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스트만 단편영화 만들기 [2]
2000-03-07
글 : 민동현 (영화감독)
제2회 이스트만 지원작 <지우개 따먹기> 당선에서 완성까지

<지우개 따먹기>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교실 안 아이들의 싸움을 통해 권력의 해부도를 그린다. 자그맣고 겁많은 영훈은 강산과의 지우개 따먹기에서 매번 이기지만 뚱뚱하고 힘쎈 강산이 윽박지르는 바람에 자기 지우개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럼에도 힘이 부치는 영훈은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한다. 영화는 영훈의 이야기에다 경찰에 쫓기는 운동권 대학생 누나의 이야기로 정치적 함의를 부풀린다. 마르크시즘 서적을 쥐고 집을 빠져나가던 누나는 영훈에게 지우개 하나를 건네며 꼭 이기라고 웃어준다. 초등학생 만화가, 디자인 수업, 사운드그룹 활동을 하다 서울예대 영화과에 들어간 민동현은 스토리보드 작성과 리허설, 비디오 촬영 등 사전준비 작업을 철저히 마치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영화를 찍으면서 적잖은 장애물을 헤쳐와야 했다. 전쟁과도 같았던 그의 제작 뒷얘기는 영화지망생들에게 영화만들기의 쓴맛과 단맛을 미리 맛보게 해준다.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

<지우개 따먹기> 제작후기라. 가만히 PC 앞에 앉아 몇자 적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최고로 기뻤고, 또한 최고로 절망하고 아파하고 매일 매일이 전투와 같았던 날들. 뭐랄까, 희로애락의 극단을 종횡무진하며 지내왔다고 해야할까. 처음엔 그저 경험상의 문제였다. 평생 영화에 몸바칠 것이라면 적어도 3년 안에는 필히 공모 같은 것에 꼭 당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거기다 존경하는 김용태 교수님도 평소에 지론처럼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영진공과 코닥을 노려라! 그래 노리자! 그러나 정말 누가 나 같은 철부지 영화과 학생이 될 줄 알았으랴?

99.4월-당선! 이스트만 코닥

당선된 뒤 문제는 더욱더 컸다. 처음엔 그저 1차 통과한 것만으로 기뻤다. 처음 시도로 면접까지 경험하게 된 것뿐만 아니라 16mm 2000자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내게 있어서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틀어져버렸고, 난 졸지에 35mm 영화를 찍어야 하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다. 영화경력이라고 해봤자 지난해에 찍은 16mm 5분짜리 단편 <sun.day>와 겨울방학에 찍은 8mm 비디오 <따>. 거기다 <따>는 동네 아이들 영화 찍는 거 도와준 수준이었지 실질적으론 <sun.day> 하나뿐인데…. 이를 어쩐다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이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동기 누나 말로는 2천만원은 족히 써야 할 거라고 충고해줬고, 130만원 예산의 영화도 벌벌 떨며 제작한 나로선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스폰서를 찾아서 해결해 보려 했지만 남의 돈으로 영화 찍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에 결국엔 천원 한장 얻지 못하고 부모님께 부탁드리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에 아버지도 연극연출을 하면서 할아버지께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혔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온 바, 나중에라도 부모님께 재정적으로 부담을 드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쉽게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지만 부모님은 벌써 돈을 준비해 두고 계셨다. 학교 졸업하고 어학연수라도 보내려고 준비해 두었다는 1200만원을 받아들고는 본격적으로 제작준비에 들어갔다. 이 돈을 결코 헛되이 쓰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99.7월 초-콘티 완성

스탭을 구성하고, 캐스팅을 하고, 시나리오 마무리 작업을 하고, 콘티를 그리고, 리허설을 하고, 예산을 짜고, 남들 다 하듯이 제작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공모 전부터 도움을 주셨던 김 교수님이 제작자문으로 계획짜는 것을 도와주셨고, <sun.day> 때부터 함께한 정현이형이 프로듀서를 맡아줬다. 촬영은 98후배로 만난 김천석 촬영감독이, 조명은 김계중 감독님 팀의 98후배인 이정민씨. 뭐 이런 식으로 학교 사람들 중 현장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우선 구성하고 대다수는 학교 후배들과 동기들이 도와줬다. 처음에는 우리 아파트의 지하실에서 회의도 하고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공간에서 계속 준비를 하기란 무리였다. 결국 건축가인 외삼촌에게 부탁을 드렸고, 논현동에 위치한 다세대주택의 조그마한 집을 3개월간 무료로 임대했다. 낮에는 스탭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조명 팀들은 조명 소품들도 만들고, 여러 테스트들도 하면서 합숙 훈련하는 식으로 생활을 했다.

문일씨의 도움으로 찾아간 백운초등학교에서는 촬영 전에 교실 공간을 느끼기 위해서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일주일 정도를 교생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들을 관찰했다. 교장선생님을 비롯 많은 선생님들이 도와주셔서 정말 값진 경험으로 몇 가지 아이템도 얻고 배우로 쓸 아이들도 골랐다. 촬영파트, 조명파트, 제작파트, 연출파트로 나누어 각각 스탭구성 및 제작준비에 들어간 사이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매일 새벽까지 네임펜 한 다스를 써가면서 A4로 60페이지가량의 그림을 그렸다. 연출부들이 뛰어다니면서 찍어온 헌팅 장소들을 보고 마음에 드는 곳은 직접 찾아가서 상황을 보고, 아역 배우들 오디션도 보고, 에이전시들을 찾아다니면서 어머니, 아버지 역할도 찾았다. 그러나 항상 걸리는 것은 돈이었다. 어느 정도 헌팅이 완료돼갈 쯤 80년대 분위기의 집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80년대 분위기가 나는 집. 어디서 그 집을 찾을 수 있을까? 결국 아버지, 어머니 동창생들을 중심으로 전화를 걸어 옛날 분위기의 집에 사시는 분들 가운데 화곡동에 사시는 어머니 친구분 집에서 찍기로 했다. 정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99.7.11-리허설 비디오 촬영

