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춘향뎐>과 임권택 [4] - 임권택 vs 김명곤 대담
2000-02-01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사진 : 이혜정
<춘향뎐> 시나리오에서 촬영까지

<춘향뎐> 시나리오를 쓴 김명곤씨와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 때 인연을 맺었다. 연극계 출신의 김명곤씨는 영화배우 중에서 판소리를 정식으로 배운 거의 유일한 사람이며, <서편제>에서 딸의 눈을 멀게 하는 비정한 소리꾼 유봉으로 출연해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 두 사람이 판소리 춘향전에 대해, 그리고 영화 <춘향뎐>에 대해 주고받은 이야기.

임권택 감독

김명곤 | <서편제> 찍을 때부터 감독님이 <춘향뎐> 하실거라고 알았어요. <서편제> 때문에 해남에 헌팅갈 때 차에서 내내 제가 조상현씨 판소리 완창 춘향전을 틀었잖아요. 아, 이거 영화로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셨죠.

임권택 | 맞아. 내가 그때 감흥이 도무지 잊히질 않는 거야. <창>하고 한해 쉬면서 이런저런 소재를 찾았지. 전통적인 데서 뭔가 얻으려고 도자기 굽는 데도 가고 전통 차 재배하는 데도 가고, 많이 돌아다녔거든. 그런데, 이 춘향전 판소리가 속에서 자꾸 밀고 올라오는 거야. 자꾸 조상현씨 소리가 귀에서 울리고… 이건 해야 되는 거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춘향뎐> 하겠다고 마음 먹으니까 김명곤씨 생각이 난 거야. 시나리오 맡겨야겠다고. 소리도 제대로 배우고, 판소리 책까지 쓴 사람이니까.

김명곤 |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춘향전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르죠. 춘향전 판본을 들여다보면 다 달라요. 재미있는 건 다른 것 하나하나마다 다 개성이 있다는 거죠. 문제는 4시간반짜리 완창을 2시간짜리 영화로 추리는 일이었죠.

임권택 | 김형이 춘향전을 알고 소리를 아는 사람이니까, 그걸 할 수 있었지. 그냥 글만 잘 쓰는 사람이면 어림없는 일이지. 어쨌든 김형이 핵심을 다 골라준 거야. 방자가 춘향이 잡으러가는 장면이나, 포졸들이 춘향이 잡으러가는 장면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을 보통사람들이 알기나 아나. 사랑가나 십장가, 적성가를 할 줄은 알았겠지만, 이렇게 자잘하게 숨은 걸 뽑아서 엮어낼 줄은 사람들이 아무도 생각 못했을 거야. 포졸들이 춘향한테 심통내면서 신난다하고 잡으러가는 대목에는 춘향이를 곱게만 보지 못하는 또다른 하층민이 있는 거야. 그런 것까지 있으니까 춘향전이 아주 풍부한 거야. 그게 줄거리로만 얘기할 수 없는 춘향전의 훌륭한 가치야.

김명곤 | 그게 경다름제, 덜렁제라고 하는 건데, 모든 판소리엔 이게 하나 이상은 꼭 들어 있어요. 흥겹게 건들건들거리는 이런 대목이 진짜 재미있어요.

임권택 | 이게 보는 사람은 단순하게 한번에 볼지 모르지만, 진짜 고생했어. 5월 안에 다 찍어놔야 하는 건데, 결국 찍고 찍고 또 찍어서 10월까지 방자가 춘향이 부르러 다녔다니까.

김명곤 | 전 촬영현장에 같이 있질 못해서 어제야 영화를 봤어요. 감독님하고 오래 이야기하고 시나리오도 같이 만들었지만 영화가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나올지는 감이 안 잡혔는데, 어제 영화 보고 아 이거였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소리와 영상이 서로 잡아먹지 않고 어울려서 춤추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임권택 | 나도 몰랐는데 뭐. 내가 막상 그렇게 욕심을 내서 시작했는데, 이게 어디 힌트 얻을 수 있는 데도 없고 나도 생판 처음이니까, 이게 어떤 꼴로 나올지는 나도 모르겠는 거야. 내가 무모할 정도로 실험적인 일에 달겨든 거야. 사람들 관심은 내가 어떤 영화할 때보다 높아서 좋기도 했는데, 막상 속으로는 계속 불안한 거지. 이러다가 말도 안 되는 영화 나오면 어떡하나, 계속 그랬지, 뭐.

