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동수는 어떤 인물인가?
물처럼 고정되지 않은 캐릭터
<극장전>은 홍상수 감독이 전작의 배우를 주인공으로 다시 기용하는 첫 번째 영화이다.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가 배우였다면, 지금의 동수는 감독이다. 그런데 사람이 좀 특이하다. 종종, 연출을 하는 사람이나 연기를 하는 사람이나 서로 쳐다보며 어색하고 또 재밌다는 듯이 껄껄 웃을 때가 있는데, 김상경이 “머리에서 열이 나. 머리가 복잡한 것 같아”라고 하면, “원래 그런 거야. 그게 맞아. 네가 지금 머리가 복잡해”라고 홍 감독이 응수하고, “나같이 이성적인 사람이 이런 거 하려니까 진짜 미치겠네”라고 다시 김상경은 토로한다. 김형구 촬영감독이 <극장전> 동수하고, <생활의 발견> 경수하고 뭐가 다르냐고 농담처럼 묻자, 김상경은 “감독님이 그러는데요, 경수는 동수 형이고, 그 위로 (홍)상수도 있고, (<오! 수정>의) 영수도 있다는데요”라며 웃는다. 물론 농담이다. 안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동수는 정말 어떤 인물인가?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극장전>은 “사람들마다 상황에 대해서 대응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있는데, 그걸 실천하는 데 있어서의 문제점을 가진, 뭔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은 사람이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상황들이 갖는 허구적인 부분들을 통과하면서 부닥치면서 보여지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동수다.
#팔각정 앞 홍주를 가지고 오는 주인 처. 오다가 누군가를 보면, 카메라 팬하고, 동수가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다가온 동수) “갔다오겠습니다.” 동수가 말한다. “네, 돌아오시는 거죠?” “네…” 하면서 잠시 여자를 쳐다본다. 오른손으로 여자의 왼팔을 꼬옥 꼬집는 동수. “아악!” 여자가 자기도 모르게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다. “갑니다.” 모른 척하고 자리를 떠나는 동수.
#남문정 안 “너 요새도 술 많이 먹고 그러냐?” 경상도 피디가 물어본다 “아니, 나 요새 정말 술 안 먹어. 진짜 몸 생각 좀 하려고 그래. 나이가 안 되겠더라고. 아까도 산 위에서 사람들 만났는데 내가 도망나왔어, 술 안 마시려고.” 양처럼. “그래 너도 나이가 들었지, 너도. 그래서 얼굴이 좀 깨끗해졌네.” 경상도 피디가 말한다 “술이 싫어, 진짜로.” 동수가 양처럼. 전 섞이고 싶어요, 무조건요. (중략) 동수가 술을 마신다. 빨리 마신다. 옆의 여자 동창이 쳐다본다. “너무 많이 마신다.” 여자 동창이 말한다. “어, 너무 많이 마신다, 그지. 너 정말로 오래만이다.” 동수가 갑자기 이상한 눈빛이 되어서 째려본다. “그래, 오랜만이야, 그지?” “넌 그렇게 예쁘면 안 되지, 보고 있기가 힘들잖아, 그지.” 동수가 대뜸 키스를 한다 여자가 의외로 순순히 당한다. 그리고는 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옆의 다른 여자를 쳐다보더니 그 여자한테도 키스를 한다. (중략) “아, 좋다! 행복하다!”
김상경 본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생활의 발견>의 경수하고는 성격 차이가 많이 난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 논리적인 체계가 자꾸 바뀌는 인물이다. 남산 타워가 속임수라고 말하기도 하고, 예를 들어 오랜만이다, 밥먹었니, 그러면 너 그 신발 신지 마라. 뭐 이런 식이다. 생각이 되게 독특하다. 날이 서 있다고 할까. 부정적인 면도 있고, 삶에 대해서 나름대로는 정확한 해석을 갖고 있고, 사람들의 거짓됨에 대해서 거부감도 많다. 아마 사람들 무지하게 웃을거다. 미친놈 같기도 한데, 가만 보면 얘가 또 맞는 말만 한다. 일반적으로 강도가 이 정도 얘기해야 정상인 걸 너무 많이 하거나, 너무 적게 하고, 뭐 이런 식이다. <생활의 발견>의 경수에 내 모습이 들어갔다면, 동수 같은 경우는 좀더 양식적이다.”
