사살까지 하는(그렇게 표현하는) 뜻은 선명하다. 권위주의의 뿌리 노릇을 했던 각하의 뿌리는 연약하기 그지없다. 여자 품에 안겨 노래를 듣고자 했던 생리적 본능과 일제시대에 맞고 산 몸의 기억의 합이 각하의 삶을 구성한다. 물론 이 장면은 <바람난 가족>에서 아이를 공사장 위에서 집어던지는 것만큼이나 선정적인 장면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다.
부패한 권력을 요약하는 단 하루
영화는 부패한 시대의 총체적 자화상을 그리기보다는 시대의 횡단면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정권 핵심부 바깥을 그린 장면은 고등학생들이 애국가가 나오는 가운데 횡단보도 앞에서 건널지 말지 우왕좌왕하는 장면과 옹색한 중앙정보부원의 셋방을 보여줄 때가 전부다.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만찬장 대통령 피격사건을 축으로 삼은 이 영화는 짐승의 시대를 단 하루 안에 축약해 담아낸다. 생략과 도약은 불가피했고, 이 빈 지점을 메우는 것은 거울에 비치는 김 부장 장면을 비롯한 세련된 스타일이다. 초대된 여대생의 노랫가락을 우아한 현음악으로 덮어씌우고 카메라가 만찬장에서 빠져나와 건물을 훑는 장면이나, 주 과장이 살해된 대통령 경호원을 확인하는 부감숏 장면은 비극적인 정서를 증폭시킨다.
<바람난 가족>에 이어 함께 짝을 이룬 임상수-김우형(촬영)-고낙선(조명)은 치밀하고 모던하게 매신을 구성했다. 쿠데타 지지자들과 대통령 측근 사이의 불화와 반목을 극화하느라 논점은 분산되고, 감정이입의 지점은 넓어졌다. 총체적인 리얼리즘 대신 다양한 인간군상의 시선으로 하루를 잡아냈기 때문이다. 떡 3부작에서도 여러 주인공을 내세운 점을 돌이켜보면 임상수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로버트 알트먼의 <숏컷>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의 다중적인 관점인 듯하다. 다만 만찬장 장면 앞부분이 만찬장의 긴장감을 입체적으로 고조시키느라 많은 시간을 지체하고, 만찬장 뒤에선 사건 종결 이후 세 장소로 흩어져 산만하게 극이 진행된다는 점이 지루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각하와 그 정부를 신랄하게 비웃다
각하를 표적으로 삼고 풍자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 칼날이 겨누고 있는 것은 동시에 역시 군부 출신인 쿠데타 주모자들이다. 쿠데타가 유신정권의 심장을 쏜 신념적 판단에서가 아니라 그저 순간적인 감정적 폭발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비웃음이 시종 배경음처럼 울린다. “대장부라면 확실하게 끝을 맺어야 할 텐데”라는 김 부장의 말에, 직접 의사 가운을 입고 감독은 “사무라이 좋아하시네”라고 비웃는다. 거사는 민주주의의 신념이 아니라, 대통령 삽교천 시찰을 가는 헬리콥터에서도 자리를 얻지 못하고, 술자리에서도 2인자인 차 실장에게 무시당한 김 부장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됐다.
거사는 조마조마할 정도로 무계획적으로 진행되며, 얼떨결에 사건에 연루된 중앙정보부원들은 총 한 자루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들은 죄없는 사람을 국가사범으로 엮어내는 데만 능숙해 보인다. 김 부장은 (쿠데타가) ‘사나이의 길’이라고 자못 감동적인 대사를 내뱉지만 만찬장에 부른 여자들로부터 각하의 시신 처리, 국무회의 방향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 1인자를 처치한 뒤 낮잠을 자는 그의 모습은 한심하며 애처로움까지 자아낸다. 국가의 안위를 결정하고 책임짓는 행정부와 국군수뇌부도 막상막하다. 최고권력 국무위원들은 대통령 서거 이후 권한대행을 어떻게 지명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육군본부에서는 내부로 걸어들어온 대통령 살해범을 어떻게 잡을지 몰라 좌충우돌한다. 각하와 그 정부는 권위주의로 시대를 내리눌렀지만 그 권위의 내용은 이렇듯 대책없이 부실했다는 게 영화의 증언이다.
지엽적 문제와 영화의 공과를 혼돈말길
불행한 시대의 초상화를, 임 감독은 모순되게 배치했다. 부마항쟁 사진으로 시작하는 사진첩은 그 시대의 불의에 온몸으로 맞서던 청춘들을 기린다. 사진첩을 닫으면서 영화는 연도에 서서 아버지라도 잃은 듯 오열하는 시민의 얼굴을 훑고 지나간다. 젊은이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흘린 피와 시민들이 독재자의 죽음에 슬퍼하며 도로를 적신 눈물이 한데 뒤엉켜 불행했던 시대의 추억을 완성하는 것이다.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재자의 아들과 딸을 비추며 도발적인 물음표를 내던지고 끝을 맺는다. 이게 바로 이 영화의 상업영화로서의 자의식인 셈이다.
이전 임 감독의 작품이 늘 논란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그때 그 사람들>이 불러온 바람은 더욱 거세다. 일찌감치 작품이 스캔들의 소용돌이 안에 휘말려듦으로써 작품 내적인 성취를 온전히 판단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건 이 작품과 임 감독 나아가 영화를 즐길 관객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엔카와 일본어 대사라는 지엽적 문제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법적 공방은 이 영화의 역사적 공과를 부식시키고, 영화 자체의 미학과 실패에 눈멀게 한다. 바로 여기가 한국 영화계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