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작품 가운데 특히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시나리오 데뷔작으로 택한 이유는? <레볼루션 No.3>도 가능했을 텐데.
=<플라이…>는 먼저 시나리오 초고를 쓰고 그걸 바탕으로 소설화했던 작품이다. 가장 영화적이지 않나 싶었다. 영화를 한다면, 어렸을 때 좋아하던 성룡의 <취권>이나 이소룡의 작품 같은 액션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하고 싶었다. <플라이…>는 판타지적인 분위기도 있지만 출발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일본 영화계엔 요즘 절대 없는 작품이다. 출발 자체가 비현실적인 SF영화 같은 거야 있지만. 내가 다른 분야(소설계)에서 온 사람이기에 나름대로 힘있게 이런 기획을 밀어붙일 수 있겠다 싶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기획을 냈으면 대번에 뭉개졌을 거다. 남자들만 나오는 얘기야? 연애 이야기는 어디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사실 <레볼루션…>에 대해선 한국을 포함해 수많은 영화화, 드라마화 제안이 있었지만 고민 끝에 남겨뒀다. 언젠가 감독 데뷔를 한다면 데뷔작이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와 소설이 많이 달라졌다. 중년 아저씨가 주인공인 소설에 비해 영화에선 박순신의 비중이 커지고 두명의 이야기가 됐다.
=처음엔 영화계를 모르고 47살에 적당히 배나온 중년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썼다. 근데 그 나이에 스턴트 없이 액션이 가능한 배우가 없다더라. 일단 거기서 막혀버렸다. 주인공이 오카다 준이치와 쓰쓰미 신이치로 결정되면서 그들에 맞춰 변경한 부분도 많다. 1인 주인공에서 양아버지-아들과 같은 관계의 이야기로 바꿔나갔다.
-뭐가 제일 힘들던가.
=시나리오는 표현을 깎아나가는 작업이다. 소설은 이를테면 형용사다.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 같은 달’이라는 식도 쓸 수 있지만 시나리오에선 ‘달이 떠올랐다’면 끝이다. 이미지를 한정해버리면 감독이나 배우에게 방해가 된다. 그걸 몰라 처음엔 너무 많이 써댔다.
-영상 스타일이 만화적이면서 판타지적인 건 의도적인가.
=이런 얘기를 리얼리즘 스타일로 가져가면 단박에 ‘있을 수 없는 얘기’라는 반응이 나왔을 거다. 물론 난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쓴 거지만. 어쨌든 그런 점에서 판타지적인 연출이 필요했다. 처음엔 아주 판타지색을 세게 가자는 얘기도 나왔다. 순신이 나타날 때 학교 교사에서 붕∼ 하고 뛰어내린다든지. 그건 내가 반대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의 뼈대가 다 바뀌는 거다. 난 영화엔 ‘엔터테인먼트의 왕도’랄까 그런 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냥 일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실 난 이런 일본영화가 지긋지긋하다!- 리얼한 일상에 숨어 있는 기적 같은 걸 끌어내는 것 말이다. 역에 들어오는 기차(뤼미에르 형제)나 버스턴 키튼 같은 연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게 영화의 원점 아닌가. 인텔리들이 그걸 자기네 장난감처럼 제멋대로 어렵게 만들어버리며 그 원점이 잊혀지는 것 같다.
-완성된 작품은 만족스럽나.
=물론 내 생각대로 표현이 그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거꾸로 새로운 발견도 많았다. 내 잠재의식에 있는 걸 배우들이 표현해줬다고나 할까. 처음 영화를 봤을 땐 순신의 매의 춤이나 스즈키가 버스경주에서 마침내 이기는 장면이 좋았다. 두 번째 봤을 땐 달랐다. 스즈키가 첫날 훈련에 나가, 순신을 향해 “난 겁쟁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 그땐 그냥 멋있어서 쓴 말이었는데, 배우 쓰쓰미의 표정을 보니 마치 남자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뭐든지 손해와 이득을 따져 행동하게 되는 거다. 그에 비해 어린애는 좀더 스트레이트하고 그런 걸 따지지 않는다. 아, 이제부터 스즈키가 소년이 되어 여름방학을 맞이하는구나, 그런 느낌이 들며 감동적이었다.
-다른 작품들 얘기를 해보자. 마이너리티를 그릴 때 절망적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마는 방식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비한다면 당신의 작품들은 굉장히 낙관적이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오는가.