홍상수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자기의 표현방식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는데, 30대쯤 되면 어느 정도, 50이 되면 어느 정도라는 생각들이 있다. (동수는) 그게 좀 힘들고 오래 걸린다고 할까. 누구든지간에 실제로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 이 사람도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그렇게 살 경우, 되게 피곤하고, 남들로부터 이해받기가 어렵고, 소통이 잘 안 되고, 살아먹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니까 자기 것 중에 강한 거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죽여가는 건데, 어떤 사람은 굉장히 빨라서 그게 중학생 때 자리잡히기도 하는데, 반대의 경우는 (동수처럼) 기본적으로 그런 강력한 환경이나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그 사람 자체가 어떤 수사건 간에 채택을 하고 나서도 간질간질하고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머물지를 않는 거다. 그게 꽤 효율적인 수사의 방법이고 이미지인데도 그것에 대한 일종의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하고.” 동수는 사회의 일반적 용례와는 상관없이 남들이 보기에는 어지럽고, 자신이 느끼기에는 솔직한 의식세계를 따로 갖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사회적 미숙아라고 치부되기 쉽거나, 더 심하게는 부적응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런 유에 가깝다. 하지만 남들이 하고 있는 짓에 대해 자신의 잣대로 참견도 하고, 또 섞여보려고도 한다. 과격하고 원초적인 경수라고나 할까? 이건 또 다른 오디세이처럼 보인다.
<극장전>의 형식적 특징은 무엇인가?
과도한 줌트래킹의 사용
형식적인 면과 관련하여, 현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줌렌즈의 사용이다. 홍상수의 카메라가 살짝만 움직여도 평자들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심지어 이렇게 많은 줌트래킹 사용은 여지껏 없었으며, 다른 어느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다. 홍 감독에 따르면 “사실 줌렌즈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때도 이미 연습을 많이 했지만 쓰지 않았던 것이고, 이번에 맞을 것 같아서 쓰는 것”이다. 김형구 촬영감독의 짐작에 따르면, <여자는…> 때 쓰지 못한 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준 에피소드 하나. “<여자는…> 때는 24mm, 32mm렌즈를 주로 썼다. 어차피 홍상수 영화에서 인물이 모아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50mm렌즈로 살짝 바꿔 끼워봤다. 망원이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초반에는 모르더라. 그러더니 나중에는 이상한지 결국 24mm로 바꾸더라.” (웃음)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홍상수의 앵글은 본능적으로 와이드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화면을 넓게 잡고 버티면서, 인물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처리하여, 의미를 복수화시키고, 그 안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포착해내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김형구 촬영감독이 설명하는 지금의 줌렌즈 사용의 목적은 이렇다. “한컷에 동시에 다 보여주고 싶은데, 또 이동은 싫어한다. 불안하고 안 맞는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것도 이동, 저것도 이동인데, 트래킹은 죽어도 안 하려고 한다. 시간 들고 돈 든다고 하는데 사실 거기서 거기다. 그게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카메라를 안 움직이고 그런 효과 낼 수 있는 게 줌렌즈밖에 더 있겠나. 줌렌즈는 인물의 심리적인 상태를 반영하는 데 많이 사용하지만, 여기서의 기능은 심리적인 이유없이 실제적인 컷의 기능이다. 지금까지 자기가 인물을 가까이 보여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텐데, 그동안은 와이드니까 못했을 거다. 