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58회 칸영화제 중간 결산 [4] - 4인의 신성
2005-05-25
글 : 박혜명
미지의 지성을 주목하라!

4인의 신성 발견 - <상그레> <천국에서의 전쟁>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 <그림 그리기 또는 사랑 나누기>

작은 변명을 먼저 덧붙이면, 여기서 ‘신성의 발견’이란 이름으로 간추린 네명의 감독 중 아마트 에스칼란테를 제외한 세 사람은 순수하게 신성도, 순수하게 발견도 아니다. 캄보디아 출신의 리티 판은 1985년 <사이트2>를 시작으로 20년간 활동해온 다큐멘터리스트이자 극영화 감독이고 8편의 작품 가운데 2편이 칸에 초청된 적이 있으며 지난해 EBS와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각각 그의 영화 <앙코르의 사람들>과 <방황하는 영혼의 땅>을 국내에 소개했다. 몇년 전 미국에서는 리티 판의 회고전도 열렸다. 멕시코 감독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는 데뷔작 <하퐁>(2002)으로 2002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의 아르노 라리유와 장 마리 라리유 형제는 지금까지 1편의 단편, 1편의 중편, 그리고 3편의 장편영화를 모두 공동작업해왔다. 프랑스 주간지 <텔레라마>는 칸영화제 개막주에 ‘내일의 시네아스트 40인’을 커버로 내세우며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와 함께 라리유 형제를 기대주로 꼽았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심지어 아마트 에스칼란테도, 애초 경쟁부문에 진출할 가능성 높은 신인 중 하나였다. ‘신성’이란 말은 이들 넷을 거장이란 단어로 묶을 수 없어 핑계 삼아 끌어들인 반의어에 가까운 셈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데뷔작 <상그레>

<상그레>

아마트 에스칼란테의 <상그레>(Sangre, 90분, 멕시코, 주목할 만한 시선)는 마룻바닥 위에 죽은 사람처럼 반듯하게 누운 한 남자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는 곧 일어난다. 일어나지만 디에고의 삶은 주로 반쯤 죽어 있다. 행정기관의 문을 지키고 서서 오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는 일을 하는 그는 집에 오면 아내 블랑카와 나란히 누워 TV연속극을 보거나 아내의 요구로 섹스를 하는 것이 삶의 전부다.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블랑카 모르게 만나오던 디에고는 집을 뛰쳐나온 딸아이에게 모텔 방을 잡아준다. 다른 거처를 곧 알아봐줄 터였는데, 어느 날 퇴근 길에 여느 때처럼 들러보니 딸이 죽어 있다. 디에고는 아이의 시체를 검은 비닐로 싸서 쓰레기 하치장에 내다버린다. 제목이 ‘피’로 번역되지만 피 한 방울 볼 수 없는 <상그레>는 감독이 1979년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히 대담한 태도로 미니멀하게 만들어졌다. 침대 위에서 시작되는 아침, 소파 위에서의 TV 관람, 군역처럼 의무감에 벌어지는 섹스가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사이, 삶의 감각을 잃어버리고도 세상을 겁내는 인간의 비참한 이야기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간다. <상그레>는 리얼리즘의 외피를 썼을 뿐 감독이 자기 의도대로 세상을 제한하겠다는 의지가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화면을 지배하는 극영화다. 인물을 잡아내는 클로즈업은 화가 치밀 정도로 갑갑한 반면 풀숏 안에서는 감정이 넘실거린다. 데뷔작의 과욕이 남긴 흔적조차 대담한 에너지에 잡아먹히는 <상그레>는 첫 공식 시사 다음날 <리베라시옹>과 <르몽드>로부터 “틀림없이 영화는 죽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적인 성찰이 돋보이는 영상시 <천국에서의 전쟁>

