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그때 그 사람들> 후폭풍 [2] - 임상수, 남재일 대담 ①
2005-02-22
글 : 남재일 (문화평론가)
사진 : 정진환
“나는 모든 권위를 철저하게 경멸한다”

남재일, 임상수의 정치적 입장과 영화적 태도를 묻다


임상수는 뭔가 건드린다. 바늘 혹은 표창 같은 걸로, 사회 혹은 그 안에 담긴 사람을. 그런데 불분명하다. 무엇을 혹은 누구를 위해 건드리는지. 그래서 그는 일단 청부자객처럼 보인다. 그의 의뢰인은 누구일까?

임상수의 영화는 사회적 소음을 불러일으킨다. 미혼여성의 야한 수다, 십대들의 음산한 비명, 아줌마의 요란한 신음, 절대 독재자 살해의 총성까지, 그의 영화는 시끄럽다. 그는 누구를 향해 외치고 있을까?

임상수는 모호하다. 여성 관객은 감정이입이 안 된다고 한다. 남성 관객은 저 사람 진심으로 여성에 대해 저리도 애정이 많을까 의심한다. 보수파들은 싸가지가 없다고 매도한다. 진보세력은 왜 우리 편에 서서 얘기하지 않으냐고 아쉬워한다. 영화제작자는 왜 그리 화끈하게 대중적이지 않냐고 분발을 촉구한다. 평론가들은 왜 그리 상업주의의 미련을 못 버리냐고 자제를 당부한다. 마초도 페미니스트도 아닌, 좌파도 우파도 아닌, 아트필름 지향도 상업주의 지향도 아닌, 그는 그래서 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인터뷰는 이 모호함에 대한 탐문이지만, 특히 정치적 관점이 불투명하다는 세간의 지적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나는 이 지적에 절반만 동의한다. 내가 이해하는 임상수의 정치성은 아나키적인 ‘반정치의 정치성’이다. 정치가 특권화된 문화에서 정치적 코드를 매개하지 않고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도구적 가치인 정치성을 절대화하는 경직된 권위주의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에 함몰된 개인을 복원하기 위해 ‘정치’에 저항하는 것은 ‘정치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권위주의를 통하지 않고는 현실적인 참여가 어렵다는 당대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탈정치적이다. 실제로 그의 태도는 개인주의 방법론으로 서서히 진보를 추구하는 ‘문화좌파’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그의 정치적 관점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은 어디에도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야유와 풍자로 묘사를 하는 그의 화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의 모호함은 정치적 관점의 부재가 아니라 미학적 태도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감독의 ‘육체’가 화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미적 형상에 자신을 몰입시키지 않는 미학적 부실 혹은 유보 상태에 다름 아니다. 정치적 관점은 감독의 ‘육체’ 중 작은 손가락 하나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인터뷰어가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터뷰는 인사동 밥집에서 했는데, 이종도 기자가 질문에 함께 가담했고, 김현정 기자가 대화 내용을 정리했다.

남재일 | 다큐멘터리 부분을 삭제하고 상영하라는 법원 판결 때문에 논란이 분분하다. 법원의 판결을 지켜보고, 또 언론의 반응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던가?

임상수 | 이 영화 내놓고 두번 놀랐다. 첫째는 영화 관계자들 입장과 보수세력의 입장을 절묘하게 절충한 판사의 판결에 감동 먹었다. 솔로몬의 지혜를 짜낸 그 판사, 아마 무지 고민 많이 했을 거다. 네티즌들에게는 검열이라고 욕먹고, 보수세력들한테는 소심하다고 욕먹고, 그 심경 이해가 간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언론의 호들갑에 또 한번 놀랐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온 나라가 법석을 떨 만한 정치적 문제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구석에서 상영하고, 소규모로 논쟁할 만한 정도일 뿐이다. 그런 영화가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그 대가로 필름을 잘라야만 한다는 건 비극이다. 누가 단지 영화에 불과한 ‘그때 그 사람들’을 전 사회적인 문제로 만들었을까? 나는 언론이 과도하게 정치성을 부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의 정치 지형에 이 영화를 대입하면 고도로 정치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정치적 발언을 할 의도는 없었다. <조선일보>는 내가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퍼부어대듯이 정치적인 포화를 ‘꼬마 감독’에게 퍼부어댄다.

남재일 |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이 박근혜, 박지만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부분인데, 무슨 생각으로 다큐멘터리를 삽입한 건가?