= 그건 타고난 건데…. 내가 재일동포를 포함한 마이너리티를 그리는 이유는 우선, 고인 물이 썩듯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있는 곳에선 절대 새로운 게 태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 피가 흘러들어야 새로운 것도 생긴다. 메이저 사회 속 마이너리티가 가장 알기 쉬운 예일 거다. 또 하나는 일본을 비롯한 동양사회, 특히 영화 같은 예술에선 마이너리티 존재를 너무 숨겨왔다는 거다.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면 흑인 차별 같은 걸 소재로 한다. 이 사회에 차별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당연시하고 인정한다. 일본은 없는 걸로 하자고 한다. 재일동포나 마이너리티를 그림으로써 이런 이들이 당연히 이 사회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재일동포도 평범하게 살아가기 조금은 쉬워질 거고.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이런 얘기가 없으니까 재밌지 않을까 하는 거다.
-실제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나.
=내가 고등학교 땐 차별이 가장 심할 때였다. 그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다. <Go> 때와 비교해도 그렇다. 기자회견에서 “주인공을 재일동포로 한 건 무슨 의도냐?” 이런 식의 질문은 거의 없다. 가끔은 인터넷 기사 중에 재일동포가 주인공이라는 데 제멋대로 의미를 두고 “반일영화다” 이렇게 쓰는 사람이 있어 어이없긴 하지만. 대부분은 당연히 순신, 순신, 이름을 부르며 그를 일본사회의 일원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어찌나 기쁘던지. <Go>를 잘했다 싶었다. 구보즈카 요스케나 오카다처럼 일본의 멋있는 배우들이 재일동포 역을 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바로 그 점, 당신의 작품은 언제나 영웅이 등장한다. 일부러 잘생긴 일본 배우들을 재일동포로 쓴다는 느낌도 든다. 근데 영웅이 해결해주나.
=첫 출발로는 우리 세대가 목표로 할 만한 영웅을 내세우는 게 절대 필요했다. 힘과 지성을 갖춘 인물. 그전에도 재일문학엔 차별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내게 힘이 되지 못하더라. 물론 <피와 뼈>처럼 우리 윗세대엔 강한- 심지어 폭력적인- 인물들이 있어왔다. 근데 그게 우리에겐 없었다.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 누가 내게 힘을 주지? 그런 점에서 <Go>는 <피와 뼈>의 패러디의 의미도 있다. 하지만 다음 작품에선 평범한 재일동포를 그리려 한다. 싸움은 해본 적도 없고 재일동포인 걸 숨기고 평범하게 사는 대학생이다. 구상도 끝났는데 첫 장면은 여자한테 채인 걸로 시작한다. 졸업여행을 앞두고 여권을 보면 들통나니까 여자친구에게 고백하는 데 채이는 거다. “<Go> 같은 소설, 새빨간 거짓말이다”라는 식의 패러디도 있다. (웃음) 사실 스기하라나 순신 같은 영웅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평범한 재일동포가 어떻게 강해져가나, 이걸 쓰는 것도 내 의무라 생각한다. 재일동포 문학의 범위를 넓혀가는 의미도 있다.
-지금 말에서도 느꼈지만, 다른 이들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적잖은 젊은 재일동포들이 아예 국적 같은 걸 말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데 비해 당신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국적과 국경선을 거부하면서도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점에선 재일동포 윗세대들의 의식과도 닮았다.
=나도 의식조차 않는 것, 그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근데 현실은 어떤가. 일상생활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결혼, 취직, 여권 등등 어른으로서 사회에 한 걸음 더 내디디려할 때마다 관문이 나온다. 그것 때문에 내가 쓴다. 나처럼 괴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에. 그런 게 없다면 나도 ‘세카추’(<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같은 작품 쓰고 싶다. (웃음) 하지만 ‘국가’라는 제도가 있는 한 사람에게 라벨을 붙이는 일은 좀체 없어지지 않을 거다. 국가를 포함해 인간성과 자유를 빼앗는 모든 것들. 거기에 어떻게 하면 대응할 수 있을까, 그게 내 인생의 테마다. 질 때 지더라도 싸울 준비는 돼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선 나의 이야기가 보편적이라 생각한다. 아마 내가 보통 일본인이라 평범하게 취직하고, 평범하게 여권 갖고 이랬다면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겠지.
-한국영화도 많이 보나? 한국엔 팬이 상당하다.
=솔직히 <쉬리> 때는 ‘재일동포니까 당연히 봤겠구나?’라는 식의 말들이 싫어서 일부러 안 봤다. <엽기적인 그녀>가 처음 본 한국영화였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도 대단하고. <올드보이>를 보면서는 진짜 배우의 힘이 느껴졌다. 일본 배우들에게 과연 저런 연기까지 요구할 수 있을까? 절대 무리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건 이유가 뭔지, 나도 궁금하다. ‘제2의 무라카미 하루키’ 이런 식의 표현도 들었다. 음∼ 좋은 뜻이라는 건 알지만 노선은 다르잖아∼.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