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극장전> 안에서 홍상수 쳐다보기 [3]
2005-06-22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영실의 일인이역과 동수/상원의 분리가 가져온 오해

나는 숏72, 그러니까 동창회를 한 음식점 앞마당에서 최영실을 보낸 다음 동수와 부회장, 그리고 경상도 말을 하는 남자, 세명이 최영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잘 이해를 못하는 쪽이다. 경상도 남자는 최영실이 “남자친구가 있었어, 미술 하던 놈인데, 이 여자가 헤어지자 하니깐 여자 몸에 상채기를 낸 모양이라, (중략) 미국 가서 수술 받고 몇번을 그랬는 갑지, 근데도 그 몸이 안 보이는데 있잖아, 그곳이 더 심한기라”라고 말한다. 동수가 “어디 상처가 있는데?”라고 묻자 그 남자는 “그걸 내가 어찌 알겠노, 뭐 어딘가 있겠지”라고 대답한다. 여배우를 놓고 연예계 카더라 통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치사한 일이긴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영실에 대해서 (혹은 동수에 대해서) 이 숏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나로서는) 잘 알 수가 없다. 더 이상한 점. 동수는 동창 부회장에게 “나, 너가 다리 저는 거 처음 알았다”라고 말한다. 부회장이 다리를 저는 것은 졸업한 다음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경상도 남자가 동수의 말에 대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노?”라고 반문했을 것이다. 또 경상도 남자가 한참을 이야기하고 난 다음 부회장은 다시 재차 확인이라도 하듯이 “야, 너 정말 나 다리 저는 거 몰랐어?”라고 동수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이 숏72 다음 장면은 경희대병원 앞이다(그냥 지나쳐도 상관없지만 병원이 나오는 순간 내가 이상하게 느낀 점. 이형수가 만든 영화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고 상원은 아저씨, 혹은 외삼촌과 함께 이관희 내과에 간다. 홍상수는 둘이 내과에 들어가는 장면과 나오는 장면을 모두 찍었다. 이 장면이 이상한 것은 내 생각에 없어도 상관없는 숏이기 때문이다. 이관희 내과에 갈 때 상원과 영실은 종로에서 남산에 이르는 만남에서 헤어짐을 끝낸다. 그런데 남산을 떠나 경희대병원을 간 다음에 동수와 최영실은 비로소 상원과 영실이 종로에서 남산에 이르는 만남에서 헤어짐까지의 과정을 느슨하게 반복한다. 다른 장소에서 되풀이되는 비슷한 사건). 그 병원 문 앞에서 걸어나오는 최영실을 동수가 기다리고 있다. 최영실은 새벽에 이형수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오늘 새벽이 정말루, 위독하데요, 너무 불쌍하다. 그 사람.”

하지만 그 다음 장면, 숏74는 횟집이다. 동수와 영실은 회를 시켜놓고 소주를 마시고 있다. 물론 이 장면은 숏9, 이형수의 영화에서 상원과 영실이 호프를 마시는 장면의 대구이다. 영실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단편이며(즉 동수가 본 영화가 단편이며), 이형수 감독도 배우로 출연했다고 덧붙인다(우리는 숏50, 시네코아 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기억한다. 거기 상원으로 출연한 배우 이기우의 얼굴이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배우와 감독의 일인이역). 그 말을 들어도 그것이 놀랍게 들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숏50 이후 내내 이형수와 상원, 영실, 그리고 최영실의 관계를 이형수와 상원, 영실과 최영실을 하나의 짝패로 생각한다. 그런데 동수는 그 영화가 자기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순간 이제까지의 전제가 기묘해진다. 이 대목은 영화 전체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자리 이동이다. 그러니까 동수가 보았다고 생각한 상원과 영실의 이야기, 이형수의 영화 이야기에 갑자기 이형수를 밀어내고 상원의 자리에 동수를 넣어서 다시 보아야 한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 누구라도 이 이야기가 동수의 이야기를 이형수가 찍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볼 수는 없다. 갑자기 숏31에서 상원이 말보르 레드를 사려던 장면과 숏55 커피숍에서 동수가 말보르 레드를 피우는 장면이 겹친다. 또는 남산 타워를 올라오면서 동수가 도원경의 <다시 사랑한다면>을 부른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 그런데 최영실이 “어떤 게 자기 얘긴데요, 다?”라고 묻자 “다요, 그 죽으려고 여관간 거, 그리고 약 나눌 때 한알씩 나눈 거 다 제 얘기예요, 그 죽기 전에 눈내린 거, 말보로 필려고 했는데 못 핀 거, 그거 다”라고 대답한다. 전부 다? 동수는 이형수가 만든 영화의 전부 다가 상원과 영실이 죽기 위해 대흥장에 간 여관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수가 한 말에는 상원의 어머니와 형님과 아저씨이지만 아버지인 남자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동수의 말을 들은 다음 최영실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반문한다. “그런데 그게 지금 그렇게 중요해요?” 그 대화를 그냥 계속해서 찍어도 되는데 홍상수는 장면을 나눈 다음 테이블 위에 소주를 3병 더 올려놓았다.