임상수 | 박근혜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는 우리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긴 했다. 하지만 명백히 그런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 다큐멘터리 부분은 영화적으로 정교하게 계산해서 편집했다. 이 영화는 박정희의 죽음에 관한 영화다. 다큐멘터리 부분에서 사람들은 박근혜가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태극기에 싸인 박정희의 관이다. 그 다큐멘터리는 박정희의 관이 무덤에 탁 내려앉는 그 순간 끝이 난다. 그 관 속엔 내가 찍은 픽션의 제일 중요한 인물이 있다. 그 인물 때문에 내가 이 영화를 찍었다. 너무도 불행하게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퍼스트레이디이자 장녀인 박근혜가 소복을 입고 그 관 옆에 있는 것뿐이다. 그걸 내가 CG로 지울 수도 없고. (웃음)

나는 ‘보여주기’의 힘을 믿는다

남재일 | 박정희가 죽은 지 30년이 됐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한국의 기득권 내지는 수구파가 단합을 위해 신봉하는 마스터 심벌 같은 존재고, 그 딸은 지금 보수당의 당수로 있다. 제작과정에서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보수세력에 대해 강력한 정치적인 공격을 담고 있지 않은가?

임상수 | 물론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박정희는 정치적으로 독재자지만 한국 근대화를 일으킨 근대화의 아버지다. 그는 청렴하고 강직하며 검소했다. 미국과 일본에 큰소리 뻥뻥쳤던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에 그 이미지와는 다른 박정희의 진실을 쓰면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그건 모두 조작된 이미지였다는 뜻이다. 그는 18년 동안 이미지를 조작했지만 단 하루 그럴 수 없었던 날이 있었다. 단 하루, 모두가 박정희에 관해 사실 보도를 해야 하는 날이 있었다. 그게 10월26일이다. 박정희가 죽은 날. 그가 뭘 하다가 누구에게 어떻게 총 맞아 죽었는지는 보도를 해야 할 거 아닌가. 나는 그날이 대중에게 박정희의 진면목이 드러난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마, 뜨거워라, 이런 진실이 나타나다니, 하면서, 누군가 그 진실을 바로 묻어버리고, 사형시켜버리고, 자물쇠 챙겨서 또다시 25년 동안 숨겨왔다. 그런데 누가 숨기고 누가 조작했는가? 박정희 정권에 한발 담그고 이미지 조작해서 이익을 봤던 사람들이다.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 재벌들, 고위관료들. 그건 박정희의 진상이지만 자기네 진상이기도 하다. 그 진상을 계속 숨겨서 잘 먹고 잘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내가 그 진실을 꺼내니까 너무 싫어서 난리법석을 떠는 거다.

남재일 | 당신은 정당하지 못한 기득권이 박정희의 이미지를 조작하고 활용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 한국사회에 공고하게 구축된 박정희 이미지의 구조적인 급소가 10·26이란 사건이라고 믿고 접근한 건가?

임상수 | 나는 그저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주장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아도 보여주기만 하면 되거든. 추악한 진실이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죽은 거야, 이렇게 말할 의도도 없었다. 내가 사실을 보여주면 그 사실이 생각을 낳을 거라고 기대했다. 만약 그날의 진실에서 뭔가 아름다운 것이 나온다면, 물론 나는 아름다운 것이 없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박정희도 찬양받을 수 있다는 거다. 나는 그처럼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나보고 정치성이 없어서 비겁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강력한 정치성이 있다고 믿는다.

남재일 | 이 영화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라는 말을 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누구인지 어리둥절했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같은데, 이들은 어차피 반쯤은 박정희 편에 섰던, 완전한 희생자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무지 ‘진혼’쪽에는 감정이입이 안 됐다. ‘진혼’과 관계된 감독의 정서적 개입도 느낄 수 없었는데….

임상수 | 진혼곡이라는 건 텍스트와는 무관한 코멘트일 수 있다. 영화가 너무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고 소송도 걸리다보니 그걸 희석시키는 전략이 필요했다. 하지만 진혼곡이라 할 수 있는 면도 조금은 있다. 과장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평론가가 민 대령이 철딱서니 없다고 말하는 순간 임상수는 악마가 되고 만다고 했다. 정말 순진한 발상이다. 그들은 중앙정보부의 권력자였고 민주인사들을 감옥에 가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부당하게 죽었다고 해서 미화하거나 영웅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들보다 박정희의 이야기가 더 강했다는 것만은 인정한다.

나는 운동권의 ‘타자’, 그래서 가능했다

남재일 | 지금까지 당신은 스스로 ‘떡 3부작’이라고 부르는 영화 세편을 만들었다. 나는 그 영화들에서 정치와 개인을 연결하는 개인주의적인 감수성을 봤다. 그런데 당신은 갑자기 한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정치적 영역으로 튀어갔다. 이번 영화는 전작들과 당신 내면에서 어떤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임상수 | 나는 여전히 개인주의 감수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구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정치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매우 개인적인 사람이고, 합리적이고자 노력한다. 나는 어떤 조직이나 이데올로기와도 무관하게 나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찍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번 영화와 전작들이 세계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나 방식이 다를 게 별로 없는데 남들은 그렇게 안 보니 말이다.

남재일 | 386세대는 학생운동이라는 집단적 경험을 갖다. 누가 돌을 몇개 던졌고, 누가 감옥에서 몇년을 보냈고, 누가 마르크스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이런 것들이 그 세대 내에서는 특이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세대는 뭘 해도 정치적 개입에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종류의 부채의식 같은 거 있었나?

