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골에서의 나날들> Dias de Campo
2005-05-06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감독 라울 루이즈/프랑스, 칠레/2004년/90분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프랑스로 망명했던 라울 루이즈가 고국 칠레로 돌아가 만든 영화. 페데리코 가나의 소설 두 편을 자유롭게 각색해 환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꿈같은 시간을 창조했다. 두 노인이 어느 바에서 만나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들 주변은 텅빈듯 하다가 사람들로 넘쳐나기도 하고, 이야기가 그대로 그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들은 어쩌면 이미 죽은 이들일지도 모른다. 두 노인 중에서 돈 페데리코라 불리는 노인이 30년 전에 집안일을 돌봐주던 하녀를 추억하자 영화는 어느덧 돈 페데리코의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시골에서의 나날들>은 흔히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남미의 독특한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성냥을 모으는게 취미인 노인은 성냥에 물을 주고, 그 성냥은 나무처럼 자라나고, 사람들은 천연덕스럽게 성냥을 옮긴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하녀는 하룻밤 사이 부활해서 기운차게 잔치 음식 메뉴를 고민한다. 늙은 돈 페데리코가 중얼거리는 이야기가 젊은 돈 페데리코의 꿈이 되고, 정지한 인물 주변에서 세상이 마술처럼 변화하는, 납득할 수 없는 세계.

그러나 <시골에서의 나날들>이라는 제목처럼 한가하고 나른하게 흘러가는 영화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그저 이야기인지 굳이 따지지 않으면서 기묘하고 침착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삼십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감독의 노스탤지어도 짙게 배어있는 영화. <시골에서의 나날들>은 남미의 풍성한 문학과 신화의 전통, 그것을 받아들여 독특한 스토리텔링 구조를 만든 루이즈의 재능이 빚어낸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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