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삼순이’ 캐릭터 전성시대 [1] - 드라마 속 캐릭터 비교
2005-06-28
글 : 김현정 (객원기자)
한국형 브리짓 존스는 어떻게 태어났나

영계들은 가라! 삼순이가 간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토실한 여인 한명이 2주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저명인사가 되었다. 극히 일부는 농담인 줄로 알았다는 그녀의 이름은 김삼순, 나이는 서른, 홈페이지에 의하면 엽기발랄한 노처녀 뚱녀다. 초반부터 호조를 기록한 시청률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내 이름은 김삼순>은 몇년 전이었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캐릭터와 설정으로 눈길을 끄는 드라마다. 누가 그녀를 세상에 내놓았을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브리짓 존스는 있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결혼하고 싶은 여자> <싱글즈>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혼자 벌어 먹고살고, 나이가 많고, 가끔은 발을 헛디뎌 울기도 하는 노처녀들. 누가 ‘노처…’까지만 발음해도 파르르 떨던 삼십대 초반 여인들을 “그래, 우리 노처녀잖아, 그래도!”라고 떳떳하게 나설 수 있도록 해준 좋은 친구들이다. 소수의 은밀한 공감을 얻다가 전국으로 지지세를 확대하고 있는 그들을 지면에 초대하여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짚어보았다.




한번도 내가 노처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서른이 되었지만 “요즘 세상에 무슨!”이라고 주장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까지 데드라인을 미루기만 했다. 그러나 몇달 전 모처럼 집에 찾아온 엄마가 청바지와 아주 조금 짧은 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나를 붙잡았다. “너 그러고 다니면 남들이 욕한다. 이십대도 아니고 노처녀가.” 쿠궁. 조용히 문닫고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다. 섹스가 목적어인 문장을 거침없이 입에 올리고, 어린 여자 찾는 남자를 보면 토할 것 같고, 데이트 상품권을 주겠다는 결혼정보회사의 전화에 신경질을 내고, 주말이면 문득 세상이 적막해지는… 나는 노처녀였던 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

노처녀라는 단어는 100만년 전에 사라졌다고 믿어왔다. 곧이곧대로 해석하자면 “결혼할 나이가 훨씬 지난 처녀. 늙은 처녀. 올드 미스(민중판 밀레니엄 새로 나온 국어사전)” 정도겠지만 그 단어와 함께 떠오르곤 했던 이미지는 빙하 속에 처박힌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도 있나보다. 방영 첫주에 시청률 20%를 넘긴 <내 이름은 김삼순>은 홈페이지에 “노처녀 뚱녀”라는 시대착오적인 설명을 버젓이 올려놓았고, 제목부터 고색창연한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시청률 15%를 넘기면서 올드 미스들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우리는 정말 노처녀가 존재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곰곰이 살펴보면 김삼순(김선아)과 최미자(예지원)는 그때 그 시절 노처녀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싱글즈 인 서울>을 기획한 김제현 실장은 “나도 <내 이름은…>과 <올드미스…>를 자주 본다. 사랑에만 매달렸다면 재미없었을 테지만, 그들은 일도 열심히 하면서 사랑을 좇는다”고 지적했다.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은 노처녀인 것이다. <올드미스…>의 스물아홉 지 PD(지현우)를 사랑하는 팬들은 굳이 나이를 숨기지 않으면서 “누나들이 만드는 고감도 감성주간지”인 패러디 웹진 <흑심>을 발간하고 있다.

노처녀=‘하자’있어 결혼 못한 여자?

<민중판 밀레니엄 새로나온 국어사전>은 노처녀의 의미 뒤에 속담을 하나 덧붙이고 있다. “노처녀더러 시집가라 한다=>물어보나마나 좋아할 것을 공연히 묻는다.” 이와 비슷하게 얼마 전까지 영화와 드라마는 대부분 노처녀는 결혼을 하지 못한 여자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고, 좌절된 소망을 이루기까지, 다시 말해 하자를 보수하거나 가시를 다듬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밟아가곤 했다. 2002년 방영된 드라마 <내사랑 누굴까>의 오지연(이승연)은 그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만한 노처녀였다. 결혼이 목표인 지연은 성격이 나쁘고 눈이 높아서 “고양이가 시체를 반쯤 먹어버린 상태로 발견될” 때까지 혼자 살 거라고 주변에서 뒷말을 듣는 여자였다. 그녀는 머리가 좋아서 대학원 공부도 곧잘 해냈지만, 그 공부는 결혼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어서, 결혼하자마자 프라이팬 닦는 일에 광적으로 몰두한다.

