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독립영화 찍는 충무로맨 [1]
2005-02-15
글 : 김수경
글 : 김도훈
사진 : 이혜정
충무로의 독립영화 친구 6인 인터뷰

한때 독립영화는 학생영화 혹은 습작영화와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영화과 졸업작품보다 그렇지 않은 독립영화가 더 많아졌다. 지난해 만들어진 독립장편극영화는 10여편에 달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바로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도 좋을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들이다. 독립(단편)영화를 상업영화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던 예전과 달리 나름의 판단으로 독립영화의 작업방식을 택하고 있는 감독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독립영화의 이러한 성장은, 별다른 대가없이 전문적 기술을 빌려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집과 끈기, 신념 하나로 무장한 독립영화인들에게 때로는 부담없이 작업을 함께하는 동료였고, 때로는 절실한 도움을 주는 선배였던 소중한 충무로 상업영화 무대의 친구들을 소개한다. 그중 일부는 ‘친구’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무슨 엄청난 희생정신으로 그 시간을 함께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는 사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작업을 통해서 스스로도 배우는 바가 많았다는 그들은 어느새, 함께 어울렸던 이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편집자


“넓게 고민하는게 좋다”

촬영 _ 이두만

“차이가 있나요? 통장 잔고가 다른 것 빼고.”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작업의 차이를 묻는 기자에게 그가 던진 첫마디. 영화제작소 청년으로 출발한 이두만(33) 촬영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독특하다. 충무로에 입성한 <눈물> 이전의 작품은 그렇다쳐도 이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충무로와 독립영화계를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오가고 있다. 오죽하면 삼성문화재단 멤피스트 장학생으로 떠난 호주 땅에서도 <Racing the Edge>라는 독립영화를 촬영했을까. 두편 이상 작업한 감독만 정지우, 임필성, 염정석, 채기 네명에 이른다. “어쨌든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하기 때문에 그게 상업영화인가 독립영화인가는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그는 충무로와 독립영화 진영에 대한 구분은 명확하지만 경계는 의식하지 않는 카메라맨이다.

* 어떻게 독립영화를 하게 됐나? 그는 자칭 “독립영화 출신”이다. 재학 당시 가장 활발히 학생영화를 제작하던 한양대 영화과는 영화제작소 청년으로 확장된다. <사로>를 촬영한 뒤 군대를 간 그는 “<사로>가 상을 타고 청년이 유명해진 건 복무 중이라 잘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제대 뒤 <생강>을 필두로 “동갑이라 친해진” 임필성 감독과 <기념품> <소년기>를 찍었다. 두편 사이에는 김용균 감독의 <져스트 두잇>이 자리한다. IMF 한파로 촬영을 쉬며 차렸던 편집실이 1년 반 만에 망하고 그는 다시 카메라를 잡는다. 그때 젊은영화집단의 김성숙 감독의 소개로 ‘현재진행형’의 작업파트너 채기 감독을 만난다. 임필성 감독의 소개로 상업영화 <눈물>로 입봉하기 전까지 <애절한 운동> <베이비> <포 더 피스 오브 올 맨카인드> <광대버섯> <희망이 없으면 불안도 없다>로 그의 독립영화 필모그래피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 독립영화를 하는 이유는? “상업영화는 정신적으로 힘들고, 단편영화는 육체적으로 그렇다”는 경험담을 통해 “소규모로 십시일반으로 돕는” 독립영화의 구조가 “훨씬 더 광범위하게 고민하는” 장점이 있다고 그는 평가한다. 매체적 특성이긴 하지만 “단편은 관객을 위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감독의 표현의지나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사재를 털어 투자하고 회수할 수 없는 자본의 상황”을 고려하면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을 찍어야 하는 여건에서 비롯된다. 오죽하면 채기 감독의 최근작 <빛나는 거짓>은 프리단계에서 감독에게 HD 말고 DV로 찍자고 말렸다고 한다. “집을 잡혀가며 영화를 찍을 수는 없지 않나”라고 생각했다고. 이렇게 촬영감독이 비용문제를 걱정하는 인간적인 현장이 독립영화의 어려움이자 곧 따뜻함이다. 그러나 채기 감독은 HD를 선택했고, 최단시간 최대분량의 작업은 반복되었다. 그가 염정석, 채기 감독과 평소에는 만나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친하면 최소 한달에 한번씩 만나야죠”라며 그건 그들이 철저히 “영화적 동지”이기 때문이란다.

