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58회 칸영화제 중간 결산 [5] - 한국영화
2005-05-2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임상수는 해방의 시네아스트다”

한국영화 사상 최다 진출…
김기덕의 <활>부터 장률의 <망종>까지 현지 반응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감독, 신민아, 이병헌(왼쪽부터).

올해 58회 칸영화제에는 장편 6작품, 단편 1작품 등 총 7작품의 한국영화가 진출했다.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일이다.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이 경쟁부문, 김기덕 감독의 <활>이 주목할 만한 시선,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 비경쟁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과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가 각각 비공식 감독 주간, 조선족 장률 감독의 <망종>이 비공식 비평가주간에 포진됐다.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는 심민영 감독의 단편 <조금만 더>도 포함됐다. 각 부문에 고루 초청받은 것이 특기할 만하다.

김기덕의 <활>, 호응도 좋은 편

5월18일 현재, <극장전>을 제외한 모든 감독들의 영화가 이미 상영을 마쳤고 호평과 관심 속에 기자회견 등을 열었다. 먼저 주목할 만한 시선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김기덕 감독의 <활>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개막일인 5월11일과 다음날 12일 이틀간 공식 2회 상영 동안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극장의 규모에 상관없이 모두 만석으로 채워졌다. 베니스와 베를린에서 각각 감독상을 타며 주가를 올린 김 감독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12일 상영 직전 배우 한여름, 전성환 두 배우와 함께 무대에 오른 김 감독은 “세상에는 이런 영화도 있습니다”라며 간단한 영화소개를 하고 무대를 내려갔다. 상영 직후 관객은 영화에 대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활>에 대한 현지의 평도 대체로 좋은 편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재능있고 생산적인 한국 감독”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리베라시옹>처럼 “가장 생산적이지만, 가장 과대평가받은 감독”이라는 비판적 논조도 있었다. 한편, ‘이번 영화에 대해서 말로 설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며 국내 모든 언론인터뷰를 거절했던 김 감독은 칸에서 처음으로 소수 매체들을 상대로 말문을 열었다. 칸영화제 공식 텔레비전 채널 <텔레 페스티벌>의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어려운 영화다. 예를 들어, 내 다른 영화들에서는 사람들이 진짜 대사로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관념으로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지운은 분위기의 대가”

5월14일 첫 상영을 갖고 기자회견을 연 <달콤한 인생>의 기자회견장에는 김지운 감독을 비롯, 이병헌, 신민아 두 주인공이 참석했다. 상당수 일본 취재진들이 회견장을 채운 것이 이채로웠다. 김지운 감독은 특유의 말솜씨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가령, “왜 <킬 빌>을 모방했냐”는 비난조의 질문에 “한국에서 영화 첫 시사를 하고 나서 이 영화를 ‘멜빌’과 <킬 빌> 사이라고 말했던 게 그렇게 와전된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다이하드>와 <터미네이터> 사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느 평자가 <달콤한 인생>을 나쁘게 봤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그런데 그 나쁘게 말한 기자 명함이나 연락처 받아놓은 거 있냐”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이병헌의 경우에도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동안 칸에 올 기회가 있었지만, 구경꾼의 입장에서 오기 싫어 일부러 안 왔다. 호텔 숙소 바닥도 전부 레드 카펫이라 떨지 않기 위해 거기에서 연습 많이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기자회견은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영미권 데일리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여섯째날 리뷰에 “김지운은 그의 전작 사이코 호러 장르 <장화, 홍련>에서처럼, 분위기의 대가”라고 말하면서 “액션 팬들이라면 싸움장면에서의 깔끔한 숏들과 편집에 재미를 얻게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고,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 역시 “홍콩영화의 총격전을 흉내내어 만들어진 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면서 <달콤한 인생>의 대중적 만듦새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그때 그 사람들> 역사를 재해석한 수준작”

거리에 붙은 <그때 그 사람들> 포스터

비공식 감독주간이라고 해서 무시할 일이 아니다. 감독주간에 초청된 한국영화 중 5월13일 가장 먼저 상영회를 가졌던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서 <카이에 뒤 시네마>는 5월호 칸 특집 섹션에 영문 리뷰를 프랑스어로 옮겨 크게 실어놓으며 관심을 표명했다. 진보적 일간지 <리베라시옹>도 큰 지면을 할애해 “네 번째 영화를 통해, 우리는 한국 감독 임상수의 기이한 경력을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그는 해방(리베라시옹)의 시네아스트이다. 그것이 페미니즘적 해방이든(<처녀들의 저녁식사>), 성적(<바람난 가족>)이든, 세대문제와 관련해서(<눈물>)이든 정치적인 것(이 믿을 수 없도록 사실주의적인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에서처럼)이든 간에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피에 물들고 미스터리로 둘러싸인 역사의 에피소드에 대한 해석이다”라며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기자회견 직후 임상수 감독은 사석에서 “한국의 역사를 모르면 이해를 잘 못할 거라고들 했는데, 뭐 막상 와보니 다들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주간 책임자이자 프랑스 감독협회 회장 파스칼 토마도 “아이러니를 잘 살린 굉장한 작품”이라고 하면서 칭찬으로 환대를 아끼지 않았다.