여기에는 시간의 생략이 있다. 둘은 술에 취한 다음이다. 동수가 갑자기 소주잔을 들어 입으로 그 끝을 씹어서 깨트린다. 그걸 보고 최영실은 놀라기는커녕 한심하다는 듯이 “아이구 참”이라고 바라본다. 그때 동수는 “미안합니다,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최영실은 “정말로요? 사랑하긴 뭘 사랑합니까, 당신이”라고 대답한다. 숏9, 종로 호프집에서 영실이 상원에게 “나 미워, 상원인 나 미워? 빨리 진실을 말해봐”라고 묻자 상원은 말하는 대신 영실의 맥주잔을 뺏어서 자기가 마신다. 그러자 영실은 “내놔, 그건 내 잔이잖아, 자긴 자기 잔 마셔”라고 말한다. 술잔을 둘러싼 두개의 행위. 이형수는 영실과 상원의 호프집 술자리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영실이 상원에게 듣고 싶어한 진실은 사랑한다는 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상원이 “이러다 우리 사고 내겠다”라고 하자 영실은 “내가 너 첩 해줄까?”라고 제안한다. 동수가 “사랑해요”라고 말하자 최영실은 “사랑하긴 뭘 합니까, 당신이”라고 대답한다. 3년 동안 생각한 끝에 최영실은 상원이 영실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상원은 영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한 가지 더. 숏43, 이관희 내과에서 상원은 간호사를 보자 생각한다. “간호사한테 잘 보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인제 몸도 낫고 새로 시작하면 언젠가 이렇게 생긴 여자와 사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상원은 영실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런데 동수는 상원이고, 상원과 영실에 대한 이야기를 이형수가 찍었고, 그 영화에 최영실이 출연했다. 그러므로 동수가 최영실에게 영실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최영실은 영실의 모습을 흉내낸다. 동수가 상원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은 반복이지만, 최영실이 영실을 따라하는 것은 흉내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우리는 엄지원이 영실과 최영실을 연기하는 반면(일인이역), 상원은 이기우가 연기하고 동수는 김상경이 연기하기 때문에(이인일역) 착시를 일으킨다. 둘은 취해서 횟집을 나서는데 최영실은 걸어가다가 배가 아프다고 주저앉는다. 물론 그 제스처는 숏12, 종로 호프집을 나온 다음 영실이 한 행동이다. 그때 이 상황은 동수에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의 반복이지만 최영실에게는 이형수 영화 속의 동수 이야기에 따른 영실의 행동의 흉내이다. 그런데 반복하는 쪽이 동수가 아니라 최영실인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형수 영화에서 이 제스처는 섹스를 하러 여관에 가자는 신호이다. 이제 동수와 최영실의 만남에서 상원과 영실이 한 것 중 아직 하지 않은 것은 섹스만 남았다. 그런데 이형수 영화에 따르면 섹스에 실패하면 동수는 자살할지 모른다.

