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판 <쉰들러 리스트>
테리 조지 감독의 <호텔 르완다>
똑같은 르완다 인종청소를 다루고 있는 <4월 언젠가>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후투가 좋은 놈인가, 투치가 좋은 놈인가.” <호텔 르완다>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아직까지 미국인 기자가 백악관 대변인에게 물어보는 질문의 수준에 멈춰 서 있었을 것이다. 르완다 인종청소는 불과 11년 전에, 단지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100일 동안에 100만명이 몰살당한 비극이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투치족과 투치족을 도와준 후투족이 차디찬 길바닥 위에 시체로 쌓여갈 때 세계가 귀막고 눈감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큰 비극이 되었다. 테리 조지 감독은 아프리카의 쉰들러라 할 만한 호텔 매니저 폴 루세사바기나(돈 치들)의 실화를 장전해 세계인의 무관심을 겨냥해 쏘았고, 그것은 명중했다.
쉰들러는 유대인도 아니었고 약자도 아니었지만, 폴은 아내와 처가가 모두 투치족이라는 점에서 더욱 위험천만했다. 쉰들러는 돈이 많았지만 폴은 기지와 아부가 넘쳤다. 그는 쉴새없이 군인에게 호텔의 위스키와 맥주를 안기면서 투치족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뇌물을 원하는 군인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살아남기 게임의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가는 학살의 여정도 여기엔 생략되어 있다. 후투족에게 잡히면 바로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로서는 더욱 가슴 아프게 와닿는다.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서처럼, 한밤중에 전짓불을 들이대며 ‘좌냐, 우냐’고 물을 때의 서슬퍼런 질문이 바로 이 영화에서의 ‘후투냐, 투치냐’ 하는 질문과 똑같기 때문이다. 고압선에 흐르는 전기처럼 영화의 긴장은 우리의 마음을 새까맣게 태운다. 다행히 살아남아 유엔군의 엄호 아래 국경을 벗어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인간의 광기는 언제든지 상식을 무너뜨릴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폴이라는 영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의외로 넉넉하다. 호텔로 피난 온 어린이들이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영화에 가득한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테리 조지 감독은 북아일랜드 출신으로〈아버지의 이름으로〉를 쓴 각본가 출신. 1997년작 <어느 어머니의 아들>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연출작이다.
테리 조지 감독 인터뷰
“아프리카 문제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당신 나라인 아일랜드에서는 먼 아프리카의 르완다 얘기인데.
=시나리오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현재 브뤼셀에 사는 폴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내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뒤 폴이 나를 찾아와 5일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왜 갑자기 아프리카가 주요 테마로 부상한다고 생각하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프리카 문제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영화가 많았지만 늘 알코올 중독의 백인 식민통치자가 등장하는 클리셰가 있었다. 나는 이 클리셰를 깨고 싶었다. 그곳의 혼란, 전쟁, 고통, 희망, 용기 등을 보여주고 싶었다. 매우 현실적 테마임에도 할리우드는 이를 거부했다. 이 영화는 일종의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전이 진행 중인 콩고를 위한 캠페인.
-이런 참사에 무지했던 세계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지라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매스컴은 책임이 있다. 우리가 르완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서방 정부들은 르완다 사태의 공범이다. 그 당시 실수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같은 사태들이 일어나고 있다. 창피한 일이다.
-잔혹한 현실을 영화라는 형식으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도전인데.
=잔혹한 참상은 찍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머지는 괜객에게 상상의 여지로 남긴다. 대신 나는 폴이란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영화에 센티멘털하고 로맨틱한 요소를 집어넣으려는 감독의 노력이 보였다.
=폴 부부를 만났을 때 나는 그들을 한팀으로 보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신념으로 그들은 한팀이 되었고, 폴의 아내 타치아나는 늘 폴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었다. 영화를 지탱해가는 힘도 바로 그런 가정을 지키려는 신념과 노력이다. 내가 아무리 정치적 영화를 만든다 해도 영화감독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 줄 의무는 있다. 입장료가 얼마가 되었든, 관객은 뭔가 영화적 체험을 하고 극장을 나서기를 바란다. 이번 영화에서는 바로 그것이 핵심이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 말이다.
