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변혁 vs 이정재 [2]
2000-04-04
사진 : 오계옥
정리 : 이유란 (객원기자)

연기 못한 거, 답답한 거, 좋아

이 | 왜 감독 역할에 나를, 또 거짓말하는 발레리나로 심은하씨를 캐스팅했는지 궁금하다.

변 | 스케줄이 비는 배우가 둘밖에 없어서. (웃음) 캐스팅할 때 제일 중요한 기준은 영화감독처럼 보이지 않는 배우, 영화감독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배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형성들, 규정들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으니까. 영화감독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껴야 하고 담배도 피워야 되고 하는 식의. 하지만 나를 포함해 어떤 감독이라도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이정재씨도 배우를 하지 않고 연출부에 들어갔으면 감독이 됐을수도 있다. 그랬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하는 게 중요했다. 이정재씨의 출연작들을 구해 보고, 같이 작업했던 감독들 만나서 얘기 듣고, 또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확실한 캐릭터가 그려졌다. 그렇다면 극중의 은석 이야기도 어디까지 가야 효과적이겠구나 하는 감도 잡혔다. 왜 이렇게 답답하게 그려놨을까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관념 속에 있다가 기껏 한다는 짓이 벽이나 치는, 은석에게 그런 답답함이 있어야 그가 인터뷰하려다 사랑에 속고, 작업에 속는 인물로 느껴질 것 같았다. 심은하씨는 그 얼굴 자체에 차가운 구석이 있으면서도 약간 웃으면 소녀같이 예쁜, 좋은 얼굴을 가졌다. <청춘의 덫>을 보고 금방 그림이 떠올랐고 얘기도 쉽게 됐다. 오히려 좋은 조연을 구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이 정도만 답답하게 해줬으면’ 했는데, 다들 거의 100%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해냈다.

이 | 인터뷰하면서 은석을 두고 감독의 자화상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실 그건 영화만들기가 시작되면서 예상됐던 질문이기도 하고.

변 | 사진을 본 사람은 더이상 그런 얘기 안 할 텐데. (웃음) 극중 은석이나 나나 영화감독이고 프랑스를 갔다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난 발레리나와 연애해본 적도 없고, 20명의 여자와 자본 적도 없다. (웃음) 감독은 어디에든 들어가 있다. 이정재만이 아니라 권민중, 조재현씨에게도 있고, 카페에서 트는 음악에도 있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끌어냈다고 하면 맞지만 자전적이라고 말하면 부담스럽다. 그건 그렇고, 감독으로 출연했던 경험은 어땠나.

이 | 영화 찍고나서 더 감독이 될 자신이 없어졌다. 외국에서는 배우가 제작하고 감독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은데. 사실 어느 배우나 그런 꿈을 꿀 거다. 이번 영화 찍고나서 내가 연출을 하려면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변 | 외국 배우가 감독되는 경우가 우리보다 흔한 건 그들이 더 공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잘 갖춰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의 할 일이 많지 않다. 50살이 된 전문 조감독이 있고, 대사 써주는 사람 따로 있는 시스템이니까. 우리는 감독이 쓸데없는 것까지 책임져야 한다. 하긴 그래서 영화만드는 게 더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 | 영화를 만드는 데 연기자는 출연자일 뿐이다. 물론 배우의 생각이나 표현방식에 따라 조금씩 색깔이 달라지긴 하지만 창조는 연출자의 몫이다. 그러니까 여러 방면에 지식이 있어야 한다. 각 분야에 전문가가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뭘 쓸지는 연출자가 선택한다. 갈수록 더 자신이 없어진다. 노력으로 개발되는 부분도 있지만 창조적 능력은 연기자나 연출자나, 타고 나야 하는 것 같다.

요즘도 꿈꾸면 편집실에 앉아 있어

이 |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하면 안 된다는 나름의 금기가 있나.

변 | 전혀 없다. 이런 주제나 형식을 뮤지컬로도 풀 수가 있다. 무엇으로도 할 수 있다. 터부시하는 주제는 없다. 호러는 좋아하지도 않고 잘할지도 의심스럽다. 스펙터클 서사도 좋아하지 않는다. 똑같은 옷이 2천벌 나오는 건 생각만 해도 싫다. 있다면 뭐, 이 정도다. 우리는 살면서 살인사건도 보고 치정사건도 본다. 뭐든 다 보게 된다. 따라서 소재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내 시선으로 어떻게 풀어낼까가 달라지는 거다.

이 | 감독님하고 이재용 감독님하고 친해서 그런지 기자들이 자주 ‘두 사람이 어떻게 틀리더냐’는 질문을 한다. 뭐라고 생각하나.

변 | 뭐라고 생각하나.

이 | 많이 흡사한 것 같다. 그런데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섬세함의 차이가 있다.