동수처럼 우리도 영화를 잘못 본걸까

숏77의 여관장면은 동수와 최영실의 섹스로 시작한다. 이 장면은 상원과 영실이 모더 여관에 간 숏13, 혹은 16과 대구를 이룬다. 그 자세는 똑같은데 상원이 영실의 젖가슴을 움켜쥔 것과 반대로 최영실이 동수의 젖가슴을 깨문다. 영실이 “아파, 아파”한 것과 반대로 동수가 “아, 아, 아파요”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최영실이 “동수씨, 여배우라고 해서 특별한 거 아니에요, 아셨죠? 여배우도 똑같은 여자예요”라는 말이다. 이 말은 대답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동수는 언제 한 것일까? (내 생각에) 이 질문은 숏71, 동창회에서 최영실이 떠나려고 할 때 동수가 던진 질문, “여배우 하는 거 힘들죠, 제가 그럼 이상형을 말해볼까요?”에 대한 대답이다. 동수는 여배우로서 이상형을 찾지만 최영실은 여배우도 똑같은 여자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영실이 섹스를 하면서 그 말을 한 다음에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이 처음에는 “죽고 싶어, 죽게 해줘요,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로 들린다. 그건 나만 잘 못 들은 것이 아니라 동수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동수도 “예?”라고 반문한다.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동수는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최영실은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를 몇번이고 되풀이한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은 “죽고 싶어”가 아니라 “좋고 싶어, 정말로, 좋게 해줘요”이다. 홍상수는 그 말을 동수(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게 했다. 죽고 싶다는 말이 되지만 좋고 싶다는 문법적으로 틀린 말이다. 그런데 좋고 싶다고 말한다. 만일 이 장면이 숏13, 혹은 16의 대구라면 상원이 영실에게 “죽고 싶어, 죽고 싶어, 너무너무 죽고 싶어”라고 한 말은 “좋고 싶어, 좋고 싶어, 너무너무 좋고 싶어”로 들어야 한다. 그 말은 숏10, 종로 노래방에서 영실이 도원경의 <다시 사랑한다면>을 빌려 한 고백에 대한 대답이다. 그런데 왜 동수가 사랑한다고 하자 최영실은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라고 한 것일까? 숏9, 종로 호프집에서 영실은 상원에게 제안한다. “내가 너 첩 해줄까?” 첩에게 그 남편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젠 알아요, 너무 깊은 사랑은 외려 슬픈 마지막을 가져온다는 것을.”(도원경의 <다시 사랑한다면>의 후렴구) 영실과 상원의 이야기를 그린 이형수의 영화로부터 3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이어지는 동수와 최영실의 반복과 흉내. 그런데 숏9에서 영실은 노래한다. “많은 시간이 흘러 서로 잊고 지내도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때도 이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죠.”

그런 다음 영실은 옷을 입고 여관에서 먼저 나가려고 한다. 그러자 동수가 붙든다. 그러면서 “그냥 우리 진짜 죽어버릴래요? 죽을 마음만 있으면 반년쯤만 살다 죽을래요? 그럼 진짜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은데”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수는 영실과 상원과의 관계를 오해한 것이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이 사랑은 그걸로 된 것이다. (도원경의 노래가사) 그래서 동수가 “저 그럼 미안한데요, 그럼 뭐 놓고 가시죠, 제가 갖구서 있을께요”라고 말할 때 최영실은 “뭘 놓고가요, 동수씬 영화를 정말 잘못 보신 거 같아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최영실은 먼저 가고 동수는 새벽이 된 다음 여관을 나선다. 그때 저 멀리 한 여자가 걸어오다가 신발 끈을 고쳐 맨다(이 장면은 영화 사상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장면 중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다). 이 제스처는 숏39, 대흥장을 나선 다음 혼자 길을 떠나는 영실이 신발 끈을 매는 장면의 반복이다. 물론 영실과 이 여자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홍상수는 그 순간 같은 음악을 들려준다. 그때 우리는 이 장면, 숏79에서 숏39를 떠올려야 한다. 하지만 영실이 떠나간 이유를 상원은 알았을까? 혹은 이형수의 영화가 자기 이야기라고 말한 동수는 왜 최영실이 떠나갔는지 알았을까?

