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으라, 그대여 깨어 있으라!”
감독론 요지 - 박찬욱 복수극에 나타난 ‘고통받는 신체’와 ‘훼손된 언어’에 관하여
박찬욱은 일련의 복수극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컷>을 통해 현대 예술의 신비화 전략의 한 방편인 ‘침묵’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에서 주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인 대사는 절제되어 있는데, 이것은 일상적인 대사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양식적 스타일에 대한 거부감과 실재의 언어적 왜곡에 대한 강한 반발 즉, 말을 통해서는 전해질 수 없는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의 욕망을 드러낸다. 세편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말하지 못하는 상태 혹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것은 언어 파괴의 과정이 바로 박찬욱 작품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복수’의 과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복수극들에서 특징적인 것은 복수를 감행하는 이의 정신적인 고통이 복수심을 불러일으킨 이의 육체적 고통으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복수의 대상이 된 인물의 몸 위에 고통의 서사가 쓰여지는 과정을 통해 언어는 사라지거나 파괴된다. 고통이란 근원적으로 언어화에 저항하며, 설사 언어를 통해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지극히 파편화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박찬욱의 복수극에서 대사의 부재는 바로 고문과 살해라는 육체적 폭력의 결과물로 초래된 것이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제거해가는 과정을 통해 영화의 외적 언어 서사물인 고통과 복수의 시나리오를 완성해간다.
복수의 밑바탕에는 사회적 질서나 법 제도로 포섭될 수 없는 개인적 원한을 해소하려는 욕망이 깔려 있다. 이것은 ‘죄’와 ‘벌’ 사이에 신경증적 구조를 생성한다. 집단적 노력을 통해 사회적으로 달성되는 것을 사적 수단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신경증과 마찬가지로 복수의 메커니즘 안에는 공적으로 인준되어 있는 제도에 대한 불신과 자기만족적인 개인적 통로를 구축하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복수는 언어와 법으로 표상되는 상징계의 질서를 거부하는 행위로 파악될 수 있으며, 복수의 주인공들은 대타자의 질서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낸다.
박찬욱은 상징계의 질서, 대타자의 자리에 칸트적 의미에서의 주체의 자유의지를 세워놓는데, 그것은 주체가 ‘환원불가능한 인과성’에 굴복하는 순간 사태의 원인을 주체에게로 돌리며 비수처럼 죄의식을 가슴에 꽂는다. 이것은 크게는 계급 갈등의 문제를, 작게는 원한으로 뒤엉킨 개인적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깨어 있으라!’ 그것이 바로 박찬욱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준엄한 정언 명령이다. 왜냐하면 무신경한 주체의 태도가 결국 무가치한 폭력만을 불러오는 복수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박찬욱의 복수극들에서 보아야 할 것은 표면적인 폭력성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공간에 대한 비극적 희망이다. 주체의 자유의지를 통해 모든 것을 인과적 필연성에 떠넘기는 자본주의 논리와 신자유주의적 태도를 거부하고, 주체가 타자에게 가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무한 책임을 요구하기에 유토피아적이다. 그러나 혁명없는 사회체제의 변혁과 모든 주체의 끊임없는 각성은 실현불가능하기에 비극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사회와 역사가 개개인의 주체의 결단과 의지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기에 희망적이다.
“대중에게 가까운 비평을 쓰고 싶다”
최우수상 수상자 김지미 인터뷰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에, 김지미(29)씨는 예상하지 못한 듯 깜짝 놀랐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큰언니(<파도를 넘어서>의 김지수 감독)의 손에 이끌려 대학 영화제를 쫓아다니고, 등급 무제한으로 좋은 영화를 권해주었던 동네 비디오 가게 아저씨의 영향으로, 영화에 빠져들었다는 김지미씨는 영화비평을 쓰게 되기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한 그는 현재 동대학에서 교양 필수 과목인 국어 작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지미씨는 문학과 접목한 영화읽기, 무엇보다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쉬운 글쓰기를 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어떻게 응모하게 됐나.
-고등학교 때 영화 연출을 하고 싶어서 연극영화과를 지망하려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서 포기했었다. 대학 때 영화 동아리에서 영화를 만들어보니, 시각적 사고도 부족하고 이런저런 한계를 느꼈다. 내가 문자적 인간이구나 싶어서 문학을 공부하게 됐지만, 청개구리 기질인지, 영화를 하고 싶었다. 평론가가 되는 길을 찾아보니, 등단하거나 인맥을 통하는 것 두 가지더라. 실은 지난해에도 지원을 하려다 실수로 원고를 날리는 바람에 못하게 됐다. 비교적 어린 연령대의 지난해 당선자들을 보니, 내가 너무 게으르게 살았던 게 아닌가 반성이 되어서, 올해 다시 준비해 지원하게 됐다.
=이론비평 주제로 박찬욱 감독을 택했다.
-박찬욱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먼저 본 영화가 <올드보이>였는데, 그냥 반했다. 스타일과 서사가 꽉 짜인 느낌이었고, 균형도 잘 맞았다. <복수는 나의 것>의 계단장면 같은 것을 보면, 이야기 전달에 그치지 않고 시각적 구성에도 굉장히 신경을 쓰는 것 같더라. 저런 구성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일까 궁금했고, 밝혀내고 싶어졌다.
=주로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평가하는 편인가.
-하나의 주제를 미친 듯이 파고들어 탐구하는, 그래서 끝을 보는 감독들을 좋아한다. 지금 떠오르는 이름은 파스빈더 정도.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 자크 리베트의 <누드모델>이 무척 좋았다. 긴 영화라 긴장도 했고, 지루할까봐 걱정도 됐는데, 예술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주제를 전하는 노장의 힘이 느껴져 감동스러웠다.
=문학 전공자에게 영화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서서히 장르의 경계가 사라지는 걸 느낀다. 영화 하던 천명관씨도 얼마 전 소설을 내지 않았나. 선생님들도 문학만 고집하기보다 다른 장르, 다른 매체와 접목하길 권하신다. 학생들도 책보다는 영화 얘기에 더 눈을 빛내는 걸 보게 된다. 이제 정말로 하나만 해선 안 될 것 같다.
=어떤 글쓰기를 하고 싶은가.
-쉬운 글쓰기를 하고 싶다. 학교에 있다보니 이론적 글쓰기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개인적으론 어려운 얘길 쉽게 쓰는 게 좋은 글쓰기라는 생각이 든다. 비평의 소임은 자기들끼리만 아는 암호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알리고 보게 만드는 통로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영화는 사람들에게 가까운데 비평은 왜 가까워질 수 없을까.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