김명곤 | 시나리오 작업부터 막막한 점이 있었어요. 제일 어려웠던 게, 그냥 소리를 풀어주면 되는 대목도 있지만, 소리하고 대사가 만나는 대목 처리였어요. 아니리(판소리 속 대사) 처리하는 것도 어려웠고. 이걸 판소리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극중 인물이 대사로 해야 하는지 시나리오 단계에선 감이 안 잡혔어요. 소리로 가면 극중 인물은 입맛 벙긋벙긋해야 하나, 극중 인물이 하면 갑자기 판소리 가락처럼 대사를 해야 하나. 결국 이건 촬영하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넘긴 거지요.

임권택 | 찍기 직전까지 나도 몰랐어. 연기자들도 아주 골치아픈 거야. 자기들도 춘향전은 웬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거기 맞춰서 혼자서 연습도 했는데, 촬영 시작한 지 두달이 지나서도 이게 무슨 영화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야. 저 감독은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고, 그렇다고 감독 당신은 아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끙끙 앓는 거지. 나는 나대로 연기자나 스탭들 앞에서 불안한 모습 보이면 안 되니까, 꾹 참았지만, 내 속은 그게 아니었지. 사랑가 찍고 나서 감이 잡힌 거야, 나도.

김명곤 | 인물 성격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각 판본마다 인물들의 성격이 다 다르니까. 몽룡이만 해도 어딜 보면 책방 도련님 같고, 또 어딜 보면 한량이거든요. 춘향이도 발랄하고 외향적인 성격과 조신하고 원숙한 처녀 이미지가 판본마다 달랐어요. 전체적으로 보면 뒤에 나온 판본일수록 춘향이와 몽룡이를 이상화해서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춘향전이 시대에 따라 바뀌는 모습도 재미있어요. 그 때문에 시나리오 만들기는 더 어렵긴 했지만.

임권택 | 우린 결국 다 모아서 아주 복합적으로 만든 셈이야. 춘향이만 해도 양갓집 규수로 자란 아이가 아니니까 야성도 있어야 되고, 기생 딸로서는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기품이나 지성이 있어 보여야 돼. 또 몽룡과 놀 때는 요염하기도 해야 되고. 몽룡이는 수재이긴 하지만 춘향이한테 반해서 바로 달려들 정도면 그만큼 한량이기도 해야 되고, 나중에 어사 모습에는 정의로운 지식인 모습도 있어야 되거든. 변학도도 어떤 데선 색광처럼만 알려져 있지만, 그 시대에 이만한 지위에 오른 건 대단한 엘리트란 뜻이고, 또 그만한 무게가 있어야 되는 거고.

김명곤 | 캐릭터 묘사가 다른 영화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 때문에도 고민이 많으셨을 거예요.

임권택 | 판소리 자체가 인물의 감정을 워낙 충실히 전달하니까, 특별히 심경 묘사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나는 자꾸 옛날 방식에 끌리는 거야. 지금까진 연기자의 마음을 쫓아가면서 영화 찍잖아. 그런데 이런저런 장치로 심리를 표현해야 되는데, 우리는 창을 한 거잖아. 춘향이 곤장 맞는 십장가 장면이 어려웠어. 기품있던 처자가 곤장 맞으면서 갑자기 일자로 아뢰리다, 이자로 아뢰리다 하면서 판소리투로 대사를 하거든. 옛날 같으면 춘향이의 고통스런 표정연기를 시켰을 거야. 실제로 그렇게 만들고 싶은 유혹이 늘 따라. 결국 내가 택한 건 이렇게 큰 관료 사회 앞에서 춘향의 저항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보여주고, 전체적으로는 판소리의 리듬으로 가는 방식이었어. 그래서 춘향이를 정면으로 잡지 않고 뒤에서 동헌 전체를 잡은 거야. 이게 어색할 수도 있지만, 난 결국 판소리의 흥을 살릴 수 있다면 드라마로는 어색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인 거야. 이게 안 통했으면, 난 완전히 망하는 거야. (웃음)

김명곤 | 시나리오에서도 십장가가 큰 고민이었어요. 이걸 어디까지 연기로 하고, 어디까질 소리로 해야 되는지.