죽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하기를 포기해야한다

동수는 걸어서 경희대병원 입구까지 온다. 거기서 나오는 최영실을 만난다. 최영실 말에 의하면 “이 감독님, 위기는 넘겼”다. 그러자 동수는 “피곤하시겠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실래요?”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최영실은 “저 너무 피곤해요, 잠 한잠도 못 잤어요, 자긴 이제 재미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이제 집에 가세요, 집에 가서 쉬세요”라고 말한다. 첩과 함께 재미를 보았으니 이제 집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영실은 택시를 타고 떠나간다. 영실은 택시를 타고 상원을 쫓아오고, 최영실은 택시를 타고 동수를 떠나간다. 아마도 그 둘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최영실과 동수를 묶고 있는 매듭인 이형수가 죽고 나면 더이상 그 둘 사이에는 아무 고정점이 없을 것이다. 이제 이 영화에서 남은 일은 그 고정점인 이형수를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장면, 숏81에서 병실에 누워 죽어가는 이형수는 우리가 숏40에서 46까지 내내 이상하게 생각한 상원의 아저씨이거나 아버지, 혹은 상원의 어머니를 누나라고 부르는 남자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이 역을 김명수가 일인이역 한다). 이형수는 죽어가면서 동수를 붙들고 “너무 아파, 너무 아파, 나 죽기 싫어”라고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한다. 그러면 동수는 “왜 죽어, 형, 그러지 마, 형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형 안 죽을 거야”를 몇번이고 반복한다.

우선 일인이역을 말 그대로 보는 방법. 그래서 이형수는 자기가 만든 영화에 (최영실이 말한) 그 역으로 출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형수는 간암으로 죽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형수가 상원의 아저씨이거나 아버지일 때, 상원의 어머니를 누나라고 불렀던 인물일 때, 그 인물이 정말 죽어가면서 살고 싶다고 말할 때, 이제까지 이형수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말한 동수가 형, 죽지 말라고 울면서 말할 때, 그 말이 지니는 위로에 지나지 않는 무기력함 속에서 우리는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서 이형수 영화 속 그 이상한 가족 안으로 다시 되돌아온 것 같은 의심스러운 데자뷰를 느낀다.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상원은 죽으려고 자살의 몸짓을 시도하였지만, 상원이 나온 영화를 만든 이형수 감독은 죽고 싶지 않다고 몸부림을 친다. (최영실에게 고백한 말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했던 동수 앞에서 두명의 이형수, 동수의 자살의 이야기를 찍었던 감독 이형수와 동수의 아저씨이자 아버지, 혹은 동수의 어머니를 누님이라고 부른 이 사내가 죽고 싶지 않다고 호소한다. 거기에는 홍상수의 영화와 이형수의 영화가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이 숏은 후배 동수가 이형수 감독의 병실에 문병 와서 우는 장면이다. 이것은 물론 홍상수 영화의 숏이다. 그런데 영화 속의 영화에서 상원의 아저씨이자 아버지, 혹은 상원의 어머니를 누님이라고 부른 남자의 자리에서 (김명수가) 이렇게 병원에 누운 이형수의 자리에 있을 때, 그건 이 자리에 올 수 없는 상원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이형수의 영화가 홍상수의 숏에 얼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자체로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거기 김명수가 누워 있을 때 이미 끝난 다음 영화 속의 영화 바깥에 있다고 믿었던 우리는 기묘하게도 홍상수의 영화로부터 이형수의 영화 안의 영화에 동수가 들어온 것 같은 역설에 빠지고 만다.

이 어리둥절함 다음 장면은 이 영화의 마지막 숏, 병원 앞을 혼자 걸어가는 동수의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시네코아에서 걸어나오는 구도의 네 번째 반복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이가 있다. 이 숏에는 최영실이 그 자리에 없다. 동수는 혼자 걸어가야 한다. 나는 여기서 동수가 혼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수의 첫 번째 내레이션(이자 <극장전>의 21번째 내레이션). “인제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로 생각이 중요한 것 같애, 끝까지 생각을 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담배도 끊을 수 있어, 생각을 더 해야 해,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이 말의 가장 진부한 해석은 간암으로 죽어가는 이형수를 본 다음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동수의 생각으로 듣는 것이다. 그러나 간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만난 다음 “인제 운동을 해야겠다”가 아니라 “인제 생각을 해야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생각을 해서 담배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왜 담배를 끊는 것이 중요해진 것일까? 상원은 영실을 만난 다음 호프집에 가면서 “괜히 담배가 피우고 싶어서 담배 한갑을 샀다”(숏7). 그리고 영실과 죽으러 갈 때, 대흥장에 들어가기 전 골목가게에서 말보르 레드를 사려다가 사지 못한다(숏30). 그 말보르 레드를 영화를 보고 나온 다음 동수가 피운다(숏54). 그런데 그 담배를 피우려다가 동수는 동창에게 핀잔을 듣고 차에서 내린다. 그 때문에 최영실을 거리에서 만나보고 알아챈다(숏61). 최영실에게 말보르 레드 이야기는 자기 이야기라고 말한다(숏74).