임상수 | 그런 생각 한번도 한 적 없다. 나는 운동권이 아니었고, 대학 시절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았고. 이른바 386으로 묶일 수 있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궤적을 걸었다. 나는 거기에 속해 있는 사람보다 나 같은 타자가 냉정하고 재미있게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극연출가 이상우 선생이 시나리오를 보고 “이거 우리 70년대 학번이 해야 했던 이야기인데” 하더라. 하지만 그들은 못한다. 나는 타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남재일 | 어떤 평론가가 전작과의 연속선에서 이번 영화를 보자면, ‘아버지 죽이기’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임상수 | <눈물>까지는 그랬다. 개인적인 상처도 있었고…. 하지만 나는 이제 아버지가 되는 세대이고 아버지 죽이기라는 꼬마의 주제는 넘어섰다. 무엇보다 나는 박정희를 절대로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내게 동급의 사람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평론가들이 ‘아버지 죽이기’ 이런 식의 말의 부피가 큰 말, 특히 정신분석적 말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건 은밀히 사람을 배제하는 담론으로 작용한다.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사람을 변방으로 밀어내지 않는가.

내가 관심있는 것은 진실이다

남재일 | 당신의 영화는 매우 공격적이고 신랄하게 발언한다. 지금 ‘아버지’라고 표현한 부분일 수도 있겠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공격하고 싶은 건가?

임상수 | 나는 모든 권위 혹은 권위주의를 철저하게 경멸한다. ‘그때 그 사람들’을 본 사람들은 임상수가 이렇게까지 존경심이 없다는 데 당혹해한다. 좌파와 진보적인 사람들까지도. 그런 걸 보면 나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경멸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경멸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조롱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조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뿌리 깊은 속성부터 아무런 존경심이 없다. 그 근원은 내 부친이다. 그는 존경심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 출세한 사람에 대해 가지는 질투가 있었지만, 나는 한 세대를 겪고 나오면서, 그 질투를 정확하게 걸러냈다. 그의 경멸만을 물려받았다. 경멸하려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만큼도 존경할 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허투로 존경받고 있다는 치명적인 사실 말이다.

남재일 | 당신 영화를 본 평자들은 화법을 두고도 많은 말을 한다. 야유, 풍자, 이런 것들인데…. 그리고 감독의 육체가 안 보인다고들 한다. 연애영화를 찍어도 여자한테 푹 젖지 않고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고, 정치적 좌우 경계도 불분명하다고들 한다. 당신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쿨’이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임상수 | 그건 기자들이 붙인 말이고. (웃음) 특히 <바람난 가족>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나는 특별히 쿨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그냥 나 자신일 뿐이다. <바람난 가족>은 자전적인 영화였다. 거기 나오는 변호사는 바로 나다. 그냥 내 모습을 그렸을 뿐인데 쿨이라는 레테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그 영화를 쿨하다고 하는 건 내게 붙은 레테르를 통해서 보기 때문이고, 영화를 잘못 보고 있는 거다. 나는 이 영화가 ‘핫’하다고 생각한다. 순진한 영화라는 거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이런 순진한 원칙을 강조하는 영화는 ‘핫’하다.

남재일 | 자유주의자라는 평가도 많다. 자유주의자란 말은 누군가의 정치적 입장을 모르겠다와 동의어이다. 기존의 정치적 스펙트럼에 국한하지 말고 당신이 “나는 이런 면에서 정치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는가?

임상수 | 나는 운동권이 아니었고 사회과학서적 한권 읽은 적이 없다. 내가 관심이 있는 건 진실이다. 지금 보수주의자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건 박정희가 와이드하게 펼쳐놓은 가치관이다. 뻥이고 거짓말이고 사기라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아는데, 계속 뻔뻔스럽게 뻥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다닌 사람이 박정희였고 김종필이었다. 이건 정치 이전에 진실성의 문제다. 좌파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인간과 자신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고 집에 가서 오늘도 뻥 많이 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뻥을 걷어내자는 거다. 그건 정치성을 논하기 훨씬 이전에 정리되어야 하는 문제였는데 하나도 정리가 안 됐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은 강간의 대상이다.

남재일 | 보통 사람들은 뻥의 문법 속에서 소통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통에서 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다. 당신은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화든 삶이든 어떤 방식의 소통을 꿈꾸고 있나?

임상수 | 나는 네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이해받고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관객에게 이해받지 못했고 평단에서 이해받지 못했다. 내 영화를 제작한 프로듀서들이 내 영화를 얼마나 이해하는지도 의심스럽다. 하지만 수많은 개인들 속에 나를 딱 이해하는 사람이 숨어 있다. 그걸 기대하는 거다. 내가 지금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살아오면서 읽어온 문학작품과의 교감을 통해 쌓여온 게 있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걸 주고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식의 소통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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