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가 신명나게 작두를 타며 월요일 밤을 귀곡성 같은 웃음소리로 물들이고 있다. 물론 4회 10.9%, 5회 9.4%로 집계된 시청률(전국 닐슨 미디어 리서치 집계)은 인기 드라마들에 견줄 바가 못 되고 동시간대에 포진한 <야심만만> <폭소클럽>의 벽은 강고하다. 그러나 이 우격다짐 뱀파이어 가족에게 일단 ‘물린’ 시청자들은 서슴없이 ‘피의 아들딸’을 자칭하며 방영 5회 만에 온라인 게시판에 6천여건의 글을 올리는 열정을 발휘하고 있다. 어둠의 경로로 불리는 불법 파일 받기 사이트에서도 <안녕, 프란체스카>의 인기는 만만찮다. 사태의 주범은 지난해 <두근두근 체인지>로 시트콤계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는 평가를 받은 노도철 PD와 신정구 작가(본지 464호 참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최고의 코미디로 꼽는 PD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를 사랑하는 작가가 창조한 극악무도한 가족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가 내뿜는 다크 포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왜 하필 <안녕, 프란체스카>가 우리를 목놓아 웃게 하는지 물었다.
지난 2월7일 월요일 밤 <iMBC> 시청자 게시판 한 귀퉁이에서는 소란이 벌어졌다. 월·화 드라마 2회분이 연속 편성되는 바람에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연출 노도철/ 작가 신정구/ 구성 조진국, 박은정, 남지연)가 결방되자 열혈 팬들의 항의가 14페이지에 걸쳐 빗발친 것이다. 그러나 더 인상적인 것은 수습에 나선 연출자 노도철 PD의 글. 점잖은 해명 대신 느닷없이 “다들 진정하시고 잠깐 이 시를 외워볼까요?”라고 제안한 노 PD는 <안녕, 프란체스카> 첫회에서 프란체스카가 요리한 비둘기를 백숙인 줄 알고 먹은 두일이 읊었던 추모시를 적어 내려갔다. “비둘기야∼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야∼ 얼마나 평화로웠으면 유엔의 마크가 되었겠니? (중략) 너를 먹었다는 것보다 더 힘든 게 뭔지 아니? 그건 네가 먹을 만했다는 거야.” <안녕, 프란체스카>를 둘러싼 분위기가 대략 이렇다.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작품 속에 흥겹게 빠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파티에서 같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뱀파이어라는 강한 코드 때문인지 젊은 팬들의 애정 표현방식도 격하다. “우리를 웃겨서 죽이려는 시트콤”이라는 음모론이 떠도는가 하면 “너무 재미있어서 토할 뻔했다”는 말로 찬사를 보낸다.
7회 방송분 촬영 첫날인 2월25일 아침 9시. 대본 낭독을 위해 방송사에 모인 <안녕, 프란체스카> 출연진과 제작진의 모습도 러닝 하이(running high: 질주가 주는 고양감) 단계에 접어든 장거리 주자의 그것이다. “초반 반응이 너무 뜨거워 연기자 입장에선 앞으로 뭘 더 시킬지 겁난다”는 프란체스카 역 심혜진은 선배답게 제작진에게 다짐한다. “드라마란 완급이 있는 건데 반응에 휘둘려 페이스를 잃으면 안 돼.” 이날 첫 촬영지는 금천구의 할인마트. “요즘 TV에서 제일 재밌는 프로라 생각할 것도 없이 섭외에 응했다”고 말하는 게스트 이주현이 조관우의 <늪>이 흐르는 가운데 ‘유부녀’ 프란체스카의 뒤를 밟는다. 장보러 나왔다 구경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군거린다. “심혜진이 귀신으로 나온다는데? 무슨 귀신이 마트에 온대?” 매일 저녁반찬 걱정하며 궁색한 살림을 사는 뱀파이어. 따지고 보면 그것이야말로 <안녕, 프란체스카>의 요체다.
왜 하필 뱀파이어인가?
이게 다 무슨 호들갑이냐고 어리둥절해할 독자를 위해 <안녕, 프란체스카>의 구도를 잠깐 소개하자. 멸족위기에 처해 도쿄의 안전가옥으로 피신하다가 인천항에 잘못 내린 루마니아의 뱀파이어들이, 때마침 프로포즈를 퇴짜 맞고 사고로 길에 쓰러져 있는 노총각 두일과 마주친다. 일행 중 프란체스카에게 목덜미를 물린 두일은 본의 아니게 뱀파이어가 되고 갈 데 없는 흡혈귀 가족의 생계를 떠맡는다. 소녀의 외모를 한 왕고모 소피아, 프란체스카, 몸치장에 재능있는 엘리자베스, 기근 때 닭피로 연명한 탓에 머리가 나빠진 켠. 이기적이거나 냉혹하거나 철이 없는 이들은 무늬만 가장인 두일을 착취한다. 여기에, 남편들의 유산으로 수상쩍은 재산을 모은 ‘사마귀 여인’ 희진이 도도한 집주인으로 가세한다.