* 독립영화에 바란다 “순수한 열망의 지점이 보이는 영화”를 선호한다는 그는 간혹 보이는 “욕심에 눈이 먼 영화”를 비판했다. 이를테면 “영화제 상을 받을 욕심이 보이거나 데뷔를 위한 습작”. 이런 접근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작품을 “작품적인 욕심 말고 작품 외적인 욕심이 많은 영화”라고 칭했다. 그가 이러한 단편들을 정중히 거절하는 이유는 그런 작업에 ‘대필’해주고 싶지 않아서다. 굳이 상업영화와 단편영화를 가리지 않는 그에게 “축소판 상업영화”는 “의미있는 작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필모그래피
상업영화
<눈물> <정글쥬스> <안녕! 유에프오> <여선생 vs 여제자>
독립영화 <광대버섯> <희망이 없으면 불안도 없다>(염정석) <빛속의 휴식> <빛나는 거짓>(채기) 외 다수


“새로운 상상력을 실험하는 재미가 있다”

특수분장 _ 이창만

“아직은 예술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영화제에서 특별한 시상 파트도 없는 부분이다”라는 겸손에도 불구하고, 이창만(37)씨는 한국 특수분장계를 예술로 승화시킬 가장 실력있는 장인 중 한명이다. 그는 절정에 이른 한국의 더미(Dummy: 영화에 쓰이는 대역인형)기술을 넘어서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프로스테틱 메이크업(Prosthetic make-up: 얼굴이나 몸에 보형물을 덧붙이는 것)을 완벽하게 구사해내며 한국 특수분장계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그러나 특수분장이라는 파트가 원체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 아닌가. 독립영화 작업에 동참하는 것에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있으리라 믿었더니 “그냥 재미있어서”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인건비 생각하지 않고 재료비만 받으며 돕고 있지만, 상업영화와 똑같은 작업을 그대로 해달라는 요구에는 아무래도 흥미가 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새로운 상상력만은 가지고 오시라”는 것이 이창만씨의 부탁이다.

* 어떻게 독립영화를 하게 됐나? 남기웅 감독의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가 시작이었다. 93년부터 특수분장계에 몸담은 이래 처음으로 독립해 나왔던 시기라 규모가 있는 상업영화보다는 독립영화로 시작하는 것이 부담이 덜하다는 이유였다. 남기웅 감독의 전작 <강철>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더욱 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었다”는 이창만씨에게 감독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진행한 <대학로…>는 새로운 재미에 눈뜨는 계기가 되었다. 친구 소개로 만난 원신연 감독과는 <세탁기> 이후로 장편인 <가발>까지 계속 일하고 있고, 찾아오는 독립영화 감독의 부탁도 여간해서는 거절하지 않는다. “상업영화를 작업하는 중이라도 재미있는 독립영화라면 얼마든지 할 의향이 있다.”

* 독립영화를 하는 이유는? “상업영화는 제작비에 따른 여러 가지 제약이 있고, 다양한 장르가 발달하지 못해 반복적인 작업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독립영화는 상상력의 제한이 없다.” 이창만씨가 독립영화 일을 즐기는 것은 다양한 상상력을 현실화시키는 가능성 때문이다. 2004년에 그가 작업했던 영화는 박선우 감독의 <더 데이>. 외계인의 침공을 소재로 한 20분짜리 단편이지만 상업영화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기발하고 창의적인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기에 선뜻 뛰어들었다. “서구 분장계는 SF나 호러장르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의 상업 영화계는 장르가 한정되어 있어서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개선된 기술을 만들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독립단편에서는 그런 게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그는 “노하우를 잘 쌓아두어 나중에 상업영화에서 써먹을 기대”에 행복감을 느낀다.

* 독립영화에 바란다 “아이디어와 의욕은 넘치는데 현실적 결정력이 부족한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 건 좀 곤란하지 않은가.” 이창만씨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현실적인 한계와 상상력 사이의 괴리를 인정하지 못할 때 아쉬움을 느낀다. 한번은 어느 독립영화 감독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찾아온 적이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가 정밀한 사전 계산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이창만씨는 “현실적인 상황에 맞춰서 상상한 부분을 조금 축소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감독은 “미국에서는 이런 게 가능한데 왜 우리는 안 되냐”는 요구를 하면서도 시간과 비용을 더 투자하라는 건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충분히 현실적인 제약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욕심은 끝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창만씨에게는 속상한 경험으로 남았다.

* 필모그래피
상업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범죄의 재구성> <알포인트> 등 다수
독립영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남기웅) <세탁기> <자장가> <빵과 우유>(원신연) <더 데이>(박선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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