기차는 세상의 축소판
에르마노 올미·압바스 키아로스타미·켄 로치 감독의 <티켓>
좁은 기차 객실은 하나의 우주다. 사람들은 여기서 만나서 안 만난 척 외면도 하고, 싸우고, 미워하고, 도와주고, 인연을 맺는다. 함께 영화를 만든 에르마노 올미(74), 압바스 키아로스타미(65), 켄 로치(69) 세 거장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노년의 지혜를 웃음으로 감싸안아 선물로 준다. 그건 사랑과 지혜에 한발 더 가깝게 갈 수 있는 티켓이 된다.
올미 감독이 들려주는 첫 에피소드는 노교수가 주인공이다. 손자의 생일 파티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두르는 교수는 특실 기차 안에서 복도에 불편하게 선 채로 아들을 안고 있는 젊은 어머니를 본다.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던 한 고급장교가 복도에 승객이 서 있으면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고 그 와중에 어머니는 젖병을 엎지른다. 교수는 장교의 눈치를 보며, 손자 같은 아이를 도울 방법을 궁리한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공공근무를 위해 뚱뚱하고 괴팍한 노부인을 모시게 된 스물다섯 먹은 청년 필리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부인은 2등석 자리를 끊고는 특실 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좌석 주인이 자기 자리이니 비켜달라고 정중하게 요구를 하지만 묵살할 정도로 노부인은 심술궂다. 필리포는 노부인의 아집에 지쳐 도망가고, 노부인은 당황해한다.
이야기는 서서히 재미를 더한다. 켄 로치 감독은 로마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온 혈기방장한 10대를 보여준다. 경기 구경은커녕 좌석표를 잃어버려 경찰에 넘어갈 처지가 된 이들은 가난해 보이는 알바니아 소년 가족을 혐의자로 의심한다. 이 열혈 축구팬들은 위기를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까. 알바니아에서 힘겹게 빠져나온 돈없는 가족들을 다그쳐 표를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경찰서로 끌려갈 것인가. 켄 로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 가족과, 슈퍼마켓에서 힘겹게 돈을 모아 축구를 보러온 10대 소년을 한자리에 불러세운다. 그리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인가. 어떻게 해야 세상은 더욱 살 만한 곳이 되는가. 관객은 환호성을 지르며 감독의 질문에 답하게 된다.
세 감독 인터뷰
“일상의 드라마에서 기쁨을 찾으려 했다”
-어떻게 다 함께 모여서 같은 주제에 접근할 수 있었나.
=이건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다. 세명의 요리사가 각자 만든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조화를 이루는 게 더 중요했다. 이건 그저 영화가 아니라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만드는 우정의 체험이었다. 음식을 만들고 그걸 함께 즐기는 일이라 의미있었다.(에르마노 올미)
=먹고 만들고 만나는 거 맞다. 좋은 디너 식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켄 로치)
=나는 여행하는 걸 좋아하고 기차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머지 두 사람에게 제안했다. 기차라는 공간은 계속 움직이면서 영화를 굴러가게 한다.(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무엇을 공통되게 발견했나.
=공통된 접근은 일상의 드라마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었다.(로치)
=켄 로치의 작업을 보지 못해서 그가 어떻게 하는지는 모른다. 유명한 작가들과 만나서 행운이었고 어떻게 일하나 보게 돼서 행복했다.(키아로스타미)
=영화 속 상황은 기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다가 서로 이해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대사보다 중요한 건 감정이었다. 말 뒤에 숨은 감정 말이다. 마음의 핵이랄까. 우리는 결국 같은 얘기를 하게 되는 건데 여행 중에 뭔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는 이유랄까.(올미)
-키아로스타미, 당신의 영화는 매우 느린데 여기에서는 빠르게 움직인다. 어떻게 변화했나.
=모두 자기가 느끼는 대로 찍었다. 시속 80km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말이다. 사실 내 영화는 느리고 조용하다. 이번엔 빠르게 진행되는데 영화에 어울린다. 내 팬들이 이 영화의 빠른 속도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
-키아로스타미, 당신 영화는 졸립다. 다른 두 사람 영화를 보면서 졸렸나.