그럼 왜 하필 뱀파이어인가? 게다가 <안녕, 프란체스카>는 첫회에서 이 흡혈귀들이 햇볕과 마늘을 즐기고 피를 안 먹어도 그만이라고 정리해버렸다. 이는 투명인간이나 시간여행 같은 기본 설계가 왜 재미있는지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 다른 ‘판타지 시트콤’과의 차이다. 신정구 작가는 “흡혈장면은 상상만 해도 불편했다. 우리 캐릭터는 호감형이어야 하고 친근해야 한다. 어차피 호러 장르는 비주얼이 반 이상인데 방송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노도철 PD는 “판타지 시트콤의 덫은 초기 설정으로는 눈길을 끌기 쉽지만 그것만으로는 시청자들이 지속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현실의 공감대를 자극하지 않는 한 흡혈귀가 인간이 되건 말건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돌아가건 말건 시청자는 관심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피보다 생활상식과 돈에 굶주린 프란체스카 가족은 미국 시트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이 외부자의 순진한 눈에 비친 인류학 연구로 에피소드를 채워나간다면, <안녕, 프란체스카>의 흡혈귀들은 본디 인간이었고 수백년을 살았기에 인간성은 알 만큼 알고 만사에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다시 왜 뱀파이어인가? 애초에 각기 다른 괴물로 가족을 구성하는 <M>(몬스터의 M)을 구상하기도 했던 노 PD는 뱀파이어가 다른 괴물과 달리 인간과 어울려 산다는 점에 주목했고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 앤 라이스 원작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흡혈귀는 오해받은 소수자이며 하나의 특수한 생활양식이다. “쥐는 먹지 말랬지?”라고 서로를 타박하기도 하고 성숙한 정신과 성장을 멈춘 육체의 갈등 때문에 고뇌하며 죽지 못해 세상을 유랑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안녕, 프란체스카>가 ‘가족 행세하는 뱀파이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획득한 최고의 자산은 현대 가족에 대한 신랄한 은유의 공간이다. 마흔살의 경쟁력 없는 남자 두일은 과거 나쁜 아들이었으며 그나마 자기 가족을 꾸려보려던 시도-구혼에 실패한 순간, 뱀파이어 가족이 된다. 그에게 이 가족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짐이며 글자 그대로 피를 빠는 괴물이다. 한편 뱀파이어 입장에서 두일은 재수없게 걸려든 무능한 부양자다. 두일과 뱀파이어들이 서로에게 품은 불만은 판타지의 틀을 빌리지 않는다면 말하기 너무 험악한 오늘날 가족간의 원망을 슬쩍 건드린다.
노도철 PD 인터뷰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쏟아부어 정착시키고 싶다”
노도철 PD는 MBC 예능국 입사 뒤 <환상여행> <게릴라 콘서트> <여자 vs 여자>를 거쳐 <느낌표>의 ‘하자하자’ 코너를 담당했다. <서경석의 하지 마>로 입봉했고 미니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로 주목받았다. 좋아하는 영화를 DVD로 수십번씩 보는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전파를 타고 순식간에 휘발되는 TV 프로그램의 덧없음. 머릿속에 장면에 대한 계획이 서면 현장에서 절대 양보가 없는 그를 가리켜 파트너 신정구 작가는 “MBC 3대 폭군”이라고 귀띔한다. 나머지 두 폭군은 누구냐고 물었으나 “그건 알 수 없다. 원래 노도철한테 쓰려고 만든 말이라서…”라는 무책임한 답만 얻었다.
-<안녕, 프란체스카>의 스타일은 길게 보면 <두근두근 체인지>의 연장이다. 그런데도 반응은 훨씬 뜨겁다.
=<두두체>는 끝날 무렵에야 관심을 모았다. <안녕, 프란체스카>도 시놉시스를 공개했을 때는 반응이 없었다. 우리 작품이 원래 글로 줄거리를 써놓으면 유치하지 않나. 제작발표회도 그날 연예인 X파일이 터지는 바람에 기자가 10명밖에 안 왔다. 정려원이 주인공인 청춘물이라고 짐작하는 기자도 많았다. 그런데 회가 거듭되면서 우리가 허를 찌른 것 같다. 이제 개인적으로 재밌어서 취재왔다는 기자들도 있고 작은 역이라도 기꺼이 출연하겠다는 연기자도 있다.
-심혜진이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다.
=처음에는 차고 지적이고 긴 머리가 어울리는 이미지에 끌려 캐스팅했다. “촬영장에 나오고 싶어 근질근질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해 망설이는 분을 설득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심혜진은 정통 연기에 능숙하면서도 코미디를 몹시 즐겨보는 팬이었다. 스탠딩 코미디를 흉내내기도 한다. 본인 역뿐 아니라 전체 대본의 약한 고리를 정확히 지적해준다.
-이번에도 스튜디오에서 찍지 않고 실제 장소로 카메라를 들고 나가 찍고 있다.
=처음 6개월 24회분을 받아들었을 때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세트로 갈 생각도 했다. 그런데 세트에서 찍은 판타지 시트콤들을 보니 아무래도 그림이 칙칙했다. 장르가 장르니만큼 미술이 중요한데 아무리 애를 써도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 <논스톱> 세트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우리 팀의 장점을 살려 틀에 잡히지 않은 공간으로 나가기로 했다. 마침 앤티크 가구가 딸린 집을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즌 체제의 시트콤을 만들어보려는 욕심이 있는 걸로 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선결조건이 있다. 시청률이 일단 높게 나와야 하고 첫 시즌 종영 뒤 시청자들이 작품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프란체스카 식구들을 그리워해야 한다. 물론 수지타산이 맞아야 하며 준비기간 중 스탭의 생계를 보장하는 프리프로덕션 시스템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목표라 일단 이번 시즌에서 아이템을 소진할 거다.
-시트콤 연출자로서 개인적 전망은.
=짧은 연차에 시트콤의 컨셉을 내고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프로듀싱을 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장기적 계획은 엄두도 안 난다. 지난 반년간 오직 <안녕, 프란체스카> 준비만 했고 방송이 시작된 지금은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쏟아 정착시킬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