촬영이 다가오면서 리허설에 들어갔다. 학교장면은 주말을 이용해서 백운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비디오 카메라로 영화를 찍듯이 찍으면서 그대로 리허설을 했다. 그 비디오를 토대로 콘티를 수정하고 다시 리허설하고 그런 식으로 진행해 나갔고, 집 장면은 박은숙씨와 하늘이에게 상황을 주고 어떻게 연기할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면서 리허설을 했다. 지금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가 여자 캐릭터에 대한 절대적인 이해 부족으로 은숙씨의 연기를 100% 끌어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첫 촬영이 장마로 취소되는 바람에 두 번째 촬영이었던 집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 전날 집에 들어가서는 아트 팀이 그려준 디자인에 따라 연출부가 공간을 만들었다. 조명과 미술을 얼추 갖추니 밤 10시쯤 됐다. 남은 시간에 먼저 저녁 신 하나를 찍기로 하고 준비하는 동안 스탭들을 모두 모아놓고 기도를 한 뒤 첫 촬영을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다시 재개된 촬영은 조명기와 모니터 이상 그리고 유리창이 깨지면서 잠시 주춤되었다. 초반의 그러한 일 뒤에 긴장감과 함께 촬영은 계속되었고 모두들 맡은 바 일을 열심히 일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했다. 당일 스케줄에 턱도 없이 모자란 결과로 예정에 없던 밤샘 촬영을 내리 3일을 해야 했다.

모두 지쳤고, 영훈 역할의 하늘이도 피곤한 기색에 NG를 계속 냈다. 정말 악몽 같은 시기였다. 비 오는 와중에도 시간이 없어서 강행군을 하느라 조명부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러 외부적 사항들로 인한 문제들로 제작이 지체되고 연기는 계속 마음에 들지 않고, 제작부는 계속 나에게 위장약을 가져다주고 나는 그것을 마치 마약중독자처럼 먹어댔다. 정말 하루가 1년 같고 그 3일간의 시간이 10년간 어디 갇혀 있다 풀려나온 기분이었다. 그 집사람들도 고생은 마찬가지여서 더운 날씨에 우리 때문에 다른 집의 지하방에서 지내야 했다. 정말 내가 나쁜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99.7.30-1차 촬영 끝, 가슴이 철렁

겨우 촬영을 마치고 필름을 확인했다.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너무 강행군을 한 탓에 영훈의 얼굴이 매컷 달랐고, 아버지가 나오는 부분은 완전히 도려내야 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침묵에 잠겼다. 그리곤 집 근처 이발소에서 머리를 밀었다. 다시 새 각오를 하고 작업에 임하기 위해서. 학교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무엇보다 시간관리에 만전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힘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다. 갑자기 조명기 이상이 생겨서 좀 쉬었다가 다시 촬영에 들어갈라 하면 운동장의 발전차가 더운 날씨로 인해 불까지 나고 불 끄고 나서 다시 촬영할라 치면 맑은 하늘에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폭우성 소나기가 쓸고가고, 원망과 좌절의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결코 완성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스탭들은 날 믿어주었고 또 내리 3일을 밤샘하며 촬영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한마디의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와 주었다. 학교 촬영에서는 누구보다 학생들이 고생이었다. 밤 12시에 촬영이 끝나서는 다음날 오전 7시30분까지 다시 학교로 오는 3일간의 강행군 중에도 꿋꿋하게 연기를 해준 백운초등학교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정말정말 감사한다.

99.10-부산에서 관객과 만나다

그뒤 문방구와 골목 그리고 동네장면을 일사천리로 찍고, 보충촬영까지 하고는 편집에 들어갔다. 내 연출 미숙으로 몇 장면은 도려내고 다시 고민하면서 문 실장님과 머리를 맞대고 겨우 편집을 마치고 옵티컬을 하고 네거편집을 하고, 믹싱을 하고 그 중에도 하루에도 몇번씩 위기가 찾아왔다. 믹싱에 문제가 생겨서 내가 직접 친구들과 폴리작업까지 해야 했고, 겨우겨우 프린트를 뽑았다. 10월13일 영문 자막작업까지 마친 최종본이 나왔고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일 아침에 서울에서 시사회를 하고는 오후 비행기로 부산에 도착했다. 그리곤 부산에서 관객과 만났다.

난 이 작품을 만들면서 다짐한 바가 있었다. 어학연수 못지 않게 배우겠다고. 그래서 모든 작업 과정을 몸소 체험하려 했고 부산 가기 전에 나름대로 포스터, 보도자료, 홍보 지우개 등을 준비해서는 마케팅까지 하며 영화의 전 과정을 배워보고자 했다. 지금 <지우개 따먹기>는 상은커녕 영화제 본선에도 못 진출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게는 소중한 작품이다. 나름대로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실험을 했었고, 만족감과 상처와 절망감을 함께 느끼고 배우게 해준 작품이기에….

이 작품이 있기까지 함께 해준 사랑하는 스탭들과 배우들 그리고 도움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누구보다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이젠 푹 쉬련다. 못난 모습으로 너무나 큰 작업을 했기에 이젠 공부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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