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미카엘 하네케·구스 반 산트 등 칸 출신 거장들의 신작 호평
발가벗고 열광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극장 안의 어둠을 칸 비치의 햇빛과 맞바꾸는 것이 올해 칸에서는 아깝지 않다. 기대를 품고 만난 거장들의 현재가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준다는 것은 가슴 벅찬 경험이다. 지난 5월15일 일요일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가 오전에는 월드 프리미어 상영으로, 오후에는 오케스트라와 다스 베이더까지 동원한 레드카펫 행사로 팔레 데 페스티벌을 하루종일 장악했던 것을 제외하고 올해의 칸은 매 과목 상위권 성적을 내는 단정한 우등생 같다. 거장들이 보내온 편지를 뜯을 때마다 지독한 실망의 한숨을 쉬어야 했던 2003년에 비한다면, 그리고 ‘새로운 발견’에 치중한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다소 난감했던 지난해에 비한다면 더욱 신뢰할 만하다.
현지 언론과 평론가들도 올해 칸의 선택이 크게 실패하지 않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데일리와 <필름 프랑세즈> 데일리가 소개하는 별점표에 따르면, 영화제 8일째에 이른 현재까지 공통적으로 수위에 오른 영화들은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 짐 자무시의 <망가진 꽃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어떤 폭력의 역사>, 라스 폰 트리에의 <만달레이>,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 등이다. 칸 커넥션을 따지고 드는 것이 다소 진부하다고 해도, 어쨌거나 이들은 하나같이 과거 1회 이상 경쟁부문에 참가했거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칸의 자식들이다. 지금은 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물러난 질 자콥 치하의 칸 20년 약사(略史) 같은 이 이름들이, 칸의 안정적인 선택이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기도 한 것임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번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칸은 올해 아시아영화와 라틴영화를 경쟁부문에 무려 8편이나 데려왔지만 자신들의 ‘안전한 선택’을 뒤흔들 만한 진정한 대안까지 데려오지는 못했다. 팔레 데 페스티벌 주변에서는 자무시와 크로넨버그가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라는 루머가 심심찮게 떠돌고 있다. 절대 다수가 복종할 만한 화제작이 없는 상황에서 경쟁부문 상영작 가운데 유일하게 엄청난 문전성시를 이룬 영화가 짐 자무시의 <망가진 꽃들>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 5월호에서 장 미셸 프로동은 “올해 칸영화제를 장식하는 수많은 이름들 중에서 단 하나의 이름이 이들의 영화세계가 추구하는 바의 본질을 결정화(crystalize)한다. 그 이름은 짐 자무시이다”라는 구체적인 의견을 쓴 바 있다.
결국 제58회 칸국제영화제에 관한 두 번째 편지를 쓰며 ‘거장의 귀환’이라는 테마를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됐다. 가장 익숙한 칸의 그림이자 만족스러운 영화제의 경험을 안겨준 경쟁부문 여섯편(<히든> <망가진 꽃들> <어떤 폭력의 역사> <만달레이> <라스트 데이즈> <아이>)의 소개를 통해 충분히 흥미롭게 행군 중인 동시대 작가들의 현재를 가늠해본다. 이어 거장들의 그늘 속에서 발견된 신성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천국에서의 전쟁>, 리티 판의 <불탄 극장의 예술가들>, 아마트 에스칼란테의 <상그레>, 아르노 라리유와 장 마리 라리유 형제의 <그림을 그리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등 네편을 추렸다. 마지막으로 <활>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 <그때 그 사람들> 등 비경쟁 부문에 출품된 한국영화들에 대한 현지의 반응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