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의 개 봉봉> Bombon - El Perro
2005-04-3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감독 카를로스 소린/아르헨티나/2004년/97분

사람좋은 중년남자 후안 ‘코코’ 비제가는 이십년 동안 일했던 주유소가 팔리는 바람에 실직자가 된다. 그는 나무로 나이프 손잡이를 깎아 팔아보지만 너무 비싼 탓인지 신통치 않고, 직장을 구하려해도 경기침체 때문에 자리가 없다. 주유소에선 온갖 일을 도맡았던 코코지만 이젠 같이 사는 딸에게 구박덩이가 되어버린 홀아비일 뿐이다. 막막한 심정을 헛웃음으로 감추는 코코. 그는 도로변에 고장난 차를 세워두고 있던 여자를 도와주었다가 죽은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도고 아르젠티노 종 개 한마리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이 변한다.

<나의 개 봉봉>은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고 내리막에 접어든 인생을 뒤집을 반전도 없는 영화다. 초라한 남자의 일상이 계속되다가 크고 하얀 개 한마리가 나타나고 그 둘이 동무가 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코코와 봉봉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한사람과 한마리는 그들 나름대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코코에게 봉봉은 “직업이 뭐에요”라는 곤란한 질문에 대답할 거리를 만들어준 선물이다. 코코는 또한 낯선 은행원으로부터 트레이너를 소개받고, 낯선 트레이너와 함께 봉봉을 훈련시키고, 트레이너 덕분에 만나게 된 낯선 여가수에게 공들여 깎은 퓨마 머리 나이프 손잡이를 건넨다. 그 신기한 연쇄작용 또한 봉봉이 촉매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서 힘을 얻는 지혜. 드문드문 영화를 만들어온 카를로스 소린은 귀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낮은 목소리로 그 지혜를 들려준다.

자신의 이름 그대로 출연한 후안 비제가는 출연작이 거의 없는 낯선 배우지만, 가엾은 중년남자를 눈물을 삼키는 듯한 웃음으로 연기해냈다. 딱 한가지가 부족했던 봉봉이 마침내 완벽한 개로 태어나는 순간, 코코의 조용한 환희는 잔물결처럼 공기를 흔들며 이상하도록 선명한 아르헨티나의 햇빛을 받아 반사광을 내뿜는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