담배는 상원과 영실, 그리고 상원에서 동수로, 동수와 최영실 사이, 혹은 이형수의 영화에서 홍상수의 영화로 넘어오면서 그 인연의 매듭을 만든다. 그때 담배를 끊는 것은 이형수와 홍상수의 영화 사이를 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끊으면 동수와 최영실은 사실 아무 관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담배를 끊는다는 말은 동수가 영실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이 결국은 같은 말일지라도 최영실과의 관계를 끊는다고 읽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동수는 상원처럼 죽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동수가 병실에서 본 것이 죽어가는 이형수가 아니라 그 이형수가 만든 영화 안의 죽으려고 했던 상원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같은 말이지만 “죽지 않게 오래 살 수 있도록”이라는 말이 “오래 살 수 있기 위해서 (누군가를) 좋아하면 안 된다”로 들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죽고 싶다”와 “좋고 싶다”) 그러므로 동수가 한 말은 상원이 택시 안에서의 독백의 반복이다. “갑자기 정말 새 삶이 주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건 공짜라고 생각했다.”(숏45) 하지만 상원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혹은 동수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영실은 상원을 떠나가고, 최영실은 동수를 떠나간다. 그녀들은 자발적으로 떠나간다. 그것만이 상원을 살릴 수 있고, 동수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실은 눈오는 날 아침, 상원을 깨우지 않고 혼자서 대흥장 여관을 나와 신발 끈을 고쳐 맨 다음 떠난다. 만일 상원을 깨운다면 그를 다시 한번 죽음에로 이끄는 것이다.

최영실은 동수를 떠나간다. 붙드는 동수에게 “동수씬 영화를 정말 잘못 본 것 같애요”라고 말한 다음 떠난다. 그녀들의 포기를 상원과 동수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녀들이 퇴각한 다음 그 남자들 앞에 부모가 나타나는 것은 무섭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원은 집에 가서 어머니를 만난다. 혹은 동수는 집에 가야 한다. 아마도 집에는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그들이 죽음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아버지는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형수는 아저씨이거나 (대체된) 아버지, 혹은 상원의 어머니를 누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동수가 상원이라면, 동수의 아저씨이거나 아버지는 죽어가는 중이다. 홍상수는 여전히 자기 영화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아버지를 피하는 중이다. 동수는 이제 최영실 없이 혼자서 걸어간다.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혹은 나를 살리기 위해서,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도록 생각하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홍상수의 변덕을 사랑한다

(내가 보기에) 홍상수의 <극장전>은 무시무시한 영화이다. 아무리 우스꽝스럽다 할지라도 이 영화는 죽음을 말하는 중이다. 그런 다음 죽느냐, 존재할 것이냐의 내기를 한다. 홍상수는 죽음 대신 존재를 선택한다.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관계에 대한 우스워 보이지만 무언가 음산한 포기가 있다. 그것이 웃음이라면 그 웃음은 매우 차갑고 건조한 냉소가 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냉소. 홍상수는 감독의 의도를 이렇게 마지막에 쓰고 있다. “<극장전> 속의 인물들은 우리가 통념적으로 받아들인 ‘이상적인 인간의 행위’에 못 미치는 행동들을 합니다. 관객은 ‘이상적인 인간의 행위’라는 기준을 그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서 오히려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습관화된 이상이 새롭게 인식되는 과정 속에서 관객은 주체적으로 그 이상의 실체와 효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면에서 이 영화는 희극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이다. 이 영화는 희극이다. 잔인하고 끔찍한 희극.

추신; <극장전>을 소개한 (이 영화를 만든 전원사의) 자료에 의하면 <극장 이야기(傳)>이기도 하지만, <극장 앞(前)>으로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칸영화제에 상영될 때 불어 제목은 <Conte de cinema>였고, 영어 제목은 그 제목을 그대로 옮긴 <Tale of cinema>였다. 그런데 홍상수에게 이 영화의 일본어 제목이 어떻게 정해졌냐고 물어보자 <劇場前>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느 쪽에 홍상수가 정말 방점을 찍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그 자신도 망설이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 변덕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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