변 | 둘의 취향이 비슷하다. 그래서 아카데미 시절 4작품을 함께 했던 거고.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까 내가 벌여놓은 일 뒷수습하고 다니느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 (웃음) 이 감독이 <정사> 끝나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더라. 둘 다 고전음악을 좋아하지만 나는 오페라를 좋아하고 자기는 실내악을 좋아한다고. 그런 차이다.

이 | <인터뷰>나 <호모 비디오쿠스> 같은 영화 말고 순수한 오락영화에는 관심이 없는지.

변 | 관심 많다. 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난 아직도 공부하는 중이다. 영화도 하나의 언어라면 난 지금 언어를 넓히고 발전시키고 훈련하는 과정에 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내가 왜 아직도 영화를 하는가’ 라는 해결 안 된 문제를 한 단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한두 작품을 더하고 나면 깨지게 재미있는 코미디영화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해보고 싶다.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묻겠는데 이정재씨는 어떤 영화를 하고 싶은가. 어떤 기준에서 영화를 고르나.

이 | 감독님이 영화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즘의 선택 기준은 나를 만드는 데 어느 작품이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흥행이 잘되건 안 되건 상관없다. 이 작품을 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얼마나 역량을 넓힐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 어려운 영화감독 역할을 감히 하겠다고 한것도 그래서다. 물론 완벽하게 해내야지 폭이 넓어지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미진한 부분이 많았지만.

변 | 연기에 대해 아쉬움이 남아 있나.

이 | 아쉬움은 항상 남는다. 관객의 칭찬으로 아쉬움이 조금 메워지긴 하지만. 글쎄, 얼마나 메워지는지 잘 모르겠다. 그건 연출자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변 | 왜 아쉬움을 느꼈을지는 짐작이 가지만 난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다. 내가 그린 그림이 바로 그거였다. 감독의 요구대로 연기가 나왔다. 이정재씨를 보고 놀라웠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동물적으로 어떻게 찍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정말 훈련된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경험인지, 끼인지 알 수 없지만.

이 | 감독님은 영화를 찍고 나서 아쉬운 점이 없나.

변 | 무지 많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작업이 끝나면 아쉬움은 언제나 생긴다. 요즘도 꿈을 꾸면 편집실에 앉아 있다. 제일 큰 아쉬움이라면 아까 얘기했던 그 담배연기를 컨트롤할 수 없었다는 거다. 훨씬 더 기막히게 다큐와 픽션을 엮고 싶었고 그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할려면 안면몰수하고 다큐에 개입하거나 조작을 해야 했다. 픽션을 만들 때도 다큐 같은 도덕성, 윤리성이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는데 그런 식의 조작은 할 수 없었다. 다큐를 찍다가도 ‘못하겠어요’ 하면 통째로 날려버렸다. 억지를 써서라도 밀어붙였으면 영화는 더 풍요로웠을지 모르지만. 좀 뻔뻔하게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 <인터뷰>가 관객에게 어떤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나.

변 | 글쎄, 같이 보고 나온 사람이랑 사이좋게 잘살면 좋을 것 같다. 주제가 어떻게 보면 무척 무겁기 때문에….

이 | 주제가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

변 |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우린 6천원 내고 들어가 영화를 보면서 몇번은 웃어야 한다고 기대한다. 만약 3만원 내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를 보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면 정말 재미있을 거다. 똑같은 예술이라고 말하면서 완전히 죽은 오페라를 볼 때는 8만원 내고 가서 보잖아. 제7의 예술이네 말을 하면서도 영화볼 때는 6천원을 아까워한다. 미적 향수가 영화작업의 끝이라면 거기에도 똑같은 진지함, 성실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 만나러 온 것처럼, 데이트하는 것처럼 자세히 뜯어보려고 하면 재미있게 볼 거다. 그러면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겠지.

거울쌍, 삶과 영화

영화만들기에 대한 자의식의 영화들

<망각의 삶>

감독은 실재가 언제든 기어 들어올 수 있도록 항상 세트 문을 열어둔 채 나가야 한다는 말을 장 르누아르는 언젠가 들려주었다. 영화에 관한 영화들은,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필름 속으로 스며드는 현실과 픽션 사이의 가느다란 선 위를 걷는다. 자기 반영의 영화들은 영화만들기가 다수의 인간이 연루된 지루한 집단 작업이자 뒤얽힌 인간관계 그물이라는 ‘감춰진’ 사실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어 안달한다. 배우들끼리의 어긋난 애정이 일으킨 세트의 비극을 그린 조숙한 무성 멜로드라마 <슈팅 스타>(1927, 감독 앤서니 아스퀴스)부터, 촬영현장의 로맨스와 치정극은 영화에 관한 영화의 단골 소재. MGM의 <사랑은 비를 타고>(1952, 감독 스탠리 도넌)는 스타와 코러스 걸의 연애담을 통해 스튜디오영화가 생산되는 과정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공개한다. 그러면서도 이 백 스테이지 뮤지컬은 스스로 전형적인 스토리를 기꺼이 답습해 짐짓 자기 자신도 놀림감으로 삼는다. 최근 개봉한 <색정남녀>(1996)의 주인공은 연이은 흥행 실패로 에로영화를 만들게 된 홍콩감독. 오래 된 연인을 두고도 그는 카메라에 담긴 도색영화 여배우의 모습에 매혹당한다. 그녀가 얼마나 경박한지, 성적 판타지가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치사한 경로로 빚어지는지 속속들이 아는 감독에게도 영화의 주문(呪文)은 위력을 발휘한다.

