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무영검> 중국 촬영현장을 가다 [1]
2005-07-27
글 : 박은영
사진 : 이혜정
<무영검>의 도전 - 서사, 액션, 미술, 합작의 새로운 시도

상하이 푸둥공항에서 차로 달리기를 네댓 시간. 4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 헐벗은 남자들이 우글대는 도시 무석의 세트장에 다다랐다. 고궁처럼 생긴 입구를 지나니, 지도 없이는 다닐 엄두가 안 나는 너른 세트장이 펼쳐져 있다. 이 세트장에선 장나라가 출연하는 중국 드라마를 비롯해 서너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동시에 촬영되고 있다고 한다. 세트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호수에 인접한 낡고 허름한 가옥들의 거리가 나타난다. 바로 여기서 김영준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무영검>의 막바지 촬영이 7월4일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다. 102회차 촬영이 있던 7월5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는 발해의 마지막 왕자 대정현(이서진)과 그를 지키는 무사 연소하(윤소이)가 거란족의 침탈로 폐허가 된 발해 마을을 지나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말쑥한 복장에 움직임이 거의 없는 이날의 장면은 무협물인 <무영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정적인 촬영이었다.

그러나 쉬운 촬영은 없는 법이다. 비교적 난이도가 낮았다는 이날 촬영의 걸림돌은 날씨와 타이밍. 중국 남부 특유의 덥고 습한 날씨는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스탭과 보조출연자로 동원된 중국 현지인들, 오랜 중국 촬영으로 현지인이 다 된 한국 스탭과 배우들은 그러나, 이 더위 속에서 겨울신을 찍으면서도 태연했다. 더운 바람만 내뿜는 늙은 선풍기 몇대, 얼음물에 적신 타월로 땀을 식히면 그만이었다. 거란군 역의 중국 소년들은 모피와 금속을 덧댄 전투복 차림으로도 달게 졸고 있었고, 두터운 옷차림으로 모닥불까지 쪼여야 하는 발해 가족 역의 중국 연기자들도 더위를 타는 기색이 없었다. 정작 촬영팀의 애를 태운 것은 더위가 아니라 수시로 달라지는 조도.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약을 올리는 통에 촬영팀은 구름의 움직임을 살피려 한동안 ‘하늘바라기’만 해야 했다. 마차 속도가 맞지 않아서, 말이 반항해서, 배우가 눈을 깜박여서, 테이크를 다시 갈 때마다, 어김없이 이 얼 싼(하나 둘 셋), 레디, 준빠이(준비), 액션 같은 구령이 뒤섞여 들려왔다.

“너무 반가워요, 잘 오셨어요.” 지나가던 연출부가 울컥해져 한마디 건넨다. 촬영장에선 언제나 어디서나 불청객일 수밖에 없는 기자들로선 조금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션. 물론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르게는 지난 겨울부터 다섯달 이상을 중국에서 머물고 있는 <무영검>의 스탭, 배우들은 막바지 촬영을 앞두고 향수병과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을 터다. 이들은 2월14일 크랭크인해 가장 오래 머무른 횡점 세트에서는 수중 액션과 대형 와이어 액션 같은 힘든 촬영을 연거푸 해치웠고, 해발 4천미터의 고지대인 리장에서는 앰뷸런스가 대기하는 가운데 호흡곤란과 출혈 등의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횡점, 리장, 다시 횡점, 신창, 무석으로 이어지는 촬영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분량을 소화해온 윤소이는 중·노년층 전용인 토르말린 음이온 목걸이를 부적처럼 목에 두르고 있었고, 엔딩신 촬영 때문에 가장 늦게까지 중국에 머무는 이서진은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조바심을 내는 모습이었다. 짜고 기름진 중국 남부 음식에 물린 김영준 감독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삼시 세끼 냉면만 먹으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리운 게 어디 음식뿐이겠는가.

사진제공 태원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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