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투덜양] 이것이야말로 필살 방중술? <권태>
2005-07-08
글 :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투덜군, 남자를 사로잡는 필살기 알려주는 영화 <권태>에 놀라워하다

‘권태’라는 상당히 권태스러운 제목을 대놓고 달고 있는데다가, 권태로운 영화의 산실이라고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만들어지기까지 하여 더더욱 강력한 권태의 예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권태>.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러한 우리의 예상을 깨고 상당히 흥미진진한 구석을 갖춘데다가, 꽤 귀여운 구석과 심지어는 코믹한 구석까지 구비해놓고 있는 재밌는 영화였다.

한데 좀 벗는다 싶으면 일단 그걸 강조하고 들어가고 보는 것이 작금의 마케팅 풍토인지라, 점잖은 영화 수입하기로 유명한 이 영화의 주최쪽에서도 역시 “40대 철학교수와 17살 모델의 스캔들”이라는 헤드카피를 달아놓고 있었다. 뭐, 물론 영업부장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카피를 달 수밖에 없었던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만, 어쨌든 이 영화는 ‘모델’이나 ‘스캔들’ 같은 카인드 오브 단어에서 연상할 수 있는 그런 거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영화다. 사실 스캔들이라면 지난번에 얘기했던 <연애의 목적>쪽이 훨씬 더 정통해 있지. 그 필이 심히 구려터져서 문제긴 하다만… 어쨌거나.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어떤 헤드카피가 붙는 것이 적합할 것인가. 영업에 보탬이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다만, 여하튼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카피로는 이런 게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여성우대 창고 대방출 - 남자를 움켜쥐는 절대 필살기가 단돈 7천원.”

그렇다. 이 영화는, 남자 주인공이 무슨 만능 방탄조끼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걸치고 다니는 ‘철학자’고 ‘작가’이고 ‘교수님’이고 ‘예술가’이고 ‘지식인’이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각종 타이틀, 즉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이 세상의 ‘힘’들이, 무념무상 무위자연의 도를 몸으로 체득하여 두달 불린 미역마냥 유연하고도 미끌미끌하게 대응하는 여인의 손아귀에서는 2년 말린 기린 똥보다도 쉽게 바스라져버릴 수 있는 같잖은 것임을 보여주는, 알고 보면 매우 통쾌한 영화인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그닥 대단한 미인도 아니거늘 남자들을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일부 여성들이 가진 비밀이 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탐구하고자 하시는 여성 여러분께는 매우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아니지. 지금 내가 뭔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이런 얘기를 할 입장이 아니지.

해서, 남성들에게는 가히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핵심 영업비밀을 공공에 공공연히 누설함으로써 거의 산업 스파이에 준하는 비난과 처벌을 받아 마땅할 이 영화에 대해, 평소 남성적 정체성과 투덜적 본분을 견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힘으로써 오늘의 투덜에 갈음코자 한다.

어이, 감독 냥반.

이보쇼.

아무리 작품도 좋다지만, 같은 남자들끼리 이래도 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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