누구라도 그런 노처녀가 되고 싶어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 반대이기도 하다. 지연은 레스토랑에서 더러운 컵 하나를 들고선 마음 아픈 일을 겪은 웨이터에게 언성을 높이는 여자이기 때문에 결혼하지 못했다. 원인과 결과는 맞물린다. 성격이 나빠 노처녀인가, 노처녀이기 때문에 성격이 나쁜가. 어느 쪽이 맞다고 하더라도 30대 초반의 독신 여성은 <내사랑 누굴까>의 전형적인 노처녀 이미지에 공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하나가 더 있다. 지연은 신기하게도 결혼적령기를 넘겼지만 천사 그 자체인 남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한다. 그는 왜 노총각이 되었을까? <내사랑 누굴까>는 결혼적령기를 넘긴 사람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그 자체로 말이 안 되는 전제를, 오직 여자에게만 덮어씌운다.

삼순과 미자는 ‘그때 그 노처녀’들이 아니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

고작 3년이 지나 등장한 삼순과 미자는 내 아들이 최고라고 감싸안는 아줌마들이나 믿을 법한 그 전제와는 인연을 맺지 않는다. 삼순은 현우를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었을 뿐이고, 맞선도 치유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볼이 통통한 여자애, 꿈 많고 열정적이고 활기차고 항상 달콤한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 여자애”를 사랑했다는 현우의 말을 들으면 나도 그 여자애를 사랑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미자도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한 여자가 아니다. 어쩌다보니 결혼적령기에 남자가 없었던 듯하지만, 눈치가 없을 때도 있고 민망한 삽질을 할 때도 있지만, 그녀는 그저 평범하다. 삼순과 미자는 우러러볼 만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발붙이고 있어서 공감과 연민을 부르는 캐릭터들이다.

90년대 초반 싱글 여성을 찬미하는 영화들이 드물게 나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대 안의 블루>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등은 파트너로서의 남성을 주목했고, 여성을 광고나 디스플레이처럼 화려한 전문직의 세계로 인도했다. 지금 올드 미스 소리를 듣는 여성이라면 그 무렵 광고홍보학과의 경쟁률이 치솟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트렌드. 공들여 화장한 이영애가 트렌치코트 자락 휘날리는 형사로 등장한 화장품 CF가 환기시키듯 그 이미지들은 롤모델이라기보다 허상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판타지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젠가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판타지는 무언가를 향해 달리도록 사람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싱글즈>는 그 사이에 위치한 영화였다.

드라마 속 캐릭터 비교

김삼순_<내 이름은 김삼순>(30·파티셰)

경제력: 중퇴하기는 했지만 코르동 블루에 다녔다. 프랑스인 파티셰를 고용했던 고집 센 사장이 케이크 부스러기만 맛보고도 채용할 정도로 능력있고,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할 만큼 생활력도 강하다. 집안문제만 아니라면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듯하다.

외모: 뚱뚱하고 예쁘지 않다는 평가. 그러나 어이없는 실연 때문에 소주와 닭발을 끼고 살다가 살이 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원작은 삼순이 적당히 글래머스틱했다고 표현한다). 진헌(현빈)은 귀엽다고도 한다.

성격: 눈치가 없는 편이고 행동이 과격하며 입이 험하다. 이름이 삼순이라 하여 아무나 “삼순이스럽다”는 평가를 받진 않을 것이다. 진헌이 평한 대로 주제파악을 잘한다는 것이 장점. 그러나 착한 딸이고 헌신적인 애인이다. 남몰래 로맨틱하다.