류승범은 제2의 로버트 드 니로?

16일 상영됐던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기자회견장에는 배우인 류승범이 동석하여 관심을 끌었다. 회견장에 모인 관객은 실제로 어떻게 권투 연습을 했는지, 이 영화가 얼마나 실제 이야기에 기대고 있는지 등을 궁금해했다. “이 세상 어떤 영화도 실제 배우들에게 권투를 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으로 시키게 됐다. 하지만 미안해서 배우들의 얼굴을 잘 못 본다”고 류승완 감독은 전했다. 그중 류승범에 관해서 어느 질문자는 “<성난 황소>의 로버트 드 니로만큼이나 연기의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해 “로버트 드 니로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다”는 류승완 감독의 재치있는 화답을 끌어냈다. 한편, “류승완 최고의 영화가 나온 것 같다”고 기자회견의 인사말을 열었던 사회자가 회견 도중 “동생과 일한 것은 처음이었냐”고 물어, 아는 사람만 아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장률 “조선족을 알리는 게 중요했다”

장율감독

비공식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조선족 장률 감독의 영화는 5월18일 첫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그의 영화 <망종>은 중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 여자의 슬픈 삶과 몸부림에 가까운 항거를 다루는 영화다. 상영 직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영화의 무게를 따라가듯 진지한 문답들이 오고 갔다. 주인공 여자에 관해 묻는 질문에 장률 감독은 “중국에는 200만명의 한인이 있다. 이들을 보여주는 것이 내게 중요했다. 조선족은 중국사회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어를 하고 있지 않는 한 외모로는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여자가 한국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제 칸의 한국영화에 관해 남아 있는 주요 관심사는 19일 오후 상영될 <극장전>의 수상여부다. 홍상수 감독 및 배우 일행은 같은 날 레드카펫을 오른다.

합작영화 <무극>

중국·한국·일본·홍콩이 만든 범아시아 블록버스터

<무극>의 감독과 배우들. 첸카이거(왼쪽) 감독과 장동건(가운데).

합작영화 <무극>의 밑그림이 칸에서 공개됐다. 12분짜리 프로모션 필름의 마켓 상영과 함께 개막 2일째인 5월12일 아시아 언론을 대상으로 열린 기자회견에 감독 첸카이거와 배우 장동건, 장백지, 사나다 히로유키, 사정방, 리우예, 촬영감독 피터 파우 등이 참여했다. 한국, 중국, 미국 등 3개국의 자본 3천만달러와 중국, 한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 4개국의 인력으로 만들어진 <무극>은 문자 그대로 범아시아 블록버스터 프로젝트다.

<무극>의 범아시아 블록버스터적인 성격을 가장 뚜렷이 드러내는 부분은 스토리다. 국적과 역사를 지운 <무극>은 인류에 존재한 적 없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신분제를 거스르는 역경의 멜로를 다룬다. 흔들리는 왕조와 암살자를 앞세운 반란세력이 있고,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며, 노예(장동건)와 장군(사나다 히로유키)과 공주(장백지)는 삼각관계에 놓이고, 초인간적인 능력과 마법이 등장한다. 공동각본을 맡기도 한 첸카이거 감독은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며 “에픽은 아니다. 판타지라고만 말할 수도 없고 액션과 멜로 등 모든 장르를 다 결합했다. 한 영화를 통해 모든 문화를 보게 만드는 시도”라고 부연한다.

영화의 비주얼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다. “첸카이거 감독은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스토리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말한 피터 파우(<와호장룡>)는 이번 영화를 인물의 감정을 따라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으로 촬영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프로덕션디자인은 아시아 각국의 전통 미술양식의 특징들을 다양히 드러내며, 붉은색이 강조된 의상디자인은 곡선이 많고 화려하다. 무술감독은 <스파이더 맨2>와 <매트릭스> 시리즈의 무술팀으로 참여한 디온 람이 맡았다.

130일간 내몽골을 비롯해 중국 대륙 곳곳에서 궂은 날씨를 이기고 촬영된 <무극>은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개봉은 중국과 한국이 12월경, 일본은 내년 신정께로 예정돼 있다. 베이징21세기솅카이, 차이나필름그룹, 베이징티안유오, 문스톤엔터테인먼트, (주)쇼이스트 등이 공동제작하며, 아시아를 제외한 해외배급을 미라맥스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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