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현대 이란영화의 독보적 스타일, <거울>
2005-05-04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EBS> 5월7일(토) 밤 11시45분

영화 <거울>은 감독의 전작 <하얀 풍선>과 흡사한 점이 있다.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무엇인가 ‘잃어버림’에 관한 영화란 것도 비슷하다. 영화는 학교가 수업을 끝내고, 어린이들이 학교 밖으로 쏟아져나오는 순간을 출발로 삼는다. 자, 과연 여기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가. <하얀 풍선>과 어딘가 닮은 이야기를 취하고 있으면서 형식적으로 전혀 다른 모양새를 지니고 있는 <거울>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여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 될 것이다.

영화 속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아이를 연기하고 있다. 버스를 타지만 버스는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아이는 혼란 속에서 갈등을 거듭한다. 그런데 엉뚱한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현실인지 허구인지 모호한 찰나, 영화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바뀌는 것. 소녀 역을 맡은 아역배우가 갑자기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영화에 등장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고민에 빠지지만 고집쟁이 소녀를 말릴 수 없다. 감독은 선택을 한다. 소녀를 보낸 뒤 뒤쫓기로 한 것이다. 초반부만 보고 있노라면 영화 <거울>은 마치 <하얀 풍선>의 후일담 같은 것으로 이해될 법하다. 그러나 “더이상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소녀가 선언을 한 뒤엔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한다. 영화 속 소녀는 애타게 거리를 헤매며 힘들게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거리의 어른들에게 몇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길을 찾는다. 연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혼자 힘으로 집에 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여기서 <거울>의 매혹의 순간이 드러난다. 요컨대, 영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연출된 상황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별로 다르지 않음 혹은 유사함이 <거울>이 보여주는 신선한 충격이라 하겠다. 카메라는 소녀를 몰래 쫓아가며 시네마베리테 스타일로 담아낸다.

이란 태생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 적 있다. 영화 선배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조감독을 거치기도 한 파나히 감독은 한 아이가 금붕어를 사러 나갔다가 겪는 자잘한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 <하얀 풍선>으로 칸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거울>에서 형식적인 참신함을 선보이기도 했던 파나히 감독은 이란영화의 리얼리즘을 좀더 ‘현실’에 근접시키는 실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후 <써클>에선 이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베니스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았다. 극영화와 로드무비,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서성이면서 파나히 감독의 영화는, 현대 이란영화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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