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터뷰] <나쁜 피>의 레온 에라주리즈
2005-05-05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나쁜 피>는 칠레 산티아고의 빈민가에서 찍은 영화다. 직업이 없는 청년 카를로스와 페드로는 마약거래에 나섰다가 돈을 강탈당하고 빈손이 된다. 그들에게 거래를 맡긴 사람은 잔인한 깡패 야오. 야오는 두 친구에게 토요일까지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한다. 훔친 돈으로 권총을 구한 카를로스와 페드로는 살아남기 위해 도시의 밤거리로 나서지만, 모퉁이마다 함정과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광고와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면서 기량을 닦은 레온 에라주리즈는 “산티아고는 와인잔같은 도시다. 부유한 사람은 얇은 손잡이처럼 극히 소수고, 넓은 와인잔 윗부분처럼, 빈민은 갑자기 많아진다”고 말했다. 희망이 없는 거리. 에라주리즈는 무엇보다도 사실성을 추구하면서 나쁘게 살수밖에 없었던 두 젊은이의 행보에 바짝 붙어 동행했다.

=이 영화의 원제는 <Mala Leche>다. 무슨 뜻인가.
-스페인어로 ‘Mala Leche’는 나쁜 사람이나 나쁜 상황을 뜻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이들은 나쁜 사람들이고, 나쁜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영어제목 <Bad Blood>도 비슷한 뜻이기는 하지만, 나는 스페인어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나쁜 피>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사전조사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가.
-나는 12년 전에 이 영화에 나오는 청소년들과 비슷한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이후 줄곧 그런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 멕시코에서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므로 소재가 먼저 있었던 셈이다. 산티아고 빈민가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마을 하나를 정해 집을 빌렸고, 배우와 스탭들과 함께 머무르며 시나리오를 썼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매우 환대해주었다. 영화에 나오는 마약거래나 총기구입 과정도 주민들이 알려준 것이다. 야오가 대낮에 축구장 앞에서 사람을 쏘아죽이는 에피소드는 원래 시나리오로 썼던 장면인데, 영화를 찍기 2주 전에,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때문에 원래 찍으려던 축구장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서 찍어야 했다.

=카메라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페드로와 카를로스 곁에 밀착해있다. 어떻게 찍었는가.
-직업상의 비밀이다(웃음). 나는 현실감을 가장 살리고 싶었다. 카메라를 들고 오토바이를 탄채로 찍기도 했고, 싸우는 장면을 비롯해 대부분의 장면에서 핸드헬드를 사용했다. 스토리보드를 모두 직접 그렸는데, 막상 실제 작업에 들어가니까 수정해야할 부분이 많았다. 관객들은 미국영화를 보면서 화려한 액션에 익숙해지지 않았는가. 그들의 기대치에 맞추기 위해 연구를 많이 했고, 배우들의 대화 장면 같은 것은 자연스럽게 행동하도록 재량권을 주었다.

=카를로스와 페드로는 거칠고 난폭하지만 여자친구나 할머니에겐 다정하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나쁜 사람이고 강도에 마약중독자다. 하지만 가족을 돌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복합적인 면모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흑인영화에 비해 휴머니티가 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나쁜 피>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처음 이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정해진 결론이었나.
-그렇다. 카를로스는 죽은 형처럼 대단한 범죄자가 되지도 못할 재목이다. 그때부터 이미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상업적으로 본다면 좋지 못한 결말이다. 하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처럼 나도 조금 미친 것 같다(웃음). 칠레에는 제대로 된 프로덕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비로 영화를 찍었고 은행 빚이 무척 많다. 다행히 다음 작품은 지원해줄 회사가 나섰다. 그들도 미친 친구들이다(웃음).

=그 신작은 무엇인가.
-어느 복서의 일대기다. 1970년에서 1998년까지가 배경인데, 그사이 아옌데의 민중정권에서 피노체트의 군부독재를 거쳤고, 다시 민주화가 되었다. 그런 역사적인 문맥을 담을 생각이다. 이 영화 역시 어두워서 그 복서는 한번도 챔피언이 되지 못한채 패배자로 남을 것이다. 미국영화사 폭스가 제작지원을 할 러브 스토리도 있다. 나도 슬프고 폭력적인 영화말고 예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웃음).

사진 최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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