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가을. 임필성 감독은 무보급 남극 횡단에 도전했다 좌절한 허영호 대장의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접한 뒤, 한계상황에서 원형의 욕망을 드러내는 탐험대원들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6월 말, 5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데뷔작 <남극일기>의 촬영을 앞둔 떨리는 소감을 <씨네21>에 보내온 바 있다. 그리고 다시 1년. 칠전팔기 끝에 촬영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 굳게 믿었던 임필성 감독은 예상치 못했던 좌절을 연이어 겪으며 고난의 행군을 이어왔다. 작업환경과 스타일이 전혀 다른 뉴질랜드 스탭과의 불화와 화해, 철두철미한 준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뉴질랜드의 기상변화, 광활한 자연을 세트장 안에 고스란히 재현해야 하는 어려움 등 모든 것은 도달불능점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영화 속 탐험대의 여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숱한 눈보라와 화이트아웃 상황을 지나 이제는 CG와 믹싱 등 마지막 후반작업에 여념이 없는 임필성 감독. 그가 5월19일 개봉을 앞둔 <남극일기>의 마지막 제작기를 써내려갔다. 이제 드디어, 목표지점이 눈앞이다.
“어, 이건 아닌데요”
2004년 5월30일/ 양수리종합촬영소
“어, 이건 아닌데….” 암담했다. 처음 사흘간 찍어놓았던 장면들 중에서, 연기자에게 감정을 잘못 전달한 부분들이 눈에 띈 것이다. 촬영 첫날 찍은 장면은 재경을 연기하는 최덕문이 캠코더를 들고 남극을 소개하는 영화의 시작 부분. “으흠… 일단 저는 팀에서 비디오와 전자장비를 담당하는 서재경이고요. 원래 직장은 동사무소입니다. 안녕하세요. 제천 본동 주민여러분! (웃음) 카메라를 들고 한명한명 가까이가서…” 이러면서 대원들을 소개하는 장면인데, 당시 나의 주문은 “좀 과장되게 감정을 처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촬영분량을 확인해보니 무슨 조정경기 중계방송 같다. 5년의 기다림 끝에 부른 ‘액션!’에 흥분한 때문일까. 일정도 잘 맞추고 영화도 잘 찍는 감독이 돼야겠다는 야망이 지나쳤던 것일까. “임 피디님. 이 신 통째로 다시 찍어야겠는데요.” 프로듀서의 얼굴에 불길한 표정이 나타난다. 그래도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어느 정도 마음에 든다고 해서 OK해버리면 안 된다는 것. 뭔가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허둥대거나 안달복달해서도 안 된다는 것.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진 마음 약해져선 안 된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일 것이다.
그뒤로는 (송)강호 형이나 다른 형들이 연기를 하고 나면 테이크가 끝나기가 무섭게 “형, 이거 아닌데요”라고 바로 말한다. 너무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니까, 모 감독처럼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 끙끙대지 않으니 순간의 충격이 오히려 낫다는 반응이다. 다들 “저 뚱감독, 또 저러네”라면서 넘겨버린다.
소주는커녕 마실 물도 없군
6월21일/ 스노팜
본격적인 뉴질랜드 촬영을 앞두고 최종 헌팅 등 프리프로덕션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스노팜은 대원들의 행군장면을 찍어야 하는 곳. 뉴질랜드 스탭을 포함한 수십명의 스탭들이 시험삼아 줄지어 눈밭을 걸어본다. 강호 형이 최종 헌팅까지 함께 따라와줬다. 지난 5년 동안 수없이 들락날락했던 이곳, 뉴질랜드에서 드디어 촬영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뭉클해진다. 처음으로 뉴질랜드에 발을 디딘 한국 스탭, 혹은 처음 인사하는 뉴질랜드 스탭들도 많은데, 눈 위에서 소주라도 한잔 하고 싶다. 하지만 소주는커녕 마실 물도 없다. 눈을 씹어먹으며 갈증을 달래본다. 진정 여기까지 와서 이래야 하는 건가. 물도 준비하지 않은 뉴질랜드 제작부가 야속하다. 하지만 그뒤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