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다룬 <몰락>부터 히로히토 일본 천황 다룬 <태양>까지
제55회를 맞는 베를린영화제의 경쟁부문은 그 어떤 해보다도 화제작이 적었다. 베를린에서 화려하게 첫선을 보이리라던 <에비에이터>는 이미 개봉되어버렸고, 또 다른 할리우드영화 <하이츠>(Heights)는 경쟁부문에서 취소되기도 했다. 함께 영화제에 참석했던 남편과 나는 베를린에서 본 최고의 작품은 아파트에서 16인치 텔레비전으로 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볼 정도였다.
권력자를 인간으로 조명한 최초의 영화들
그러나 어떤 영화제든 적어도 한번은 참으로 기이한 영화가 숨어 있다 튀어나오는 마법상자 같은 면이 있게 마련이다. 올해에도 그랬다. 공교롭게도 나는 한달 동안 자그마치 네편이나 권력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는 아주 유사한 영화들을 한국과 베를린에서 연이어 보게 되었다. 그것들은 환영처럼 최면처럼 역사의 순간들을 콜라주해서 이어붙여 거대한 뫼비우스 띠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이들 영화에서 박정희의 마지막 날은 유흥으로 시작해 암살로 끝을 맺었고, 히틀러의 마지막 날은 휘몰아치는 폭탄 세례로 시작해 자살로 끝을 맺었으며, 미테랑의 마지막 날은 적막으로 시작해 적막으로 끝이 났다. 일본 천황은 1945년 8월15일에야 태양의 신에서 인간이 된 것으로 보였다. 그들 영화들은 각각 <그때 그 사람들>, 독일영화 <몰락>, 프랑스영화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 러시아영화 <태양>. 이건 할리우드가 위인들의 전기영화에 몰두하듯,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유행처럼 아니면 우연히 내게 닥친 행운 같은 것은 아닌가. 게다가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은 프랑스가 최초로 다루고 있는 현대의 대통령이며, <태양>에서도 일본 천황 역시 스크린에서 감히 클로즈업 상태로 얼굴을 드러낸 최초의 영화라는 것이다. 이들 영화들은 ‘최초’와 ‘인간’이라는 데 방점을 찍는 대외 전략까지도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히틀러의 마지막 날 <몰락>
먼저 지하벙커 속에서 독일의 패전을 눈앞에 둔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몰락>은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그렸다 해서 개봉 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요즈음 개봉된 독일영화만을 묶어서 상영하는 저먼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히틀러를 포함하는 괴벨스와 제3제국의 붕괴를 다룬 이 영화에서, 히틀러는 아이들의 볼을 꼬집고 부하들의 항복에는 분노하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애초 생각한 것보다 몰락은 히틀러를 옹호한다기보다 히틀러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데 더 주력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공평할 것 같다. 정부였던 에바 브라운은 ‘15년간 알았으나 도저히 알 수 없는 남자. 자기 앞에서는 개와 채식 이야기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히틀러를 평가한다. <엑스페리먼트>로 감독 데뷔를 한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은 히틀러의 자살을 축으로 제3제국 고위관리들에게 돌림병처럼 번진 자살과 파멸의 도돌이표를 두 시간 가까이 쉴새없는 폭탄음과 함께 광시곡풍으로 연주한다. <몰락>에서 거대한 전쟁의 신은 끊임없이 죽음의 낫을 휘두르는 망나니의 광적인 춤사위를 춘다. 지옥도에 가까운 베를린 시민의 상황과 절망적으로 마지막 파티를 여는 에바 브라운의 춤이 교차편집되고, 특히 괴벨스와 그의 부인이 자신의 6명의 아이들을 수면제로 잠들게 한 뒤,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은 신의 맷돌은 천천히 구르지만 그 어느 낱알도 놓치지 않음을 여실히 절감하게 했다.
노대통령의 여명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
그러나 죽음의 광시곡이 있다면 삶의 여유도 있는 법. 히틀러가 최후의 그 순간을 맞을 즈음 청년 미테랑은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될 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여서 드골을 만났던 것.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할 때 프랑스 최초로 사회주의를 실험했던 이 청년은 14년간이나 샹젤리제궁의 주인이었던 최장수 대통령이 된다. 작고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말년을 다룬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의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원제 <샹 드 마르스의 산책>)은 80% 이상의 미테랑의 수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대필할 기자에게 ‘몇살이냐?’고 묻고는 ‘30살’이라고 하자 ‘그 나이에 나는 장관이었다’고 웃는다. ‘모델은 보기만 하고 만질 수가 없으니 배우나 흑발의 아가씨를 그것도 서른살 이하의 여자는 자기가 특별한 줄 아니까 서른살 이상의 여자를 사귀라’고 충고하는 이 대통령은 권력자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와 교묘한 기싸움을 죽을 때까지 벌인다.
한 권력자의 말년의 초상화이자 동시에 문학과 정치와 역사와 여자에 대한 미테랑의 개인적인 논평서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서 모든 권력을 쥐었으나 죽음을 앞둔 대통령과 어떤 권력도 없지만 창창한 삶을 눈앞에 둔 청년 기자는 모든 면에서 대비된다. 당연히 영화는 베를린에서 최초로 소개되었지만 반응은 프랑스가 훨씬 뜨거웠다. 프랑스 현지 언론들은 영화가 혼외정사 및 숨겨놓은 딸의 존재 등 미테랑의 가장 예민한 사생활의 진창을 교묘히 피해갔다며 힐책했고 게디기앙 감독은 나는 “미테랑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결론을 내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사회와 정치에 대해 심사숙고하기만을 바랐을 뿐이다”라고 응대했다. 이 독일, 프랑스 정치영화의 대결에는 콧수염뿐 아니라 손을 떨며 극도로 흥분한 히틀러의 모습까지도 똑같이 재현해낸 독일의 대표 배우 브루노 간츠와 부드러운 웃음을 흘리며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미테랑 역의 미셸 부케 두 사람 중 누가 더 톱 도그(Top dog: 최고 권력자)를 잘 재현했는지에 대한 비교도 빠지지 않는다.