=사실 나는 졸린 영화를 좋아한다고 한 적이 절대 없다. 나머지 다른 두 사람의 영화는 빠르다. 아주 빠른 것은 아니지만. 모든 영화엔 저마다의 리듬이 있음을 알았다. 영화의 스피드에는 정말 상관이 없다.
순교자 소피의 세계
은곰상 감독상·최고여배우상 수상작·마크 로테문트 감독의 <소피 숄-마지막 나날>
1943년 뮌헨의 한 대학. 교수도 교직원도 심지어 학생도 나치의 감시의 시선 아래 있는 곳이다. 그들은 기꺼이 감시의 시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신과 친구를 감시한다. 소피 숄(율리아 옌치)과 한스 숄(파비안 힌리히) 남매는 그러나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유 의지가 있음을 일깨운다. 그러나 억누를 수 없는 자유의 충동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는 값을 치러야 했다. <소피 숄…>은 신나치가 들고 일어서는 광풍 속에서 해독제로 등장한 것일까 아니면 나치의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위안과 치료행위일까. 독일 기자들은 조용히 이 작품에 열광했다. 어떻게 평범한 인간이 위대한 인간이 되었는가를 긴장 넘치게 그렸다. 심문과 재판 과정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출하고 내용도 별 게 없지만, 분노와 각성을 요구하는 힘이 돋보인다.
1943년 2월17일, 반나치 유인물 배포부터 22일 오후 처형까지 엿새간이 숨가쁘게 흐른다. 시체나 혈흔도 없이 공포감을 조성하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소박한 우리의 주인공 소피 때문이다. 빌리 홀리데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슈베르트의 <숭어>를 듣던 여린 학생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면서 누구나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지점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소피는 처음엔 유인물을 뿌리러 학교에 나온 게 아니라 친구를 만나러 학교에 나온 길이었다고 잡아뗀다. 관객은 자꾸만 늘어나는 소피의 거짓말이 심문의 그물을 무사히 빠져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눈길은 유인물을 담느라 텅 빈 커다란 가방을 향한다. 가방의 크기와 배포한 유인물의 양이 딱 맞아떨어지면 어쩌지. 소피와 한스가 둘러대는 거짓말이 아귀가 맞지 않으면 어쩌지. 소피는 거짓말이 하나씩 들통나면서 오히려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용기를 얻는다.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며, 용기를 얻어간다. 마지막 소피가 단두대에 목을 내미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소피와 동행한다. 율리아 옌치의 연기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소품이며, 감정에만 호소하는 한계가 있지만 한 인간에 대해 몰입하는 집중력이 놀랍다. 마크 로테문트 감독은 1990년 데뷔 이후 TV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극영화는 이번이 세 번째 연출이다.
마크 로테문트 감독 인터뷰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영화를 찍게 된 동기는.
=2년 전 소피 숄 사망 60주년에 맞춰 실린 기사를 읽었다. 취조와 재판기록을 읽으니 그 내용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대본에는 소피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가 참여했고, 또 다른 여동생으로 소피가 있던 감옥에 4개월 동안 투옥되어 같은 취조관에게 심문을 당했던 아넬리자 그라프가 자문을 했다. 영화 대사의 80∼90%는 실제 취조기록에서 가져왔다. 말 그대로 인용했다.
-역사를 개인적 시각에서 보는 트렌드에 따른 것인가.
=나는 1968년생이다. 나는 독일이 저지른 역사적 만행에 책임감은 느끼지만 직접적 죄의식은 없다. 아마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게는 관객이 영화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감정이입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는 것 말이다. 소피 숄은 백장미 그룹 중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사형당했다. 대학에 전단을 뿌리는 행동의 지도자 역할을 오빠가 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피는 무척 놀랐지만 오빠를 결국 설득, 전단 종이와 봉투를 마련하고, 가방에 전단을 넣어 독일 전역으로 다니면서 가가호호 편지통에 넣는 일까지 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당시 나치에 대항하는 세력이 폭넓고 방대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역사적 또는 사회비판적 영화는 처음인데.
