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안녕, 프란체스카> [3] - 캐릭터와 배우
2005-03-15
신정구 작가가 말하는 <안녕, 프란체스카> 캐릭터와 배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두일/ 이두일

두일은 마흔살의 낙오자다. <두근두근 체인지>의 주인공 모두의 남성판이다. 요즘엔 “곰 푸우의 환생”이라며 팬들의 귀여움을 받지만, 사실 냉정한 기준으로 보면 외모나 경제력이나 사람들이 꺼리는 조건들만 갖췄다. 두일은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른 인물처럼 나서서 웃음을 주는 게 아니라 남들의 코미디를 받쳐주는 그는 극중 배역도 희생적이다. 시청자들에게 부각되기는 힘드나 사랑받아야만 하는 극의 심장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사랑스런 파자마를 주로 입는다. 이두일 형은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극중 인물과 가장 닮지 않은 배우다. 보고 있으면 대학 시절 열혈 운동권 복학생 선배가 생각난다. 실제로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과묵한 중에 힘이 느껴진다. 어디선가 상처받은 소년 같다. <앞집 여자>에서도 동네 아줌마와 수다 떠는 남자 역을 했지만 무서울 만큼 강인하고 따뜻한 분이다. 원래는 프란체스카의 남편도 루마니아에서 온 원수 집안 출신 뱀파이어로 설정했었다. 그러나 이두일 형을 보는 순간 “두일은 인간이어야만 한다”는 확신이 왔다.

“솔직담백한 열혈여인”

프란체스카/ 심혜진

프란체스카는 담백하고 반응을 숨기지 못하는 여자이며 참으로 열심히 사는 열혈여인이다. 우기고 또 우기는 게 그녀의 유일한 문제 해결 방식이다. 유사가족의 어머니 역으로 모성이 강하고 가정의 울타리를 사수하려 한다. 고된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이유도 자존심 때문만이 아니라 엄마이기 때문이다. 심혜진 누님은 보는 순간 우리가 생각한 프란체스카 그대로라 압도당했다. 1시간을 노도철 PD와 중언부언 설득했는데, 먼저 일어난 뒤에는 우리끼리 한참 싸웠다. 서로 너 때문에 거절할 거라고(심혜진은 작가와 PD의 첫인상을 “기괴했다. 그러나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너무 따뜻하고 작가에게 특히 다시없는 분이다. 2회 대본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재미가 없네”라며 다른 캐릭터의 에피소드를 집어내며 “우리 가족 중 하나라도 재미가 없으면 안 돼”라고 했다. 쓰면서 마음에 걸렸던 가시인데 “거기 가시 박혔네”라고 지적받았기에 두말없이 고쳐썼다. 곧 극중에서 하절기 ‘깜장 드레스’를 선보인다.

“몸은 소녀, 정체는 큰어른”

소피아/ 박슬기

가족의 큰어른인 왕고모 소피아는 소녀의 몸을 갖고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흡혈귀가 되어 세상을 꿰뚫어버렸기에 일이 터지면 두일이 의논하는 상대지만,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와 천진함도 있다. 소피아는 슬기를 보기만 해도 떠오르는 캐릭터다. 박슬기는 예전 버라이어티 쇼 대본을 쓸 때 만난 영재들과 닮았다. 평소에는 자폐적이고 넋이 나가 있는 듯하지만 관심분야에 화제가 오면 눈빛이 변하고 말이 끊이지 않는다. 나와 노 PD가 걱정하는 점은 슬기가 NG를 낼 때마다 “죄송합니다”를 외친다는 것, 너무 잘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현장을 놀이터로 여겨주면 좋겠다. 슬기는 연기 외에는 먹는 것도 노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만간 <두근두근 체인지>에서 슬기가 불렀던 노래 <이면수가 좋아>를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들을 수 있다. 마니아를 위한 서비스다.

“남자, 다 나오라고 그래”

엘리자베스/ 정려원

<안녕, 프란체스카> 전에 <폭스>라는 기획이 있었다. 구미호들의 <섹스 & 시티>랄까. 엘리자베스는 <폭스>의 구상에서 끄집어낸 인물로 <섹스 & 시티>의 사만다와 비슷한 캐릭터였다. 패션감각이 뛰어나 출근길에 빨랫줄에 걸린 옷으로 슥슥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설정도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알고 보면 프란체스카와 오랜 라이벌이다. 그런데 려원이는 정작 치마 입는 것도 화장도 좋아하지 않고 남자를 유혹하는 연기도 불편해 했다. 배우의 감성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친 결과 지금의 엘리자베스는 남성 종족 전체에 대해 거만해져 있는 캐릭터다. 엘리자베스와 켠이는 같은 또래인 10대 고교생의 느낌이다. 여학생 쪽은 조숙한 반면 남학생은 여학생들에 비해 어리지 않나.

“딱 <프렌즈>의 조이!”

켠/ 이켠

켠은 코미디 구성에서 언제나 빛을 발하는 일종의 바보 캐릭터다. <프렌즈>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조이에 대한 오마주다. 조이는 의리를 중시하는 상당히 동양적인 캐릭터다. 켠의 문제는 지능이 낮다고 설정하니 정상적 스토리가 안 나온다는 것인데 5회부터 활약이 커진다. 애정 결핍이라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켠을 통해 퀴어 서브 텍스트를 보여준다(5회에서 켠은 한국 게이들도 벽장을 열 때라고 말하고 빌리지 피플의 <YMCA>를 들려주며 한 의사를 유혹한다). 연기자 켠이는 힙합 소년의 느낌이다. 키덜트는 아니지만 자유롭고 천진한 요즘 세대다. 촬영 끝나면 클럽에 놀러 갈 것 같은. 제작진도 의식적 연기보다 맑고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를 원한다. 배우로서 백지상태라 빠른 속도로 많은 걸 흡수하고 있다.

“44살의 성형미인?”

희진/ 박희진

두일과 뱀파이어들은 진짜 가족이 아니라 가족 행세를 한다. 그들이 가족과 남남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려면 계속 집에 들락거리는 외부자가 필요하다. 집주인 희진은 바로 그 스위치 역할을 하는 캐릭터. 스스로 200살이라 나이를 괘념치 않는 켠이에게 반한 희진은 사실 44살의 성형미인이다. 그녀가 <졸업>의 한 장면과 같은 구도로 등장한 이유는 차차 알게 된다. 대본을 연구해 소품부터 악센트까지 반드시 뭔가를 플러스해주는 박희진은 스스로 한 사람의 작가 몫을 하는 연기자다. 희진 역은 그녀의 재능에서 아주 독한 부분만 이용하고 있는데 사실 박희진이 지닌 폭과 깊이는 누구도 모른다(노도철 PD는 박희진을 가리켜 이경실, 김효진, 정선희를 잇는 정통 연기가 가능한 MBC 여성 코미디언이라고 평한다). 정리 김혜리

신정구 작가는 음반 기획사를 다니다가 인생행로를 꺾어 <세친구> <칭찬합시다> <느낌표>의 작가로 활동했으며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등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 <두근두근 체인지>로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을 수상한 지난 연말에는 단상에서 덩실거리는 춤 동작으로 수상의 환희를 표현해, 유사 이래 무미건조함으로 일관한 대한민국 수상 소감 역사에 한획을 긋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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