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그때 그 사람들> 후폭풍 [1] - 법원의 삭제 결정에 던지는 궁금증
2005-02-22
글 : 이종도
임상수를 위한 변명

1월31일은 역사에 오랫동안 남을 악몽의 날이었다. 이날은 사법부가 한국영화 위에 군림하여 한국영화를 통치하기 시작한 첫날이자, 직접 한국영화 창작에 뛰어든 첫날이다. 관객의 볼 권리를 박탈하고, 헌법의 사전심의 위헌 판정을 뒤집은 이 사태를 1·31 쿠데타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서울중앙지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제작사를 상대로 낸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다큐멘터리 세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상영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3분50초가량의 다큐멘터리가 없어지고 검은 무지화면과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사실상 법원이 제작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 3분50초는 존 케이지가 1952년에 만든 <4분33초>를 넘어서는 파장을 일으켰다. 아무나 어떤 악기를 써서 연주해도 되는 4분33초간의 침묵의 음악과 법원이 만든 ‘3분50초’는 퍽 많이 닮았다. 존 케이지의 <4분33초>가 선입견을 깨뜨리며 충격을 안긴다면, 법원의 판결이 만든 3분50초의 공백은 헌법이 정한 테두리를 깨는 파격을 준다.
영화 자체의 상영금지는 막은 셈이니 이번 판결이 어느 정도 진보적인 결정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법원이 작품의 일부를 자의적으로 들어내도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그림이나 음악에서 어떤 대목을 없애라는 결정과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이 결정은 헌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지난 1996년 헌법재판소는 사전심의가 검열에 해당하며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이번 사건의 경우,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에서 삭제결정을 내렸다는 차이가 있지만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헌법재판소가 금지한 사전심의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더 나아가 영화를 보고 판단할 관객의 몫을 미리 가로채며 관객을 우롱했다.
아무튼 제작사가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임에 따라 <그때 그 사람들>은 매우 괴이한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제작사의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임상수 감독을 판결 당일과 이튿날에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이 영화를 ‘박정희의 유령을 쫓아내기 위한 엑소시즘’으로 본 남재일과의 심층 대담을 준비했다. 논란을 일으킨 작품 안팎에 대한 예민한 풍향계가 되어줄 것이며 작품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편집자

삭제명령이 내려진 다큐멘터리 장면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

올해 2월 영화계 최대의 이슈는 법원이 연출한 한편의 슬래셔 무비가 될 듯하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사지가 절단돼 너덜너덜한 채 나타나 피를 뚝뚝 흘리며 극장가에 걸렸다.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해 영화 앞뒤에 배치한 다큐멘터리는 허공 속으로 연기처럼 날아가버렸다.

1. 버릇없는 영화 길들이기인가?

법원의 판결이 발표된 1월31일 저녁, 임상수 감독을 만났다. 침통한 표정이라기보다는 담담했다. 법원의 판결을 어느 정도 예감한 듯했다. “다큐멘터리의 일부분을 걷어내라고 하지 않을까 예상했다”는 것이다. 시사 전까지 철저하게 영화에 관한 정보를 통제했던 제작사가 가장 우려한 것도 영화의 앞뒤로 다큐멘터리가 배치되었다는 사실이 누출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임 감독은 담당 변호사가 펑펑 울면서 전화를 했다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대신했다. 자신의 영화는 결코 도발하는 게 아니며, 기껏해야 합리주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것이 극단적으로 비쳐질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일보>의 ‘버릇없고 무책임한 영화’라는 리뷰가 결국 사법부를 향한 탄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무조건 사실이라고 판단한다는 자체도 우습다. 관객이 현실과 허구를 구분 못할 것이라고 미리 판단해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2. 해외에서 원본 상영은 가능한가?

이튿날 2월1일 제작사 MK픽쳐스는 2월1일 부산 해운대 메가박스 3개관과 서면CGV 1개관을 빌려 시사회를 열었다. 임상수 감독과 백윤식, 조은지 등이 부산으로 날아갔다. 부산에 내리자마자 임 감독의 휴대폰으로 MBC의 <100분 토론>,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비롯한 각종 방송 프로그램 섭외 전화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임 감독은 이 판결이 시대착오적이며 국제적 스캔들이라고 분개했다. 그 얘기를 마치 듣기라도 한 듯이 전화가 연달아 왔다. 이동직 변호사와 해외에 체류 중인 조광희 변호사는 전화로 대법원 판결까지 갈지 모르니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신중하게 언급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이제 감독들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내면화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칸에 출품하려면 아니 늦어도 베니스에 출품하려면 그전에 사법부의 판단이 나와야 하는데. 이 영화가 해외에서 원본 그대로 상영되는 것도 불법인가?”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하던 감독의 말투에선 언뜻언뜻 불안감이 스며 나온다. 실제로 지금 상황이라면 해외에서의 원본 상영도 불법이다. 다만 법원의 이번 결정이 최종결정이 아닌 만큼 본안소송에 가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입장. 임 감독은 이런 상황을 “사회적 재산의 손실”이라고 표현했다.