인간이 되고 싶은 천황 <태양>
이에 비하면 러시아 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일본 천황을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놓는다(그런데 이 칸의 아들은 어찌하여 베를린까지 와서 자신의 신작을 공개했을까?). 천황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제 초콜릿과 공습으로 얻어진 초콜릿을 비교하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는가 하면, 맥아더 앞에서는 수만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진중한 신사로 변모한다. 솔직히 소쿠로프의 <태양>은 차이밍량의 <떠다니는 구름>과 함께 경쟁작 중 유일하게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관계, 권력과 사랑의 문제에 접근했던 <몰로흐> 그리고 레닌의 말년을 통해 권력과 도덕의 문제를 다루었던 <타우루스>에 이어 소쿠로프는 권력과 인간의 문제를 실험한다. 소쿠로프식 영화미학을 다시 한번 극한으로 밀어올린다. 이 영화는 일체 인공조명이 배제된 채 촬영되었다(이러한 방식은 미카엘 하네케가 <늑대의 시간>에서 실험했던 것인데 그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태양 자신인 일본 천황이 온 방안을 환하게 비추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영화의 제목 ‘태양’은 이 영화가 일본 천황에 대한 영화일 뿐 아니라 소쿠로프가 실험하는 ‘빛’의 예술임을 이중적으로 암시한다. 전쟁의 마지막 날, 무엇보다도 신에서 인간으로 간절히 하강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일황 자신이다. <태양>의 시사가 끝나자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인 기자는 “이 영화는 천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라며 흥분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베를린
개인적으로 나는 이 모든 권력자들의 최후를 보며, 감독들이 이토록 권력자들의 최후에 매료되는 까닭은 권력이 섹스처럼 본질적으로 어떤 희열과 죽음 같은 허무를 함께 경험하는 몇 안 되는 체험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독일에서 히틀러와 소피 숄의 최후는 나란히 한 영화제를 장식한다(소피 숄은 지하 단체인 백장미단을 만들어 오빠인 한스 숄과 함께 반나치 운동을 하다 사형당한 독일의 유관순 같은 인물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를 단장으로 한 심사단은 내가 보기에는 철저히 바른 생활 영화인 소피 숄에게 은곰상과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독일, 이 창백한 어머니는 ‘정치적으로 올바른’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모든 영화적 실험들은 잊은 것일까? 그게 내가 아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의 진실이다. 아쉽게도 여전히 역사의 부채에 허리가 부서지는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노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은 당분간 구경하기 힘들 것 같다.
영포럼 부문 결산
세계는 넓고 영화는 많다
35회를 맞는 베를린영화제의 영포럼 부문은 베를린이 전세계에서 발견한 젊은 영화인의 피를 수혈하는 통로로서, 재기발랄하고 창의적인 영화, 실험적인 영화를 표방하고 나선 분야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구분을 하지 않고, 신인감독의 작품이 위주인 포럼에서 올해는 33개국에서 날아온 39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일단 포럼의 수장인 크리스토퍼 테레헤히터는 첫날 가진 스크린 데일리에서 이미 <여자, 정혜>를 영포럼의 강력한 추천작으로 뽑았을 만큼 한국영화에 대한 배려가 극진한 편이었다. <여자, 정혜> 외에도 특히 주목을 받은 화제작으로는 미카 카우리스마키가 감독한 브라질의 도시 뮤직인 코로에 대한 다큐, 일종의 브라질판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인 <브라질레이리노>, 인도의 가장 중요한 3대 감독 중 하나인 야쉬 코프라의 신나는 발리우드 뮤지컬 <비어 자라>, 자신의 가족을 배우로 해 단 23개 신만으로 영화를 만든 중국의 류지아인 감독의 <옥사이드>, 그리고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신인감독 못지않게 몸의 움직임에 대한 실험적인 다큐를 만든 클레어 드니의 <마틸데를 향하여>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베를린의 세 배우를 중심으로 그들의 현재 삶과 연기가 맺고 있는 불가분의 관계를 세명의 감독이 각각 연출한 <베를린 스토리>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정체 불명의 동양 남자의 아이를 가진 한 젊은 미혼모를 둘러싼 가족들의 소동담을 그린 <쿵후에게 미안해>는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크로아티아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영포럼 분야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작품은 공교롭게도 두편 다 중국영화였는데, 그 하나는 중국에서 각종 영화제의 촬영상을 휩쓸고 있는 <커커실리>와 몽골의 대초원을 배경으로 어느 날 처음 본 물건인 탁구공을 둘러싼 한 소년의 성장영화 <몽고리안 핑퐁>이었다. 티베트의 고원을 배경으로 가도가도 끝없는 야생의 땅 커커실리에서 일명 산악 순찰대라 불리는 민간환경보호단체와 밀렵꾼 사이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그린 <커커실리>는 그 장대한 촬영과 압도적인 자연으로 인해 <아타나주아> 이후 가장 장쾌한 영화 경험을 맛보게 했다. <몽고리안 핑퐁>의 경우 닝하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서구화되는 몽골 대초원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