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김지운식 코미디 [3] - 김지운·장진 인터뷰 ②
2000-02-15
사진 : 정진환
정리 : 조종국
정리 : 황혜림

안 바쁜 사람하고만 영화할꺼야

장진

장진 | 그럼 형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그런 감이 있는 배우인가?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김지운 | 좋은 배우라기보다, 그런 감으로 다가오고 느낌이 나오는 배우가 나한테 ‘맞는’ 배우 같아. <실크 우드>를 보면 메릴 스트립이 완벽히 계산된, 잘 짜여진 연기를 보여주는데, 느낌으로 연기하는 셰어에 상대가 안 돼. 또 <줄리아>에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제인 폰다가 붙는데, 폰다는 감정 하나 틀린 데 없이, <실크우드>의 메릴 스트립처럼 빈틈없이 연기하고 레드그레이브는 연기를 안 하더라고. 턱 버티고 있다가 물어보면 대답만 짧게 하고. 내가 선호하는 연기는 셰어나 레드그레이브 같은 거지. 그런 의미에서 느낌을 전달하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지.

장진 | 감독들의 성향을 보면 나는 이런 배우와만 한다, 이런 배우와는 절대 안 한다. 모든 배우들과 다해도 이런 배우와는 안 한다, 나는 이런 배우만 아니면 모든 배우와 다한다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형은 어때요?

김지운 | 나는 안 바쁜 사람하고만 하면 좋겠어. (웃음)

장진 | 형도 다양한 배우들과 하는 것 같은데, 절대 같이 안 하는 부류가 있는 것 같아요.

김지운 | 외국 영화 보면 감독마다 자주 같이 하는 배우가 있잖아. 누구 영화 하면 단역이라도 꼭 나오고, 나는 그런 문화가 좋아. 장 감독도 농담 반으로 장진 사단이라는 게 있잖아. 우리나라도 만드는 사람들 간의 인적 문화, 뭐 그런 게 있으면 좋겠어. <반칙왕>에 신하균을 단역으로 쓴 것도 사실은 <간첩 리철진>의 패러디가 있는 거야. 얘가 밖에 나가면 뭘하고 있을까, 영화 속 ‘우울한 청춘들’처럼 그러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한 거지. 나는 통하는 사람들끼리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 송강호도 내 영화에는 어떤 단역이라도 꼭 하고 싶다고 그러더라. 그게 술 먹고 한 이야기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웃음) 태권도장에 나온 이기영이나 링아나운서 한성식, 고호경도 다 그런 식으로 출연했던 거고. 감독과 배우들 사이에 그런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는데.

장진 | 나도 마찬가지예요. 손현주 형 같은 경우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라 작은 배역이라도 도움을 청하거든요. 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면 저 정도 하지만 나는 더 많은 부분을 ‘빼낼’ 수 있다는 생각이, 사심이지만 감독에게는 있는 거잖아요. 참, <조용한 가족>은 가족 이야기고, <반칙왕>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나오는데 형에게 가족이라는 건 어떤 의미고, 작업할 때 어떤 방식으로 따라오는지 궁금하거든요.

액션이든 코미디든 다 슬퍼야 해

김지운

김지운 | 가족에 대해서는 정말 잘 모르겠어. <조용한 가족> 할 때도 가족의 의미를 묻는 질문의 대답이 정말 곤궁했거든. 우리 집안 내력을 보면 평범한 가족이 아니어서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다.

장진 | 나는 어떤 작품을 할 때 꼭 가족이 들어가거든요. 왜냐하면 가족에서 관계를 설정해나가고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쉬워서요. 너무나 다양하고 재미있거든요. <조용한 가족>도 사실 가족 이야기가 아니고, <반칙왕>의 부자도 그냥 가족 개념은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 영화는 가족의 의미를 본의 아니게 습성처럼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형 영화에서도 가족이라는 것은 재미난 상황과 재미난 자원이 숨어 있는 곳이잖아요.

김지운 | 가족 이야기 재미있지. 그렇게 들춰보면 가족처럼 ‘골 때리는’ 관계도 없는 것 같아.

장진 | 편집에서 들어낸 부분이 있다는 게 탄로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하다만’ 것 같은 캐릭터들이 생기는데, <반칙왕>에서 장진영과 정웅인 역이 좀 그랬어요. 편집에서 잘린 부분일 수도 있고, 더 중요한 부분이 다칠까봐 그랬을 수도 있는데요.

