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무영검> 중국 촬영현장을 가다 [3] - 미술·합작
2005-07-27
글 : 박은영
사진 : 이혜정

모든 사극에 고증이 필요한가?

미술- 잃어버린 대륙의 역사, 로드무비의 특성 살린 상징적 면 부각

고증 자료가 많지 않은 과거의 어느 시대를 시각화하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발해가 배경인 <무영검>의 미술팀은 자료가 부족한 까닭에 고증보다는 상상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작업해야 했다. “영화미술이 재현의 목적을 가진 건 아니”라고 믿는 하상호 미술감독은 자료에 연연하기보다는 “잃어버린 대륙의 역사, 로드무비라는 드라마에 기여하는 상징적인 미술”을 구현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발해의 역사와 고구려의 미술을 검토하고 그가 내린 결론은, 발해의 미술은 ‘화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시대적인 정서나 분위기상 브라운 계열의 어둡고 차분한 색감이 어울린다고 봤다.” 마치 필터를 쓴 것처럼 모노 톤으로 보이는 화면은 이런 컨셉을 형상화했기 때문. 발해와 거란의 갈등 구도가 중요한 만큼 시각적인 대비에도 공을 들여, 거란의 경우 어둡고 탁한 붉은색을 주조로, 짐승의 뼈와 가죽 등을 활용한 동물적 이미지를 강조했다고도 한다.

“처음부터 캐릭터를 만화화하자는 컨셉이 있었다. 주연부터 단역까지 무협만화에서 봤음직한 캐릭터로 특성을 살려내자는 것이다. 미국의 마블 코믹스 캐릭터들처럼.” 정태원 대표의 설명처럼 인물의 개성을 캐리커처처럼 부각시키는 작업은 다소 복합적으로 진행됐다. 김민희 의상실장은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발해 미술 자료부터 비디오게임 캐릭터까지 다양한 소스가 반영됐다고 전한다. “발해라는 시대의 특별함, 신비롭기도 하고 강한 느낌을 살리되, 요즘 감각에도 맞고 비전도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 <비천무>에서 다소 심플한 디자인의 고려 의상을 선보였던 그는 이번엔 “한 세트에 열벌”에 달하는 복잡하고 디테일한 의상을 제작했다. 연소하의 경우 감독이 정해주었던 “순백의 여무사”라는 컨셉에 충실하면서도, 강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기 위해 브라운 계열의 망토로 포인트를 주었다. ‘장물아비 소삼이’로 등장해, 발해의 왕자로 커밍아웃하는 대정현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이는 만큼, 서역의 영향을 받은 원색적인 의상부터 강인해 보이는 검은색 갑옷까지, 그 변화의 추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악역에 해당하는 군화평은 청색과 금속 장식을, 매영옥은 자주와 검정의 타이트 디자인을 주조로, 강하고 화려한 의상을 선보인다.

하상호 미술감독이 이야기하듯 ‘로드무비’이기도 한 <무영검>에서 공간의 이미지와 의미는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컨셉 스케치를 기초로, 지난해 10월경 중국에 들러 세트장을 둘러보고 응용 가능한 건물과 지형을 선택했다. <청명상하도>를 그대로 옮겼다는 세트에서 스펙터클한 오프닝을, <아편전쟁>의 세트에서 거란 척살단과의 대형 액션을, <수호전>의 세트에서 대정현이 거란으로 진격하는 홀한성 엔딩을 찍었다.

캐릭터와 의상

대정현
연소하
군화평
매영옥

대정현(이서진)

왕실을 떠나 방랑하다가, 연소하의 채근과 희생으로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고, 그러다 결국 발해군을 이끌게 되는, 비유하자면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 같은 캐릭터. <다모>를 본 김영준 감독이 “반듯한 이미지에 맞지 않겠지만” 하면서 내민 역할을, 이서진은 “저 반듯하지 않아요”라면서 선뜻 받아들였다고. 대정현의 심리 변화와 함께 의상도 바뀌어서, 초반엔 서역의 영향을 받은 원색 의상에 두건을 쓰고 나오기도 하는데, 점차 카키와 브라운 톤으로 채도를 낮추다가, 결국 검은 갑옷까지 차려입게 된다.