남성 편력과 전망: 영원히 함께하리라고 믿었던 애인에게 차였지만 조만간 호텔 후계자와 건축회사 둘째아들 사이에서 삼각관계의 중심이 될 듯하다.

명대사: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이 아플때 유용한 치료법을 하나씩 갖고 있다. …나의 치유법은 지금처럼 아침이 다가오는 시간에 케이크와 과자를 굽는 것.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도, 불같던 연애가 끝났을 때도, 실직을 당했을 때도, 나는 새벽같이 작업실로 나와 케이크를 굽고 그 굽는 냄새로 위안을 받았다. 세상에 이렇게 달콤한 치유법이 또 있을까?” “사랑해요 ♡(손으로 만든 하트)” “(속으로) 좋아, 결심했어! 일단 라떼부터 끊는 거야! (겉으로) 라떼 하나 주세요, 시럽 듬뿍 넣구요”


최미자_<올드미스 다이어리>(32·성우)

경제력: 낙하산이라고 구박받지만 엄연히 시험 보고 들어왔다. 내게 남은 오직 하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꿋꿋이 사표 안 내고 버티는 근성이 있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남자라면 몰라도 마다할 이유 없다.

외모: 나이가 많아서 그렇지 얼굴과 몸매가 두루 빼어나다. 그녀의 할머니 영옥은 미자와 지영, 윤아를 보며 부족함 없는 인물인데도 싱글이라는 점을 한탄한다.

성격: 조신하게 품위지키려고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우유부단하다. 모처럼 결단내리면 헛다리 짚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착하고 눈에 띄는 구김살이 없고 낙담했다가도 오뚝이처럼 딛고 일어난다. 김정민이 혼자 말한 것처럼 “최미자 참 예쁘다”.

남성 편력과 전망: 예전엔 연애를 했었고 공백기가 지난 다음 김정민과 지현우가 한꺼번에 다가왔다. 현재는 현우에게 정착한 상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명대사: “나이를 먹으면서 사랑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혹시 이 남자가 마지막 사랑이면 어쩌나”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혼자서 1인 2역하다가 삼촌이 들여다보니까) 연기연습하고 있어요” “(현우에게) 자기 (현우가)…응? (현우에게)자, 자기, 오늘 뭐할 거야?”


이신영_<결혼하고 싶은 여자>(30·방송사 기자)

경제력: 한직으로 돈다고 해도 고소득이라고 소문난 방송사 기자. 훗날 마감뉴스 앵커가 되는데다가 친구들과 책을 내서 인세 수입까지 예상된다.

외모: 훌륭하다. 더이상 할말이 없다. 서른다섯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이크림을 듬뿍 바르지만 안 그래도 될 듯하다.

성격: 특종을 위해서는 몸을 던지고(비록 특종을 잡지는 못한다 해도) 친구를 배려할 줄 안다. 승리(변정수)의 결혼식장에서 몸싸움도 불사하며 승리의 옛애인을 막아낸 적이 있다. 가끔 미자처럼 헛다리를 짚는다.

남성 편력과 전망: 오래오래 사귀었던 애인이 젊은 여자에게 가버린 이후 낙담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초등학교 동창 준호(유준상)와 그가 일하는 병원 원장 아들 지훈(이현우) 사이에 낀 행복한 처지가 된다. 지훈과 결혼하진 않지만 뭔가 여운이 남은 상태로 드라마 종영.

명대사: “기다리는 건 왜 오지 않을까.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강도가 덮쳐 주길 기다리고... 기다리는 건 오지 않습니다. 그럼 언제 오나요? 기다리지 않기를 다짐하는 현장에서 그래도 혹시 기다려보는 이신영입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살을 에고 뼛속을 후벼파는 한파가 밀려옵니다. 사랑은 떠났고 봄은 오지 않습니다.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는 마음, 이 쓸쓸함이 얼어서 영원히 냉동보관 되면 어찌할까요. 하늘하늘 날리는 꽃잎이 엄동설한의 눈발로 보이는 현장에서 심장에 동상걸린 이신영입니다”

사진제공 i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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