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픽션, 경계의 영화 <인터뷰>
<인터뷰>는 멜로드라마이되 멜로드라마가 아니고, 다큐멘터리이되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픽션이되 픽션이 아니고,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이되 또한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변혁 감독의 <인터뷰>는 하나로 매듭지어 버리기 곤란하게 풍성한 결을 지닌 영화다. 그리고 그 결 사이사이에는 카메라란 영화란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깔려 있다. 변혁 감독은 또, 심은하 이정재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으면서도 스크린에서 그들의 스펙터클을 지워냈다. 이것만으로도 주류영화에서는 파격적인 실험이라고 할 만하다. <인터뷰>는 따라서, 배우 이정재에게도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극중 감독 이정재가 실제 감독 변혁을 인터뷰했다. 극중 감독은 성실히 물었고, 실제 감독은 골똘히 대답했다. 그들은 인터뷰를 나누며 <인터뷰>에서 이런 생각거리들을 길어 올렸다.
진짜이자 가짜, 진실이자 거짓
이정재 |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로 인터뷰 촬영에 참여했는데, 정말 어려웠다. 은석을 카메라를 든 인터뷰어로 설정했을 때에는 특별한 기대가 있었을텐데.
변혁 | 보통 인터뷰에서는 주로 말하는 사람이, 그가 하는 말이 중요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수많은 인터뷰만 봐도 찍히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느냐를 중시한다. 나는 찍는 사람의 입장도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찍히는 사람만큼은 안 나오지만 카메라 든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주인공이 카메라를 든 사람이라서 자칫 잘못하면 영화만드는 과정만 보여주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했다. 어쨌든 찍히는 사람의 이야기와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얼마나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지를 다루고 싶었다. “카메라 뒤로 몸을 숨기고 싶어요”라는 대사처럼 인터뷰 대상만이 아니라 찍는 사람도 인터뷰의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 | 비디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치과부부들은 다큐멘터리 인물인데,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어서 필름으로도 찍었다. 그렇게 양쪽에 나오니까 전문배우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느낄까.
변 | 나 보고도 그 치과부부가 진짜 배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혼식이 진짜냐고 묻기도 하고. 난 인터뷰할 때마다 틀리게 말한다. 다 진짜예요 했다가, 다 배우예요 했다가. 뭐냐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다, 도대체. 심은하가 배우인지 모르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이 사람은 배우예요’ 하면 감동이 없어지고, 진짜라고 하면 감동이 샘솟 듯 솟아나는 건 아니다. <인터뷰>는 모호한 지점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앞으로는 인터뷰할 때마다 어떻게 대답할지 미리 짜자. (웃음) 박청화 부부 인터뷰 중에 재현된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필름으로 찍었다고 가짜고, 다큐로 찍었다고 해서 진짜인가. 그렇지 않다.
이 | 누구나 경험했다고 하지만 쉽게 꺼내놓기 어려운 게 사랑이야기다. 특별히 이런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변 | 누구나 다 품고 있는 이야기이고 누구나 다 한마디씩은 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해서다. 사실 <인터뷰>는 주제가 다른 것이었어도 큰 상관이 없었을, 그런 영화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만한 주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 | 사랑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애초 생각한 것만큼 풍부하게 표현됐다고 생각하나.
변 | 다양성은 보여준다. 인터뷰 대상들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르니까. 글쎄, 잘 모르겠다.
이 | 그게 잘 표현이 안 된 것같아서 묻는다. 인터뷰 중에 “담배피운 여자와 키스하면 재떨이를 빠는 것 같아서 싫었는데, 지금 여자는 담배를 피우는데도 키스할 때 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대목이 있다. 근데 영화를 보는데 “재떨이 맛이 나서 싫다”라는 대사에 관객이 웃는 바람에 뒤는 잘 안들리더라. 여자를 사랑하게 되니까 키스할 때도 담배 맛이 안 난다는 게 핵심인데.
변 |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다. 웃기는 인터뷰만 고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들었다. 박청화씨 얘기처럼 잔잔한 얘기가 있음에도 몇 가지 얘기가 강력해서 그런 것 같다.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렇지만 영화는 만드는 과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적인 향수, 곧 관객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작품의 끝이기 때문이다. 그런 훈련이 돼 있지 않은 채 그저 웃으려고 극장에 오면 재떨이 운운하는 얘기에 막 웃어버리고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심은하 예쁘다고 박수치고, 이정재 머리 죽이는데 하고 박수치는 거로 끝난다. 그러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영화를 보면 더 중요한 얘기가 들린다. ‘아 이런 얘기를 하고싶었던 거구나’하고 알게 되는 거다. 영화를 만드는 우리의 몫이 50%, 70%라면 관객이 읽고 재창조하는 몫이 50%, 30%는 된다.