<천국에서의 전쟁>

이 징그러운 데뷔작의 제작자는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다. 에스칼란테가 조감독으로 일했던 레이가다스의 두 번째 극영화 <천국에서의 전쟁>(Batalla En El Cielo, 120분, 2005년, 멕시코, 경쟁부문)은 <상그레>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옷감 위에 종교적, 정치적 서명까지 새겨넣은 작품이다. 장군의 오랜 운전사 마르코스는 장군의 젊은 딸 아나를 어릴 때부터 봐왔다. 아나는 재미 삼아 몸파는 일을 하고, 마르코스는 (가난 때문에) 이웃집 아이를 최근 유괴했다가 죽게 하고 말았다. 아나의 일터에 이끌려간 마르코스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아나와 섹스를 한다. 물론 섹스는 자신만큼이나 뚱뚱하고 못생긴 부인하고도 한다. 마르코스는 아름다운 아나를 사랑한다. 그녀도 자신을 사랑해주면 자기 삶은 구원받게 될 지도 모르는데, 아나는 그를 외면한다. 마르코스는 아나를 죽인다. 자기 계급의 주제를 파악 못하는 인간들의 영화인 <천국에서의 전쟁>은 천국을 믿지 않는다. 성기를 보듬어주는 완전한 사랑이 절망한 인간에게는 가장 직접적인 구원이 될 수도 있다. 군인들이 게양하는 멕시코 국기는 하늘을 뒤덮고, 마르코스가 아나와 함께할 때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인간은 지상에서 천국의 위엄과 기쁨을 경험한다. 마르코스가 높은 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멕시코의 풍경, 바실리카 성당에 모여든 순례자들의 거대한 인파, 천천히 훑어내려가는 마르코스와 아나의 나신, 섹스를 끝내고 누운 두 사람을 중심으로 360도 패닝 안에 담기는 도시. 매우 지적인 성찰들로 가득하면서도 <천국에서의 전쟁>은 A4지 수장 분량의 이야기를 압축시킨 시적인 컷 하나가 보는 이를 먼저 매혹시키는 영화다. 레이가다스의 두 번째 영화는 버릴 것이 없다.

예술의 의미를 묻는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

리티 판의 9번째 작품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The Artists of The Burnt Theater, 85분, 2005년, 캄보디아, 비평가주간)도 아주 지적인 영화다. 불에 탄 극장에 남아 생활하는 연극단원들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가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놀라운 것은, 따분해서 기절할 것 같은 이 질문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리티 판의 재능이다. 비전문배우들을 데리고 6개월간 불탄 극장에 기거하며 영화를 촬영한 리티 판은 20년간 연극을 해온 극장주 호인을 중심으로 10명 남짓한 구성원들의 가난해서 불만스럽지만 게을러서 느긋한 일상을 영화 안에 흩어놓는다. 극장 보수 작업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가끔씩은 무대에 올리지도 못할 연극을 연습하거나. 박쥐를 잡아 모처럼 고기 요리도 해먹는다. 극단주 호인은 예술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해 혼자 종이인형극을 하거나 깃털 달린 모자에 긴 칼을 들고 희곡의 주인공 연기를 해본다. TV 보는 극단원들 곁에서 낮잠 자는 개가 찍혔을 정도로 매 순간 작위적인 냄새가 없는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은 마지막에 비로소 “이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예술을 왜 하지?”라고 호인의 입을 통해 묻는다.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만큼 크게 다가오는 것은 영화의 형식이다. 리티 판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극영화 안에 연극, 영화, 종이인형극 등의 형식을 다시 집어넣고 형식 안과 바깥의 경계를 종종 허물어뜨린다. 다큐멘터리의 자연스러움을 전반에 깔고 지적인 주제의식과 지적인 형식을 고민하는 리티 판의 영화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는 호인의 얼굴을 비추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화가 심장을 두드리며 하나의 기적처럼 다가오는 순간도 바로 그때다.

