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Letter from an Unknown Woman
2005-05-02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감독 쉬 징레이/중국/2004년/89분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과 막스 오퓔스의 동명영화로 익숙한 이야기다. 중년의 작가는 언제부터인가 생일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하얀 장미를 받아왔다. 흰장미가 도착하지 않은 생일, 그는 편지 한통을 받는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는 여인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당신과는 상관없지요”라며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그녀가 그를 어떻게 사랑해왔는지.

스토리는 친숙하면서 단순하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던 소녀는 옆집에 이사온 남자를 처음 보았던 순간부터 사랑하게 된다. 어쩌면 사랑은 그전에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집안에 들어온 가구를 쓰다듬고 책더미를 훔쳐보면서 마음설레어 하던 소녀. 시간이 흐르고,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북경을 떠났던 소녀는, 대학생이 되어 예전 골목으로 돌아온다. 여인으로 자란 소녀는 마침내 남자의 눈길을 얻어내 하룻밤을 보내지만, 흰장미를 주며 곧 돌아오겠다던 남자는, 여행이 끝났어도 여인을 찾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아이까지 가진 여인을 끝내 기억하지 못한다.

주연과 감독을 겸한 쉬 징레이는 1900년대 비엔나를 1930, 40년대 베이징으로 옮겨 귀부인의 밀실처럼 우아한 향기를 불어넣었다. 남자가 건넨 흰장미, 전후 베이징의 퇴폐적인 댄스홀, 응고된 사랑이 새겨진 여인의 표정, 남자 곁을 스쳐가는 화려한 여인들의 옷깃은 단순한 스토리를 애틋하고 섬세한 손길로 매만진 흔적. 서른을 갓 넘긴 젊은 감독 쉬 징레이는 나이를 뛰어넘는 사려 깊은 태도로 18년동안 한방향으로만 계속된 사랑의 한순간 한순간을 주의깊게 들여다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멜로드라마의 걸작이었던 막스 오퓔스의 원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쉬 징레이는 그녀 나름대로 비단천같은 감촉을 살려내곤 한다. <귀신이 온다>의 감독이자 주연인 지앙 원이 무심한 플레이보이를 연기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