연소하(윤소이)

김영준 감독이 말하는 연소하는 ‘순백의 무사’다.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검을 휘두르고, 죽어간 이들을 기리기 위해 향을 피우는, 맑고 곧은 영혼의 소유자. 순백과 외유내강은 그대로 연소하의 시각적 컨셉이 되었다. 단 한번 위장을 위해 부인복을 입는 것을 제외하면, 아이보리 컬러의 평상복에 갈색 망토와 허리띠를 덧붙인 중성적인 차림으로 일관한다. 단벌이나 다름없는 여주인공을 위해 의상팀은 14번의 염색으로 오묘한 색을 내고, 곳곳에 정성을 들여 은근한 멋이 배어나게 했다.

군화평(신현준)

거란의 편에 선 변절자이자, 권력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심가. 적의 동태를 파악하거나 경고하기 위해 매를 날리며, 강하고 화려한 무술과 그에 걸맞은 의상을 자랑한다. 하얀 저고리에 푸른색의 도포 등을 매치해서, 단정하고 강해 보이면서도, 다소 결벽적이고 괴팍한 성격을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의상에 금속을 많이 덧붙인 것도 군화평만의 컨셉.

매영옥(이기용)

연소하를 라이벌로 여기며, 군화평을 연모해 맹종한다. 슈퍼모델 출신 이기용의 늘씬한 몸매와 도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해, 자주와 검정의 피트한 의상으로 섹시하면서도 강인한 느낌을 주었다. 천이 날리는 효과를 위해 여러 겹의 포로 구성하게 마련인 무협 의상으로서는 이례적인 선택. 늘 함께 다니는 자객단인 척살단의 의상 분위기와 통일시켰다.

뉴라인은 언제, 어떻게 지갑을 열었나?

합작- 뉴라인측 순제작비의 1/3 투자, 미국 개봉 가능성 높아

대정현 역의 이서진은 현장에서 농담 삼아 이런 말이 오갔다고 일러준다. “뉴라인인데 어떻게 대충 해?” 모두들 합작건이 결정되기 전부터 작품에 합류했지만, 뉴라인의 투자·배급 사실을 되새길 때마다 없던 기운도 솟아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치면, 역시 이 장르는 홍콩이다, 라는 인식을 주는 데 그칠 것이지만, 괜찮은 성과를 거두게 되면, 북미 개봉 규모도 커질 것이고, 한국 상업영화와 영화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무술감독 마옥성도 원화평과 정소동에 이어 할리우드로 진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데일리를 챙겨 본 뉴라인의 호의적인 반응으로, 제작진은 지금 고무된 상태다.

뉴라인은 <무영검>의 투자·배급을 어떻게 결정하게 된 것일까? 이 과정엔 극적인 반전이 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비롯해, 뉴라인의 영화들을 거의 독점적으로 수입하며 친분을 쌓아온 정태원 대표는 지난해 가을 뉴라인 인터내셔널의 대표인 카멜라 갈라노에게 넌지시 <무영검> 합작 의사를 타진했다. 무협영화(<영웅>)나 그런 요소를 차용한 영화(<킬 빌>)를 알아보고 소개하는 데 있어선 늘 미라맥스에 밀리던 뉴라인으로서는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예술영화가 아닌 외국영화에 투자한 전례가 없었던 만큼 쉽게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카멜라 갈라노는 일단 비디오와 DVD 출시용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하고, 결과물을 보며 조정해가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결정된 투자 규모는 <무영검> 순제작비(65억원)의 1/3에 달하는 20억원선. 2주에 한번씩 촬영 분량을 모아 뉴라인으로 보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깨 너머로 촬영분을 구경하던 뉴라인의 배급팀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칸영화제를 기점으로 미국 개봉을 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 돼가고 있다. 뉴라인은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해외 배급도 전담하기로 했다.

발해 난민으로 출연한 중국 보조출연자들
뉴라인시네마 부사장의 사무실

<무영검>에 대한 오해 한 가지. 중국 올로케이션에, 중국 스탭과 보조출연자들을 동원한 이 작품은 중국과의 ‘합작’품이 아니다. 제작진의 재량으로 원하는 인력을 ‘고용’하고, 세트는 ‘대여’한 것이다. 이는 중국의 제편창을 통해 5억원 상당의 현물 투자를 받는 대신 중국 배우와 스탭을 의무적으로 고용하고, 동시에 중국어 버전으로도 제작하는 무리수를 두었던 <비천무>의 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비천무>가 중국에서 개봉해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고, 당시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덕에 <무영검>의 저렴하고 효과적인 로케 촬영이 가능했다고. 무석 세트에서 이서진이 발해군을 이끌고 진격하는 엔딩신을 끝으로, 7월14일 새벽, <무영검>의 만 5개월에 걸친 촬영은 끝이 났다. <무영검>은 올 겨울,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있을까.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사진제공 태원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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