=열흘 전 시사회가 있었다. 소피의 여동생들과 백장미 그룹 일원 같은 당시대 증인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나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여기저기서 신나치 범죄가 행해지고 극우파 정당이 부상하며, 심지어 청소년들에게까지 나치즘이 어필하는 현실에 참담하다고 말했다. 나치 범죄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 위험이 사그라지기는커녕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시대 희생된 인물들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 히로히토의 절망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감독의 <태양>
렘브란트의 그늘 짙은 초상화처럼, <태양>의 화면도 어둑어둑하다. 태양처럼 하늘 위에 떠서 일본 신민, 나아가 대동아공영권을 굽어보던 히로히토 천황의 마지막 날은 잔뜩 흐리고 궂다. 깊은 밤이거나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럴까. 그런데 천황은 유럽식 아침상을 받아먹고 있지 않은가. 한낮의 정원조차도 어둡기 짝이 없다. 기자들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가 내내 한밤중인 영화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떠난다. 그런데 이 짙은 어둠 속에서 한 고독한 인간의 내면이 하나둘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소쿠로프(54) 감독이 히틀러를 다룬 <몰로흐>(1999)와 레닌을 다룬 <타우르스>(2001)에 이어 선보인 <태양>은 밝음과 어두움을 대조하며 인간 히로히토를 그린다. 신으로 군림했으나 이제 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초라한 인간의 초상화다.
아무리 패망의 날이라고 하더라도 히로히토가 차지하고 있는 방은 군색하다. 침침한 조명 아래 나이 들고 머리 벗겨진 집사에게 시중받는 천황은 몰락한 소지주처럼 보인다. 미군이 코앞까지 쳐들어온 상황, 그는 선택을 해야 한다. 항복을 하거나 붙잡혀 처형을 당하거나. 그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마음을 다스려보기로 한다. 1월의 눈과 3월의 사쿠라는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는 시를 써보기도 하고, 게의 표본을 연구하기도 한다. 위기에 몰린 인간의 내면은 이처럼 똑같이 절망적이고 외롭지 않은가라고 감독은 묻는다. 미군 앞에서 찰리 채플린 같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맥아더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기도 하는(천황이!) 모습이 연민을 자아낸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신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의 지위가 버거워 하루빨리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독재자의 내면을 단 하루의 상황 속에 잡아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쉽사리 독재자를 감정적으로 재단하지도 않으면서 한 인간과 그 시대의 깊이에 도달한다.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감독 인터뷰
“역사적 존재들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인물들을 주인공을 삼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히틀러나 히로히토나 참으로 유일무이한 역사적 존재들이다. 이런 인물들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인본주의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와 히로히토의 차이는.
=나는 역사나 정치 자체에 관심은 없다. 단지 상황이 내 관심을 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인간들에 대한 관심이다. 이들이 그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가는가, 즉 그 극복과정에 대한 관심 말이다. 인간이 권력이라는 무기를 갖게 되면 대부분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되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 예술 아닌가? 권력이란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도 본질적으로 잔인하다. 그 본질이 내게는 아주 중요한 테마다. 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불행하다. 그들은 내면의 조화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폭력과 권력은 조화를 본질적으로 거부한다. 내면의 조화를 상실했다는 점에서 히틀러나 히로히토는 다 불행한 인간이다. 히로히토는 휴머니즘의 본질을 이해하고 지키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가를 이끌고 있었다. 그 나라는 몰락하기 직전 경계에 처해 있었다.
-천황을 주인공으로 하다니, 대단히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킬 텐데.
=우리는 이 역사적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히로히토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다. 이 영화는 풍부한 감정을 쏟아 부드러운 접근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영화가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관객은 남들을 용서하려는 준비가 된 사람일 것이다. 용서할 준비가 된 마음으로는 모든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촬영까지 맡은 이유는.
=사실 촬영에 만족을 못해서다. 그리고 감독의 입장과 카메라맨의 입장에서 보는 배우가 다르다. 카메라를 잡으면 배우에 대해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촬영까지 직접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 덕에 매우 깊이있는 연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내게 촬영이란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새로운 악기 연주법을 배우는 것 같다.
