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여고괴담4: 목소리> [1] - 지지의 글
2005-07-15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여고괴담> 시리즈를 구원한 <여고괴담4: 목소리>의 성취

한국 호러의 새로운 기로

소녀 귀신이 돌아왔다. 1998년 첫 번째 영화가 시작되었던 <여고괴담> 시리즈는 재생을 거듭하면서 ‘학교’와 ‘소녀’와 ‘괴담’이라는 키워드만으로 느슨하게 묶인 속편을 생산해왔다. 사랑받지 못했던 소녀의 원한,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을 원했던 소녀의 슬픈 사랑, 저주로 변해버린 소녀들의 시기와 증오. 그리고 네 번째 영화 <여고괴담4: 목소리>. 유령의 시점으로 학교를 바라보는 <여고괴담4: 목소리>는 세편의 전작과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그물에 갇히지 않으면서 잔인하고도 애틋한 소녀들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기억되고 싶고 살아남고 싶은 소녀의 욕망으로 일그러지는 학교는 차가운 공포의 세계이고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떠도는 혼돈의 세계다. 듀나가 이 세계를 주목해야만 한다고 설득하는 리뷰를 보내왔고, 데뷔작을 내놓은 최익환 감독의 인터뷰가 그 뒤를 따른다.

오늘 이 글에서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최익환의 <여고괴담4: 목소리>가 매너리즘에 빠진 시리즈의 평범한 네 번째 영화가 아니라 나름대로 전편과 차별화되는 예술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고 최종 결과 역시 상당히 생산적인 작품이라고 여러분을 설득하는 것이다.

우선 이 영화가 속해 있는 <여고괴담> 시리즈라는 모호한 대상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1편의 성공 이후 이 시리즈는 일종의 게임 규칙으로 존재해왔다. ‘신인들을 기용해서 여자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호러영화를 만든다면 뭐든지 해도 된다.’

물론 이 ‘뭐든지 해도 된다’라는 규칙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다. 두편의 속편인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와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엔 심한 외부 검열의 흔적이 보인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섬세한 로맨스로 시작했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후반부는 호러에 큰 관심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감독들이 억지로 의무방어를 하기 위해 삽입한 평범한 자극장면들로 도배가 된다.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은 2003년 이후 한동안 한국 호러 영화계를 오염시켰던 ‘사다코 흉내내기 열풍’의 희생자인데, 흥행이 걱정된 제작진과 자신감이 부족한 감독의 타협이 분명 어느 선에서 존재했을 것이다. 만약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감독들이 분명히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켰다면 어떤 영화가 나왔을지 상상해보라. 여전히 완벽한 작품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영화의 자기 완결성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프랜차이즈로부터의 독립선언

<여고괴담4: 목소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작품이, 외부의 간섭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최초의 속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것들이 존재했다고 해도, 이 영화에서는 외부의 강요나 자기 검열을 따른 타협의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성격은 최근 한국 호러영화의 흐름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튄다. 가장 노골적인 특징은 이 영화가 다들 의무라고 생각하는 ‘호러영화 깜짝쇼’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는 최근 한국 호러영화 흐름 전체를 배반하고 있다. 페이스는 차분하고 고르고 무덤덤하며 자극적이거나 긴박감 넘치는 장면들도 비교적 적다. 영화는 마치 관객에게 ‘난 호러영화를 만들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할 테니까 알아서 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드레날린의 자극을 원한 관객은 실망할 것이고 아마 그 선택을 심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선택했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성취다. 최근 몇년 동안 나온 한국 호러영화들을 말아먹은 가장 큰 원흉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라. 잘 먹히지도 않고 멋도 없고 창의성도 부족한 귀신 깜짝쇼였다. 심지어 비교적 멀끔하게 뽑혀져 나온 <분홍신> 같은 신작도 이런 장면들이 나오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꼭 호러영화라고 이런 걸 넣어야 하나?

