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오시마 나기사 [2] - 대표작 5선
2000-04-11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오시마 나기사 대표작 5선

<청춘잔혹이야기>(菁春殘酷物語)1960년

부모를 버린 청춘남녀의 파멸기를 파격적이고도 역동적인 형식에 담아낸 오시마의 출세작. 오시마 자신이 뽑은 대표작으로, 젊음·폭력·섹스라는 오시마 평생의 소재 속에 정치적 근본주의가 은밀히 잠복해 있다. 50년대의 열혈 학생운동가였고 지금은 불법 낙태수술로 먹고사는 선배 의사의 더러운 산부인과 병원. 낙태수술을 받고 탈진해 누워 있는 여주인공 옆에서 남자주인공은 사과를 질겅대고 있는데, 그의 눈에는 눈물이 번진다. 이 한 시퀀스만으로도, 오시마는 전후 일본사회의 불모성과 일본공산당이 주도한 50년대 좌파운동의 실패, 살부(殺父)를 감행한 청춘남녀의 불안과 비애를 단숨에 드러낸다.

<일본의 밤과 안개>(日本の夜と霧)1960년

정치노선에 관한 격론이 이야기를 대체한 진귀한 정치영화. 스탈리니즘에 사로잡힌 50년대 학생운동과 일본공산당의 몽매성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오시마의 신좌파 정치노선이 전경화한다. 더욱 놀라운 건 형식의 전위성. 오시마는 한 쇼트 안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붙이고, 조명 이동만으로 등장인물을 교체해버리는 과격한 연극적 기법을 구사함으로써, 당대의 고답적 영화 형식을 폐기처분해버린다. 빛과 어둠, 카메라의 속도가 정치적 논평과 정교하게 결합된 진정으로 혁신적인 정치적 모더니즘의 한 정점. 전체가 43쇼트로만 이루어진 롱테이크로도 유명하다.

<백주의 살인마>(白晝の通り魔)1966년

이상적 농촌 공동체를 이루려던 청년들이 좌절한다. 애욕과 전통적 도덕률이 그들의 이상주의를 가로막은 것. 이 가운데 한 청년이 흉악한 강간·살해범으로 변한다. 농촌에 같이 일하던 두 여인은 현상수배범이 된 그와 다시 만나지만, 그에게 심리적으로 압도된다. 그의 악마성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마저 지닌다. 이 영화에서 정치성을 압도하는 성과 폭력의 과잉은 오시마가 소박한 정치주의자이기는커녕 인간 조건의 미스테리를 탐사하는 실존주의자임을 알려준다. <일본의 밤과 안개>와는 정반대로 2천컷에 이르는 숏을 통해 피사체를 여러 각도에서 분할하는 실험적 편집기법으로도 유명하다. 공인받은 걸작 몽타주영화.

<교사형>(絞死刑)1968년

일본인 소녀를 강간 살해한 재일동포 소년이 사형에 처해진다. 소년은 그러나 죽지 않는다. 그를 되살려 다시 사형에 처하려는 순간, 사형집행인들은 피할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한다. 죄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에게 죄를 물을 수 없기 때문. 해결책은 그의 죄를 되살리는 길밖에 없다. 이를 위해 즉석 연극이 이루어지고, 이때부터 소년의 죄는 실제로는 일본사회의 죄, 나아가 국가 자체의 죄임이 폭로된다. 오시마는 리얼리티의 규율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블랙코미디, 다큐멘터리, 판타지를 뒤섞고, 텍스트의 안팎마저 허문다. 거침없는 실험적 형식과 비판적 메시지가 완벽하게 삼투한 걸작.

<도쿄전후비사>(東京戰后秘事)1970년

원제의 도쿄전(戰)은 일본대·도쿄대 학생들의 점거투쟁을 뜻한다. 영어제목은 ‘영화로 유언을 남긴 사나이’. 60년대적 정치성에 대한 성찰을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성찰과 결합한, 말 그대로 영화에 대한 영화. 동료의 기록필름에서 누군가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학생이 결국 자신이 본 필름에서처럼 투신자살한다는 이중적 순환구조를 지닌 이 영화는 형식의 발랄함에도 불구하고, 60년대 뉴웨이브의 만사가 되었다. 이상주의의 연대를 달려나갔던 신좌파는 이제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과격한 별종이 되어버렸으며, 투쟁을 위해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 이제 없다는 쓸쓸한 자각이 영화를 채우고 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