작지만 매서운 힘을 가진 소품 <그림을 그리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아르노 라리유와 장 마리 라리유 형제의 <그림을 그리거나, 사랑을 나누거나>(Peindre ou Faire L'amour, 98분, 2005년, 프랑스, 경쟁부문)는 앞서 세편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영화다. <상그레> <천국에서의 전쟁>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이 리얼리즘편에 서 있다면 라리유 형제의 <그림을 그리거나…>는 장르영화에 속한다. 영화는 외동딸을 로마에 보내고 한적한 교외에서 지내는 50대 부부의 이야기다. 마들렌과 윌리암은 서로에게 여전히 애정표현이 후한 커플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젊은 부부와 스와핑을 하게 되고, 그 재미에 빠질 무렵 그들과 이별하게 된다. 허탈해진 두 사람은 이사를 결심하지만, 팔려고 내놓은 집을 보러온 젊은 커플과 새롭게 눈빛을 교환한다. <그림을 그리거나…>의 고전기 할리우드의 장르영화를 현대적인 미니멀리즘으로 변형시켜놓은 영화다. 점점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워지는 상황은 로맨틱코미디의 그것과 비슷하고, 인물들이 감정을 쏟아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영화가 뜬금없이 먼 산을 바라보며 샹송을 들려주는 낭만은 뮤지컬영화를 연상시킨다. 그 안에 있는 마들렌과 윌리암은 애정과 욕망 때문에 고민하고 당황하고 실수하는 에릭 로메르의 인물들을 닮았고, 말끔한 무대는 연극적이다. 칸영화제 경쟁작으로 치면 소품의 느낌도 있지만 그 작은 몸집이 날렵해도 가볍진 않다. 꽉 짜여진 신과 정곡을 찌르는 대사들이 부르주아들의 티타임 수다거리같은 얘기를 심각하고도 웃기게 100분 동안 몰아간다. 그 힘에는 좀처럼 빈틈이 없다.

독특한 데뷔 감독들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오른 배우 출신 감독들

토미 리 존스
니키 카리미

배우가 연출을 하거나 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물려받아 데뷔하는 건 적잖게 마주할 수 있는 스토리다. 올해 황금카메라상 후보들 중에는 그런 이력을 가진 감독이 세명이나 된다. 토미 리 존스, 후안 솔라나스, 니키 카리미가 그들이다.

이름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후안 솔라나스는 아르헨티나의 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영화 <구름>의 촬영감독으로 참여하고 데뷔작 <노르데스테>(Nordeste, 104분, 2005년, 아르헨티나, 주목할 만한 시선)를 내놓았다. ‘북서쪽’이란 뜻을 가진 <노르데스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40대 독신의 프랑스 여성이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아르헨티나까지 날아갔다가 버려진 집에 살고 있는 가난한 모자를 만나 겪는 이야기다. 헬레네의 불법 입양과 후아나 모자의 가난이 아르헨티나의 사회문제로 커다랗게 뭉쳐져가는 과정을 리얼리즘 방식 안에 담았다. 너무 정직한 대사들이 간혹 영화를 무르게 만들지만 이야기 구조는 전체적으로 아주 단단하다.

니키 카리미는 1993년 <사라>로 데뷔해 타미네 밀라니의 영화 등 8편의 영화에 출연한 이란의 여배우다. 그의 감독 데뷔작 <하룻밤>(Yek Shab, 90분, 2005년, 이란, 주목할 만한 시선)은 이기적인 엄마와 불화하는 십대 소녀가 집 밖에서 보낸 하룻밤을 다룬다. 애인과 지내야 하니 자리를 피해달라는 엄마의 말에 네가르는 화가 잔뜩 나서 무작정 밖으로 나온다. 길에서 세번 차를 얻어타는 네가르는 일부다처제를 신봉하는 택시운전사, 사랑은 상대방을 구속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믿는 독신 의사,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바람난 아내를 죽여버린 남자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세 종류의 차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간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찍어냈다.

대중적인 유명세로 가장 관심을 끄는 신인감독은 할리우드의 노장 배우 토미 리 존스다.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장례식>(The Three Burials of Melquiades Estrada, 120분, 2005년, 미국, 경쟁부문)은 텍사스 사막 한가운데에서 죽은 한 남자가 말 그대로 세번 땅에 묻히는 이야기다. <21그램> <아모레스 페로스>의 작가 기예르모 아리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이 기사가 쓰여지는 시점에서) 아직 상영 전이라 영화를 가늠할 길은 전혀 없다. 토미 리 존스는 1946년생이다. 영화 <스페이스 카우보이>에서 네명의 늙은 우주비행사들 중 가장 열정이 넘친 그의 캐릭터에 겹쳐지는 것은 프랑스 평단이 일찌감치 작가로 인정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배우 출신의 늦깎이 천재감독이 또 한번 할리우드에서 나타나려는 걸까. 어쨌거나 존스의 데뷔작은 올해 황금종려상 후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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