임권택 | 연기자들은 오죽 했겠어. 이게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김명곤 | 그래요. 나도 배우라서 그런 걸 느꼈는데, 모든 배우들이 무지 곤혹스러웠을 거예요. 고통을 소리로 표현한다는 건 상식적 연기로는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임권택 | 애들이 힘들었지. 다른 배우들은 소리를 아는 사람이잖아.

김명곤

김명곤 | 월매(김성녀), 방자(김학용)가 소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고, 포졸들도 우리 극단에서 10년 이상 우리 가락을 익힌 사람들이니까, 그 리듬을 탈 수 있었던 거지요.

임권택 | 춘향이 몽룡이는 죽을 맛이지. 연기도 처음인데다, 듣도 보도 못한 연기를 시키니까. 그런데 애들도 사랑가 할 때 고생 죽도록 한번 하고 나니까, 적응이 하더라고. 연기 말고도 보통 영화하고 너무 다르니까 어리둥절해 하는 게 많았지. 본래 적성가 배경이 단오날인데, 소리에선 보름달이 뜨고 3월에서 5월까지 피는 꽃이 한꺼번에 피어 있는 거야. 이게 말이 안 되는데, 난 이런 거 결국 다 넣었어. 처음엔 배제하려고 했는데, 중요한 게 그게 아니더라고. 우리 조상들이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닐 거고, 이게 흥이다 싶었던 거지. 이걸 살리는 게 판소리고.

김명곤 | 확실히 판소리에는 부분의 독자성이라는 게 있어요.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안 맞고 엉터리지만, 그 대목 안에서는 어울리는 그런 장치들이 많거든요. 이건 판소리가 항상 완창으로 불리워져 온 게 아니라, 적성가면 적성가, 사랑가면 사랑가, 이렇게 나뉘져서 전승되면서 각 창마다 독자성이 강해졌어요.

임권택 | 4시간반짜리를 항상 완창하질 않으니까, 그렇게 된 건데, 나는 골치 아팠던 게, 영화는 두시간 안에 다 드러나잖아. 안 맞는 걸 알고서도 일부러 그걸 집어넣었는데, 이거 엉터리로 보이기 시작하면 난 망하는 거야. 그래도 그것 가지고 욕하는 사람은 아직 없으니까 다행인 거지.

김명곤 | 판소리는 이야기에도 허술한 게 많죠. 사또였던 몽룡 아버지가 몽룡 데리고 떠난 뒤에 몽룡이 과거 급제해서 벼슬 살다가 어사로 내려오려면 최소한 3년은 걸리거든요. 급제하고 바로 어사가 되는 경우는 없으니까. 판소리엔 몽룡 아버지 후임으로 변학도 부임하는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변학도는 오자마자 춘향이 소문을 듣고 수청을 강요하거든요.