이번에는 인물들의 타이트한 장면까지 찍을 수 있으니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거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이렇게까지 거의 모든 신에 열심히 써야 하는 걸까? 물론 때마다 다르겠지만, 줌트래킹에는 종종 일정한 패턴도 엿보이는데, 여러 명이 있는 경우에는 대략 한신이 시작될 때쯤 클로즈업 사이즈로 액션을 잡은 뒤 줌아웃하여 주위 설정을 보여주고, 다시 투숏 정도로 들어가 인물들의 대화를 잡고, 다시 주인공의 얼굴로 들어가는 형국이 많다. 아직까지 왜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힘들다. 다만 나름의 몽매한 상상력을 발휘해볼 뿐이다. 줌 렌즈의 사용은 <극장전>의 신 수가 비교적 적다는 것과 연관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패턴화될 경우 (구경꾼 입장에서는) 신과 신 사이의 연결에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가령 같은 장소에서 시간만 지난 두 신이 연속으로 붙을때는(갈빗집) 점프된 느낌이 강한데도 그런 점을 별로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달리 궁금한 건 영화적으로 모든 것이 능숙하게 처리된다 해도, 이런 줌트래킹의 현란한 사용이 인물들의 정서를 흔들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줌렌즈를 촌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퇴물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정확하게 이때 촌스럽다는 의미는 ’감정적인 효과’를 내는그 쓰임새가 구식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70년대 서부영화나 무협영화에서 대결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의 긴장감을 보여주던 줌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극장전>의 줌은 인물들의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고, 혹은 그런 감정의 연속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또는 상관없다는) 판단하에 쓰이는 것인가? 그걸 감독과 촬영감독의 설명처럼 컷의 기능을 대신하는 "실용적인 기능"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줌트래킹은 공간 안에서의 ‘이동과 시선’이라는 개념으로서의 실용적인 컷 분할과 관계있기보다 오히려 시간의 장치, 회상 구조의 문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또는 그것에 관객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선택된 영화적 장치이거나, 그것을 숨기기 위해 과잉 해석을 유도하는 장막 같은 것은 아닐까 막연히 생각해본다. 어쨌든 왜 <여자는…> 때 확신하지 못했던 줌에 지금 확신이 든 것일까?
어떤 영화가 나올 것인가?
영화 속 영화와 영화 속 현실의 교차
아마도 현장에서 보지 못한 중요한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많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 영화의 상원과 영실의 주요 장면을 보지 못했고, 동수와 영실의 나머지 행적은 묘연하다. 그중 몇 가지는 앞뒤를 맞춰 추측할 수 있어도, 영화 속 영화의 인물과 영화 속 현실의 인물들이 스치거나 만나거나, 같은 자리에 머물거나, 뭔가 같은 것을 보거나 할 가능성이 높은데, 어디서 어떻게 그 매듭이 ‘복수적으로’ 지어질지 확신할 수 없다. 그 광의적인 구조가 어떻게 서로를 상승시킬지가 궁금할 뿐이다. 그건 결국 창작자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극장전>에는 몇개의 영화가 겹쳐 있다. 영화 속 영화 <극장전>이 있고, 영화의 주인공 동수가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의 욕망이 있을 것이고, 정확하진 않지만, 홍상수의 전작 중 일부도 끼어들 것이고, 그것들이 모여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극장전>이 될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영화는 정작 무엇인가? 나의 감각은 과연 옳은가? 이 지각은 과연 맞는가? 감각과 지각은 시험당할 것이다. 1월29일 새벽 3시에 남산 어귀 갈빗집 맞은편. 현장 방문 마지막 날. 힐튼호텔 앞에서는 한쌍의 남녀가 옥신각신 승강이를 벌이고 있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 나는 이러다가 여기서 갑자기 암전되어 끝나는 건 아닌지 아연해진다. 영화 안인지 영화 바깥인지 헷갈린다. <극장전>에 관한 짧은 ‘현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