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경찰영화가 몰려온다 [2]
2005-06-2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글 : 이종도

2. 흥(興)

코미디 기반 남성 액션영화의 일종으로 대중적이며 소구력 강한 장르.

대표작 |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공공의 적> <목포는 항구다> <잠복근무> <마지막 늑대>
제작 중 |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강력3반>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10편의 경찰영화가 쏟아지는 유행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사생결단>의 프로듀서인 심보경 MK픽처스 이사는 남자배우 중심 기획 영화가 많이 늘어났음을 꼽는다. 남자배우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 가운데 경찰만큼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게 드물고, 범죄를 소탕하는 데서 대리만족을 주고, 과감한 액션으로 시각적 쾌락까지 주니 경찰 이상의 직업을 사실상 찾기가 어렵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투캅스>

할리우드 경찰영화와도 다르고 홍콩 경찰영화와도 다른 한국적 리얼리티가 묻어 있는 한국형 경찰영화의 계보는 지금껏 최고의 짝패 배우들을 선보이며 폭넓은 관객층을 만족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형 경찰영화의 폭발력은 이 장르가 코미디를 모태로 해서 태어났다는 데 있다. <투캅스>는 그 선구적 역할을 했는데 거침없는 자기 비하와 자기 폭로를 하며 신성한 공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옴으로써 웃음을 터뜨렸다. 침대맡에 십자가상을 두고 꼬박꼬박 십일조를 챙기고 수요예배까지 드리는가 하면 성실하게 관할구역에서 수금을 하며 부정축재에 여념이 없는 안성기의 경찰상은 하나의 원형을 제시했다. 이후 이 모델은 부정적으로 진화하는데, <공공의 적>에서 범인에게서 훔친 마약을 거래하려는 강철중은 청출어람의 보기를 보여준다. 형사들은 이제 부끄러움도 접어두고 조폭의 똘마니로 들어가거나(<목포는 항구다>), 여고생이 되어 수학문제를 푸는 괴로움까지(<잠복근무>)도 기꺼이 감당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경찰영화는 무엇보다 코미디에 액션을 결합시키며 관객을 충족시켜왔다. 많건 적건 흥행이 된 경찰영화가 코미디 코드를 첨가시키지 않은 예가 드물다. <와일드 카드>를 제작한 장윤현 감독은 드라마 내적인 요소로 승부하기엔 관객의 요구가 높아진 점을 형사영화의 유행 원인으로 짚었다. 쏘고 부수고 때리는 볼거리, 그리고 사회적 비리를 척결하는 형사를 보면서 맛보는 대리만족이 형사영화의 유행을 가져오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3. 빈(貧)

남루한 현실의 무게에 허덕이지만 그것을 돌파하는 반영웅의 장르. 조폭보다는 고학력이나 검찰보다는 낮은 학력, 청바지와 운동화 그리고 점퍼 차림의 수수한 옷차림, 결손가정 출신의 불우함이 이 장르 주인공들의 특징. 한국사회 현실성을 반영하는 장르.

대표작 | <공공의 적> <와일드 카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시나리오 작업 중 | <용서할 수 없다> <형사 이기동> <사생결단>


<강력3반>
<야수>

어쩌면 최근 한국형 경찰영화의 계보를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이 단어가 아닌가 싶다. <공공의 적> 서두에서 설경구가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는 바대로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 날로 현대화, 지능화되어가는 범죄 집단과의 싸움에 거의 맨몸뚱이로 맞서는 형사의 활약상은 궁핍한 시대의 경찰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관객이 이들의 불법과 폭력에 저항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이 휘두르는 주먹에 열광하는 까닭은 관객보다 결코 나을 것 없는 이들의 처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공의 적>에서 새로 부임한 강력반장 강신일은 검찰과 직원의 뒤통수를 치면서 “강력반 힘드니까 받아 쳐먹어도 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부패는 평론가 김경욱의 말대로 “(강철중의 부패와 타락은 <투캅스>와 달리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성화된 타락이며 일상화된 부패”이기는 하다.