임권택 | 그래서 시나리오에서 변학도 부임하기 전에 판소리엔 없는 사또 한사람을 끼워넣은 거잖아. 여하튼 골치아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 <춘향뎐> 만들면서 이번에 알게 된 건데, 그동안 엉터리 고증이 너무 많았어. 옥사는 그래도 80년 전까지 있었고 뒤져보면 자료도 없지 않은데, 그동안 사각형 옥사를 만들고 그나마 그걸 동헌 안에 두잖아. 실은 원형 옥사였고, 위치도 동헌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데거든. 이런 거 하나하나 잡아내면서 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이게 내 복인 게, 사람들이 너무 헌신적으로 도와준 거야. 어떤 정도냐 하면, 춘향이 집에 현판이 있잖아. 그게 춘향이 글씬데, 그건 너무 잘 써도 안 되고 너무 못 써도 안 돼. 우리 영화에 서화쪽을 맡아준 하석 선생이 제자 중에서 서예대회에 입상한 16살짜리 여자애한테 시킨 글씨야. 보통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글씨 보는 사람들은 아 저게 16살짜리가 잘 쓸 수 있는 글씨구나 하고 알게 되는 거지. 학계, 문화계에서 도움 받은 걸로 치면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몽룡이 글씨 쓰는 건 대역인데, 아 이 사람이 나이 40이 넘었는데 골격이나 얼굴 모습이 조승우하고 너무 닮은 거야. 과거 시험 치를 때는 거의 정면에서 찍었다니까. 내 복이야. 난 이게 <서편제> 후광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판소리 영화 만들었고, 이제 또 <춘향뎐> 하겠다고 하니까, 그렇게들 열성적으로 도와준 거야. MBC 미술센터도 적자 생각하고 일해준 거니까. <서편제> 전까지는 우리 영화에 대해서 그렇게 관용적이진 않았거든. 성균관에서도 나와서 고증을 해줬어. 어쨌든 내가 최고로 호사를 했어.

김명곤 | CG도 아주 감쪽같이 써서 놀랐어요.

임권택 | 어제 어떤 영화기자가 나 영화기자 그만둬야겠다, 그래서 왜 그러냐 물었더니, CG를 썼다고 하는데, 어디를 썼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자격없는 거 아니냐, 그러더라고. 사람들이 제일 많이 속아넘어가는 게 변사또 행렬이 남원성에 들어가는 거야. 저것도 참 세트 잘 지었다고 누가 그러더라고. 그걸 세트로 만들었으면 우리 제작비 반은 먹었을 거야. 그런데 그거 이렇게 저렇게 찍어서 합성한 거거든. CG를 멋있게 보이려고 쓴 게 아니라, 필요한데 지금은 없어진 걸 찍으려고 할 수 없이 쓴 거긴 하지만, 내가 봐도 놀라워. 하늘에 매나 도깨비불도 마찬가지고.

김명곤 | 도깨비불은 유머러스했어요.

임권택 | 그건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한 거야. 소리에 그게 나오니까, 꼭 넣을 필요가 없지만 구경이나 해보라고 만든 거지. 그런데, 그거 만들 때 문제가 있었어. CG팀이 도깨비불을 본 적이 없는 거야. 통틀어도 나하고 정일성 기사만 어릴 때 본 거야. 문제는 우리 둘이 기억하는 도깨비불이 조금 다른 거야. 사실은 영화에 나온 도깨비불은 내가 기억하는 거하고 좀 달라. 그래도 별 문제 아니지. 우리 얘기 들은 지금 CG 하는 사람들의 심성이 반영된 거니까.

김명곤 | 청중 장면을 넣는 데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임권택 | 사람들이 그런 얼빠진 구상이 어딨느냐고 그러더라고. 말이 안 된다는 거야. 그런데 나는 소리판이 지금 왜 필요한 것이냐를 이게 소리판이 만들어낸 거다라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 죽어도 넣겠다고 내가 한 거지. 해외에서도 이게 없으면 이해못할 사람이 많아. 예컨대, 추임새로 ‘얼쑤, 좋다’ 같은 게 들어가는데, 이게 십장가 대목처럼 아주 비장한 장면에서도 들어가거든. 이게 기분 좋아서가 아니라 판소리 특유의 흥이라는 걸 알리려면 소리 공연에서 나온거라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제일 중요한 건 소리가 지금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그래도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줄인 거야. 문제는 청중 추임새 때는 소리가 너무 거칠어서, 해외에 내보낼 때는 추임새 소리를 다시 만들려고 해.

김명곤 | 여하튼 춘향전은 수없이 변해왔고, 임권택의 <춘향뎐>은 또다른 춘향전이 된 거라고 봐요.

임권택 | 이게 내가 만든 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 문화가 만들고, 또 같이 일한 사람들이 같이 만든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봐주면 좋겠어. 너무 많은 사람들의 공이 들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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