<이마 베프>

영화사에서 꿈, 판타지, 리얼리티를 가로지른 가장 매끈한 여행으로 불리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8 1/2>(1963)은 감독의 머릿속도 촬영현장 못지 않은 아수라장임을 정직한 문체로 토로한 한편의 시. 차기작의 마땅한 제재를 찾지 못하는 감독 귀도는 예술가로서 남성으로서 고갈됐음을 절감하고, 관객은 귀도의 아내, 정부, 그 밖의 여인들이 우글거리는 그의 강박적인 백일몽 안으로 초대된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13년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구름 저편에>(1996)에서 자아의 분신격인 감독을 스크린 속에 들여보내 욕망과 예술, 진실에 대한 사색을 중얼거리게 한다. 누구 못지 않은 이미지의 연금술사이면서도 눈에 보이는 세계가 과연 궁극적인 진실을 보여주는가를 회의해온 노장의 관록이 둘러싸고 있기에 이 영화가 연신 흘리는 금언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삼지 못하는 사람은 영화를 제대로 볼 수도 만들 수도 없다. 로버트 알트먼의 <플레이어>(1992)가 할리우드 이면의 ‘진흙탕 레슬링’을 중계하는 리포트라면, 톰 디실로의 <망각의 삶>(1995)은 영화광들의 순진한 믿음과 달리 인디영화 촬영장처럼 세상에 갈 곳이 못되는 장소가 없다고 투덜거린다. 배우는 노상 대사를 잊고 붐 마이크는 수시로 프레임에 끼어들며 카메라 초점과 음향도 번갈아 말썽을 피운다. 키 작은 단역 배우는 타이프캐스팅을 거부하고, 주연 배우는 “내가 출연한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 타란티노랑 친하다고 해서야!”라고 유세를 떨며 끝없이 ‘예술적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이런 지경이라면 예술이건 상품이건 한 영화가 완성된다는 것은 일종의 기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올리비아 아세야즈의 <이마 베프>(1996)는 예술의 낙원이라는 파리에서도 영화만드는 작업의 하중은 결코 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때 작가 소리 깨나 들었으나 이제는 내리막인 감독이 고전 <뱀파이어>의 리메이크에 착수하면서 홍콩배우 장만옥을 캐스팅한다. 그러나 파리에 도착한 장만옥은 노이로제 상태인 감독과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 스탭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아세야즈는 이 영화에서 이제는 ‘올드 웨이브’가 된 감독들에게 반성을 촉구하지만 거기에 반발하느라 상업영화 신도가 된 젊은 비평가들에게도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이마 베프>는 이 모든 지지부진함 속에 나온 영화가 발하는 이해 못할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끝난다. 만든 감독조차 이유를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영화의 마술에 바치는 경의는 빔 벤더스의 <리스본 스토리>(1995)에도 충만하다. 감독인 친구가 미완성인 채 남겨둔 영화에 소리를 입히기 위해 사운드 엔지니어인 주인공은 리스본으로 떠난다. 포기된 이미지를 반주할 음향을 채집하는 주인공의 고요한 여정을 따라가던 관객은 어느새 영화가 지닌 의미와도 근접 조우한다.

웨스 크레이븐의 <뉴 나이트메어>(1994)처럼 영화가 현실을 역습하는 도발도 있지만 이 세계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바를 회의하는 겸손한 시선도 있다. 유사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구사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나무 사이로>(1994)는 아마추어 배우를 뽑아 영화를 찍다가 정작 영화는 놓아버리고 여배우를 향한 남자배우의 순박한 구애에 눈길을 빼앗긴 감독을 보여준다. 영화 속의 영화는 흐지부지 끝나고 영화 속 삶은 유유히 계속된다. 구애, 냉소, 철학적 회의. 색깔은 각기 달라도 이 모든 영화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간절히 자문한다. 영화가 삶의 모방이라면, 영화찍기에 바쳐진 삶은 무엇이고 그것을 다시 모방한 영화는 또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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