김지운 | 한 사람의 길을 쫓아가는 영화다 보니 아무래도 그 사람의 반경에서 보여지는, 부딪히는 만큼의 정보만 줘야겠다 싶었어. 너무 비대해지면 영화가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고.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까 여러 버전이 나올 수 있겠더라고. 이를테면 장 관장 버전, 민영이 버전, 두식이 버전, 부지점장 버전 등 너무나 다양한 거야.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다 달라질 수 있는 거지.

장진 | 코미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룰 수 있죠, 이를테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극작상으로 대단히 모범적인 코미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또 하나는 사람이 어떤 상황을 만나는 처지, 그 처지가 대단한 코미디가 되는 거지요. <조용한 가족>은 전형적으로 사람과 상황이 만난 코미디고, <반칙왕>은 사람과 상황이 잘 만난 코미디인데도 또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파헤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지운 | 대호가 레슬링체육관을 찾아가는 동기, 레슬링, 그것도 반칙 레슬링을 할 수밖에 없는 동기, 이처럼 옴짝달싹 못하게 몰고 가는 상황들로 사실 상황 코미디를 만들어갈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서 빚어지는 소극, 따뜻하고 정감어린 웃음들을 더 원했던 것 같아. 레슬링이 주는 정서적인 측면들, 그리고 직접 언급은 안 했지만 IMF 이후 구조조정이 심한 은행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소시민들의 애환, 거기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에서 엉뚱하게 레슬링을 잡은 것. 거기에 장치로 부지점의 헤드록이 있긴 하지만, 결국 이런 것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거지. 상황 코미디에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자꾸 관계 중심으로 간 게 장 감독은 아쉬웠던 모양인데, 나는 그런 측면이 더 강했던 것 같아. 향수, 노스탤지어 같은 것들이 <조용한 가족>처럼 상황에 던져진 인물 군상들이 꼼짝없이 그럴 수밖에 없는 코미디보다는 이쪽을 더 강조하게 만들었어. 그래서 이번에는 슬픈 코미디를 하고 싶었던 거지. 나는 개인적으로 액션 영화든, 오락 영화든, 호러물이든, 코미디든 다 슬퍼야 한다는 생각을 해. 난 영화에 사람이 나와야만 그걸 영화로 생각하거든. 예를 들어 실사 영화가 아닌 것들, <토이 스토리>나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들처럼 아무리 감동스럽고 재미있어도 애니메이션은 영화란 생각이 안 들거든.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신기루> 같은 것들도 영화 같지가 않아. 영화가 좋고, 감독의 불굴의 의지가 화면 곳곳에 배어 있다 해도 난 사람이 나와야 하고, 그래서 난 슬픈 것 같아. 사람이 나오고 사람 사는 얘기를 하려니까 슬퍼.

감독되고나서 영화를 잃어버린 것 같아

장진 | 형은 영화감독인데, 형이 생활하는 걸 보면 그다지 영화감독 같지는 않아요. 형한테 영화감독이라는 건 꿈이에요, 생활이에요?

김지운 | 꿈이지.

장진 | 형한텐 꿈도 아닌 것 같아요. 꿈이라면 나는 앞으로 이런 감독이 돼서 이런 영화를 하겠다 하는 게 있을 테고, 생활이라면 내 영화에 사람이 어느 정도 들고, 부를 얻고, 제작을 하고, 배급을 하고 프로덕션을 하고 하는 계획이 있을 텐데요.

김지운 | 난 영화를 동경해. 감독이 아니라도 영화를 만들어가는 어떤 역할이든 좋고. 제일 해보고 싶은 건 붐.

장진 | 동경이야 어릴 때부터잖아요.

김지운 | 그렇지…. 감독이 되고 나서 가장 큰 상실감은 영화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거야.

장진 | 그렇죠?

김지운 | 영화 메커니즘을 알아가면서, 부시맨이 콜라병 하나를 발견해서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배워가는 것 같은 기분이야. 재능을 현실화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거지.

장진 | 그래도 좋아하는 영화랑 만드는 영화는 다르지 않아요?

김지운 | 꼭 그렇진 않지만…. 브레송이 코미디 한다면 아키 카우리스마키 같은 게 나오지 않을까. 누가 좋아하는 영화 물으면 제일 먼저 브레송, 파솔리니부터 나오는데, 난 내 그릇을 아는 거지.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고,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대들에게 다가간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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