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관객평론]반갑다, B급 감수성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주기>
2005-05-04

당신은 시간이 남아 돌 때 무엇을 하는가? 여기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를 주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 비정상적으로 하얀 얼굴과 시커먼 긴 생머리를 하고 온종일 현학적 대사를 읊는 기괴한 여자. 이 주인공의 기괴함은 영화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주기> 전체 분위기를 대표한다. 그동안 주류 영화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분위기의 스릴러인 이 영화는 분명 디지털 독립 영화만이 꿈꿀 수 있는 창조적 개성의 완전한 발현물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는 비주류적 감성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폭소를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킬킬댄다. 영화를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매체라고 할 때, 영화 쪽에 소통의 주도권이 넘어가 있지 않은 영화가 대체 얼마만인지. <이나중 탁구부>같은 만화를 좋아한다는 감독의 B급 감수성이 참 반갑다.

그러나 영화는 구석자리에서 마냥 킬킬대며 넘기기엔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 속 기묘한 주인공이 끝까지 궁금해 하는 것은 천사의 존재 유무이다. 여러 관계가 얽혀 산장 속에 갇히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천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부정하거나 긍정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회피해간다. 그들에게 천사는 그를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지독한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천사라는 이름의 희망이다. 영화 속 천사가 진짜 천사인지의 여부는 그래서 중요하지 않다. 현실에 고통받는 누군가가 천사를 믿는다면, 선한 아름다움으로 신성하게 빛나는 천사를 긍정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자신의 인생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래서 챕터 구분과 등장인물들의 대사, 삽입 애니메이션 등을 이용해 천사 담론을 다양하게 변주한다. 스릴러라는 어두운 장르는 외려 밝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반어이다. 디지털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용한 경쾌한 촬영이나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는 블랙 유머는 관객을 배려하는 감독의 취향에 대한 보너스일 것이다.

대부분의 비주류 문화가 그렇듯,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영화관 어느 구석에서는 누군가가 낄낄대느라 시뻘개진 얼굴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런 영화의 존재 가치는 분명하지 않을까. 독립 영화만의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새로운 방법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하는 이런 영화가 많아질수록 전체 영화계가 풍성해질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 영화의 배급을 향한 분투를 기대해 본다.

관객평론가 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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