<여고괴담4: 목소리>는 그 질문에 대한 유익한 답변이 되어준다. 물론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극에 대한 기대를 접고 보면 <여고괴담4: 목소리>는 여전히 흥미로운 영화이다. 시간과 두뇌를 투자할 만한 미스터리가 있고 주인공을 귀신으로 삼아 이전의 시리즈 공식을 역전시킨 화법도 있으며 비주얼 대신 사운드에 집중한다는 영화적 실험도 있다. 게다가 영화는 호러영화의 의무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여고괴담4: 목소리>는 여전히 꽤 섬뜩한 영화이다. 단지 영화가 제공해주는 게 자극적인 깜짝쇼가 아니라 혀끝에 길게 남는 차갑고 불쾌한 뒷맛이라는 점이 다르다.

무거운 비극과 멜로는 가라!

<여고괴담4: 목소리>는 한국 호러영화의 일반적인 공식뿐만 아니라 <여고괴담>의 불문율도 몇개 깨트린다. 아까 ‘여자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귀신 이야기라는 공식만 지킨다면 뭐든지 한다!’가 이 시리즈의 규칙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 위에 덧붙여진 전통도 무시할 수는 없다. 레즈비언 서브텍스트나 텍스트, 한국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 따돌림과 같은 집단 폭력, 자살과 같은 주제나 소재들은 중요성이 조금씩 바뀌긴 해도 계속 반복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전통은 이 시리즈가 기본적으로 심각하고 비판적인 멜로드라마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고괴담> 시리즈는 덜컹거리고 어리석은 시스템과 집단의 무관심과 폭력에 의해 살해당한 소녀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다. 주제는 언제나 묵직했고 그걸 다루는 방식 역시 그만큼이나 무거웠다.

<여고괴담4: 목소리>는 그 전통을 깨트린다. 이 영화에도 집단 따돌림이나 자살, 레즈비언 텍스트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소재들을 결코 무겁고 교훈적인 멜로드라마로 끌고 가지 않는다. 슬프고 비극적인 전편들과 달리 이 영화는 차갑고 냉정하며 야비하다. 난 이 영화가 전편들보다 훨씬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건 관객과 주인공들이 대면하는 초현실적인 존재가 세상의 피해자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악역’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을 생각 따위는 전혀 없는 당당하고 뻔뻔한 작은 악마다.

<여고괴담> 시리즈 안에서 이 건조한 사악함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낯설다. 그걸 뒤집어 말한다면, <여고괴담4: 목소리>라는 영화가 지금까지 <여고괴담> 시리즈 속편들의 발목을 죄어왔던 고리들을 상당수 끊어버렸다는 말이 된다.

한국 호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대부분의 <여고괴담> 영화들이 그렇듯, <여고괴담4: 목소리>는 완벽한 작품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만한 작품도 아니다. 후반부의 진상 폭로 부분은 지나치게 말이 많고, 유령들의 물리적 힘은 지나칠 정도로 세고, 클라이맥스는 너무 무덤덤하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기 위해 꼭 필요한 몇몇 심리묘사들이 결여되어 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대로 빌려온 것 같은 몇몇 친숙한 설정 역시 플러스 요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단점들을 모두 인정한다고 해도, 이 영화의 성취도는 쉽게 부인할 수 없다. <여고괴담4: 목소리>는 장르에 대한 좁은 고정관념을 부수었고, 거의 막바지에 도달한 <여고괴담> 시리즈에 아직 개척되지 않은 새로운 영토를 제공해주었다. 만약 이 영화의 성공과 실패를 적절한 본보기로 삼는다면, 끊임없는 자기 복제의 단계로 접어든 한국 호러영화들이 새로운 기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난 제발 이 영화가 어느 정도 나쁘지 않은 흥행성적을 내길 바란다.

결정적으로 <여고괴담4: 목소리>는 상당히 좋은 호러영화이다. 피와 깜짝쇼에만 치중하는 다른 한국 호러영화 감독들과는 달리 최익환은 공포와 사악함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그를 통제할 수 있는 테크닉과 지식을 지니고 있다. 아직까지는 가능성만 보여주고 미완성으로 남은 그 감각이 어디까지 다듬어지고 발전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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