3. 관객의 볼 권리는 누구에게 보상받나?

영화가 시작됐다. 제작사에서 급하게 준비하느라 무지화면을 마련하지 못한, 앞뒤가 숭덩숭덩 잘려나간 프린트였다. 제목이 올라가자마자 62초간의 부마항쟁 시위장면이 날아가고 바로 본 화면이 상영됐다. 김윤아의 돌발적인 멘트인 “뜬금없게도, 박정희는 총에 맞았습니다”도 사라졌고 화면과 믹싱은 갑자기 튀었다. 부마항쟁 다큐멘터리로 시작되며 긴장감을 자아내는 영화 앞이 온전히 사라지고, 영화의 여운을 안겨주어야 할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 장면 2분48초도 증발하면서 영화는 마치 만들다 만 듯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관객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외투를 챙겨나갔고 ‘뜬금없이’ 끝난 영화는 조악한 코미디를 선사하고 황황하게 사라진 코미디언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볼 권리를 박탈당한 관객은 누구에게 이 손해를 청구해야 하나?

4. 과연 임상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욕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나?

한 50대 관객은 “우리 세대는 영화 속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알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을 모욕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볼 만한 영화지만 혹시 그 사건을 모르는 젊은 관객은 지나치게 희화화됐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감독의 얘기는 이렇다. 임상수 감독이 박정희 대통령 역으로 생각한 배우들은 송재호, 전성환, 오태석 등이었다. 오태석은 임상수가 제자임을 자처하는 존경하는 연극계의 큰 거목이며, 전성환은 중후하고 깊이있는 연기로 알려진 연극배우이다. 송재호는 이번 연기에서 최대한 우아한 연기를 감독에게 요구받았다. 감독은 송재호의 연기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연민을 자아내는 송재호에게서 모욕을 느낀다는 게 이상하다는 얘기다.

5. 영화의 표적은 박정희인가, 박정희 시대의 가치관인가?

부산으로 올라가는 비행기에서 임 감독은 주요 일간지 몇개를 뽑아 샅샅이 훑었다. 판에 박은 듯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모두 사설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법부 판단에 대해 개탄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신문이 입이라도 맞춘 듯 비판을 한다면 사법부 판단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는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의 사설을 나란히 살폈다. 같은 계열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논조가 똑같다.

“사실 <조선일보>의 리뷰가 문제가 아니라 박정희 시대의 가치관이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는 게 문제 아닐까. 기자는 기자, 작가는 작가의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때 괴물이 되는 게 아닌가. 난 박정희 시대가 남긴 청산돼야 할 유산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사건일지


2004년 9월10일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촬영 시작

2004년 12월6일 촬영 종료
2004년 12월21일 각 일간지 엠바고(보도 개시 시점) 깨고 영화의 정치적 파장 보도

2005년 1월1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 서울중앙지법에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감독)이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신청 제출

2005년 1월24일 제작사인 MK픽쳐스, 용산CGV 전관을 빌려 정치인, 학자, 비평가, 배우, 기자 등 2200명 불러 시사회

2005년 1월26일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상영금지 가처분신청 전에 배급과 투자를 철회했다는 소식 뒤늦게 밝혀짐

2005년 1월26일 <조선일보>, “역사를 버릇없고 무책임하게 다뤘다”고 비판. <동아일보>, “역사와 우리 자신에 대한 모멸감”이라고 비판

2005년 1월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이태운 부장판사), 다큐멘터리 세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상영할 수 없다고 결정

2005년 2월1일 여성영화인모임과 문화연대, 영화인회의, 디렉터스컷 등 영화·문화 단체들 각각 성명서 내고 법원의 결정 비판

2005년 2월2일 제작사 MK픽쳐스, 제소명령 신청서 법원에 제출(가처분명령을 내린 법원이 채권자에 대해 본안소송을 제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현행법상 가처분신청은 본안 소송 제기를 전제로 해서 신청하게 돼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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