멜로드라마의 탈을 쓴 카메라에 대한 성찰
이 | <인터뷰>는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로 구분이 되지만, 난 오히려 “그대는 진실을 찾고 있는가”라는 대사가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얘기가 몇번이나 반복되고.
변 | 관객 60∼70%는 이 영화를 이정재, 심은하 주연의 독특한 멜로드라마로 읽겠지만, 좀더 훈련된 사람은 <인터뷰>를 영화, 이미지, 진실에 대한 성찰로 읽을 것이다. 굳이 광고카피를 말한다면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탈을 쓴 카메라에 대한 성찰’쯤이 될 거다. 멜로드라마의 ‘탈’을 썼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멜로만을 기대하면 채워지지 않는 게 생긴다. 이정재가 정말로 심은하를 좋아하면 감정이 더 드러나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거다. 흔히 드라마의 완결성을 기대한다. 나는 약간 시작하는 듯한 감정까지를 영화화했는데, ‘그래서 이정재가 심은하랑 결혼을 했어, 안 했어’, 이런 걸 묻고 싶어하는 거다.
이 | <인터뷰>를 멜로드라마로 국한시키지 않고 스스로 장르를 지정한다면 어느 서랍에 넣겠는가.
변 | 좋은 질문이다. 그냥 영화라는 서랍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진짜 의도 중의 하나는 영화에 대한 정의들을 부정하는 거다. 영화의 첫 시작은 이래야 되고, 끝은 이래야 되고, 멜로는 이래야 된다는 따위의 규정들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멜로의 탈을 썼기 때문에 멜로처럼 만들면 안 되는 게 나의 숙제였다. 다큐, 픽션 중 무엇으로 분리하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분리 자체가 무의미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런 구분 자체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그냥 여러 가지가 혼재된 ‘영화 한편’이다. 어떤 틀로 맞추려고 들면 거기에 비하면 이게 아쉽고, 여기에 대면 그게 아쉽고,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정재를 ‘영화배우 이정재’로 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랑하기가 힘들어진다. 이정재라는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수사어를 붙이고 규정하고 카테고리로 묶으면 총체는 없어져버린다.
이 | 이번 영화에서 그런 틀을 깨고 싶었나.
변 | 가능하면 영화의 수많은 정의들을 거부하거나 질문하고 싶었다. 상당히 많은 영화학도들이 그랬을 텐데, 타르코프스키를 추앙하는 영화학도의 입장에서 과연 그의 영화가 우리에게 좋기만 했나, 그로 인해 아류들이 나온 건 어떻게 봐야 하나, 예술은 이런 거다라고 제한해버린 건 아닌가. 이런 걸 질문하고 싶었다. 영화의 맥이 끊기는 건 안 좋고, 감정이입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영화 끝내고 나서 핑계만 많아지는지도 모르겠다. 공부하면서, 작업하면서 스스로에게 ‘영화는 이래야 한다’라고 제시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싶었다. 다시 인터뷰를 한다면 또다른 것을 성찰하겠지. 예를 들어 내가 담배피우는 걸 싫어해서 이 영화에는 단 한 장면에도 담배피우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보면 신기호씨 인터뷰 장면에서 담배 연기가 살짝 올라온다. 이건 아무리 내가 감독이라고 해도 다큐의 인물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증거다. 정말 기분나쁘면 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배우라면 다시 찍을 수 있겠지만 진짜 인물의 삶은 그럴 수가 없다. 다큐와 픽션에 차이가 있긴 있는 거다.
이 | 프랑스에서 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충무로와 프랑스의 차이를 많이 느꼈는지.
변 | 촬영과정 자체는 별로 차이가 없는데 프리 프로덕션의 차이가 크다. 프랑스에서는 프리 프로덕션이 훨씬 치밀하고 길다. 기획한 촬영 횟수와 실제 사이에 오차율이 5% 미만이다. 심지어 배우와의 계약도 횟수를 예상해서 개런티를 선정한다. 프로덕션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치밀해진다. 프리 프로덕션에 1년에서 3년이 걸린다. 후반작업기간도 훨씬 길다. 편집에 최소 4개월, 사운드에 2개월이 걸리고 믹싱은 하루에 10분 이상을 하지 않는다. 충무로라고 해서 힘들었던 건 별로 없다. 좋은 조건에서 찍었다. 여전히 창작하는 입장에서 내 안의 문제들을 정리하는 게 더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