최근 제작 중인 형사영화는 빈곤하고 남루한 일상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이들은 500원짜리 생수도 마음껏 사마시지 못하는 강철중의 후배들이다. <용서할 수 없다>의 형사 강종모는 병원 신세가 시급한 아들 상후와 함께 살고 있고 <형사 이기동>의 이기동은 중병을 앓고 있고 죽고 난 뒤 가족을 건사할 도리가 없어 로또복권이나 긁고 있다. <강력3반> 형사들은 강력1반과 2반에 비해 늘 고과점수가 제일 낮은 삼류인생의 집합소이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형사 이대로는 엄마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딸과 살고 있고 본인은 뇌종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른다. <투캅스>에 등장한 경찰대학 수석졸업생이나 가죽부츠 차림의 김보성류는 최근 자취를 감추었다. 연애란 언감생심이다. 부모가 없거나 자식이 아프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중병에 걸린 줄도 모른다. 그런 채로 작전에 투입된다. 이런 남루함 속에서도 결국 평론가 허문영의 말대로 공동선의 질문 앞에서 분투하는 과정이 관객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이들의 행태는 조폭에 가깝지만 공동선의 문제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현실적 영웅상을 제시한다.

<강력3반>의 손희창 감독 인터뷰

“김홍주 형사의 성장드라마라고 할까”

부산에서 <강력3반>을 찍고 있는 손희창 감독은 사람 이야기 혹은 어느 형사의 성장드라마라는 적절한 설명을 찾아냈다. 그의 이야기처럼 제목만은 강력한 <강력3반>은 형사들의 거친 나날보다는 그뒤에 가려진 감정과 일상을 발견해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슬픔과 낙담과 기쁨과 변화가 있는. 강력3반은 언제나 지진아를 면치 못하는 구박덩이다. 신참 김홍주(김민준)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범인을 알아보지만 형사 일에 뜻이 없고, 15년 된 베테랑 형사 문봉수(허준호)는 건망증에 시달리고, 육 반장(장항선)은 다정하나 소심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온다. 강력3반은 홍주가 물어온 사건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대한 마약조직과 연결된 사슬을 하나씩 더듬어간다.

-<강력3반>이라는 제목을 보면 주인공 한 사람보단 캐릭터간의 앙상블을 중요시하는 영화일 듯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쩌면 강력3반 전체일지도 모르겠다. 김홍주나 문봉수, 육 반장과 교통과이긴 하지만 해령(남상미)까지 모두 포함하는.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김홍주에게 감정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정돈을 해야 했다.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의 박정우 작가가 시나리오를 각색했다.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일까.

=그렇진 않다. 코미디가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와 감정적인 부분이 훨씬 강한 편이다. 수사 초반에 걸려드는 마약중독자들이나 제각기 약점이 있는 강력3반 형사들이 웃음을 주는 정도다. 사실 그래서 걱정하는 사람도 있더라. (웃음)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나는 사람에 힘을 싣고 싶었다. 이 영화의 형사들은 그저 이웃집 아저씨 같고, 다들 불완전한 부분이 있는 보통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의,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액션을 강조하는 형사영화보다도 더 치밀하게 취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기승태 작가가 초고를 쓰기는 했지만 나도 함께 형사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들었다. 이 영화의 시작은 형사들의 일상적인 삶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부분은 달걀에 덮인 밥처럼 밑으로 숨겼고, 겉으로는 김홍주와 마약수사를 많이 보여주게 될 것이다. 김홍주는 어쩌다가 형사가 된 인물이다. 땡땡이치고 사표나 내려고 하지만 형사로서의 재능은 너무나도 뛰어나다. 그런 그가 “정말 잡고 싶은 놈이 있으면 눈물이 난다”는 봉수의 말을 직접 체험하고 그놈을 잡으면서 진짜 형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김홍주의 성장드라마라는 느낌도 있다.

-설명을 듣다보니 <와일드카드>가 떠오른다.

=걱정을 많이 했다. <강력3반>이 지금까지 나온 형사영화와 무엇이 다를까, 형사들의 고된 삶에 대해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공공의 적> <와일드카드>가 이미 보여줬는데.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정서를 안고 가야 했고 관객에겐 재탕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어떤 영화를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 세 영화를 말하면서 거기에 김홍주의 성장이 더해졌다고 말하곤 했다. 아, <춤추는 대수사선>도 더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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