고독이 있는 포르노 판타지
은곰상 예술공헌상 수상작· 차이밍량 감독의 <떠다니는 구름>
고독을 소리의 이미지로 담아낸다면 무엇이 될까. 텅 빈 긴 지하도에 울리는 슬리퍼 소리는 어떨까. 도시인의 황량한 내면, 관계에 대한 소망과 실패를 줄기차게 다뤄온 차이밍량(48)의 신작은 질질 끌고 가는 슬리퍼 소리로 문을 연다. 소리도 사막 같지만, 이미지도 황량하다. 이제껏 자신의 영화에서 끊임없이 내린 비 대신, 가뭄을 스크린으로 끌고 들어왔다. 가뭄이 깊을수록 홀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냄새를 그리워한다. 그들의 판타지는 그리고 그럴수록 비옥해진다. 포르노 배우(이강생)는 귀두 모양 모자를 머리 위에 뒤집어 쓰고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춤을 추며, 투어 가이드(첸쉬양취)는 수박우산에 둘러싸여 진 켈리 흉내를 낸다. 꿈장면은 ‘나는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 될 테야’ 같은 뮤지컬 노래로 넘실거린다.
꿈속에선 소통이 가능하지만 현실에선 소통은 차단된다. 포르노 배우들은 서로의 몸 사이에 수박을 끼워 섹스를 한다. 투어 가이드는 낮에 우연히 만난 남자를 떠올리고 그를 위해 만들어준 수박주스를 생각하며 수박을 애무한다. 언제나 한 다리를 건너야, 다른 무엇인가를 경유해야 그들은 가까스로 만날 수 있다. 여자는 남자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줄도, 포르노 배우인 줄도 모른다. 남자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무섭다. 외로움보다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이제 관객이 고독을 상징해줄 소리를 찾아 감독에게 답해야 할 순간이 온다. 11년 전 <애정만세>에서 흘러나온 그 긴 울음소리가 혹시 아니냐고? 맞다. 그러나 울음소리는 스크린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울어야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와 남자는 드디어 만나지만, 서로의 몸으로 직접 달려들지 못한다. 남자는 정신을 잃은 포르노 배우의 배 위에서 여자의 얼굴을 드디어 보고, 여자는 포르노 배우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여기며 절정에 오른다. 사랑은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각성과 그럼에도 사랑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라는 참담한 슬픔을 동시에 안기는 장면이다.
차이밍량 인터뷰
“인간의 몸은 통제될 수 없다”
-당신 영화가 즐겨 다루는 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몸을 이용한다. 우리는 여러 면에서 몸을 남용한다. 포르노를 찍고 몸을 이용해서 돈을 번다. 우리의 몸은 혼란스런 카오스란 걸 알게 된다. 우리는 진지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강생과 10년 동안 함께 찍어오면서 그의 육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내 영화가 해온 것이며 거기에 육체에 대한 나의 견해가 있다.
-10년간 같은 배우를 쓰는 이유는.
=나는 내 배우를 좋아한다. 내 주위의 배우들을 관찰한다. 내가 이용하고 분해할 수 있는 육체다. 영화를 통해 내가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상 같은 스타배우를 이용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내 영화 속 배우는 소비품이 아니라 생산자다.
-너무 야한데 대만에서 상영이 가능할까? 그리고 대사가 거의 없다.
=타이완은 매우 재미있고 열려 있는 지역이다.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 대만에서 스폰서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대만에서 편집이나 가위질을 하지 않고 상영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요즘 사회는 많이 너그러워졌다. 대사가 적은 것은 아마도 그들이 고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 같이 있지만 말은 많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몸으로 언어를 나눈다. 몸은 감각적이고 아주 잠재적 힘이 풍부한 언어다. 이런 식으로 배우의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방식을 누군가는 거칠다고 하는데, 나는 여기서 진정성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영화 안에서 음식과 섹스가 유비적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하다.
=몸은 많은 것을 요구한다. 정열, 사랑, 그리고… 몸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구름도 마찬가지다. 구름은 꾸준히 움직이고 가고 온다. 통제될 수 없고, 움직인다. 몸도 그렇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그건 통제될 수 없다. 섹스를 생각한다면, 그건 매우 깊은 사적인 비밀이며 친밀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영화에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내 영화는 당신이 보고나서 잊는 게 아니라 생각하게 하고 당신 몸에 남는 것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