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강원도 깊은 산골에 동막골이라는 마을이 있었어요. 먹을 걸 많이 주는 게 최고라고 믿는 촌장님이 이끄시는 그 마을엔 집나간 아빠가 보고 싶은 동구와 수줍은 동구 엄마와 언제나 꽃을 꽂고 다니는 여일이와 많은 사람들이 살았답니다. 어느 날 마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은 스씨요 이름은 미스인 미국 군인이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서울말 쓰는 군인들이 한떼, 북쪽말 쓰는 군인들이 또 한떼, 몰려왔답니다. 그 사람들은 밤새껏 싸우더니 조금씩 친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이상한 돌멩이가 불을 뿜어서 양식 쌓아둔 곳간이 몽땅 날아가버리긴 했지만요, 건장하고 마음 착한 바깥 사람들은 밭도 열심히 갈고 감자밭을 망치는 멧돼지도 잡아주었어요. 곳간을 채우고선 슬픈 얼굴로 떠나버린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꼭 다시 돌아오라고 했는데. 그들이 왜 어떻게 동막골에 들어왔고 떠나갔는지 알고 싶습니다.
탄생과 준비
동막골의 순수함이 기적을 낳았다
평소 장진 감독의 팬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그에게 인사를 건넸던 박광현 감독은 며칠 뒤에 <내 나이키> 연출 제의를 받았다. 냉큼 받아들였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두 감독은 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잡았고, 모두가 의심하며 도리질하는 <웰컴 투 동막골>을 끝까지 밀고가는, 제작자와 감독으로 남기에 이르렀다. “장진 감독과 나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자주 싸운다. 그러다보면 이상하게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곤 한다.” 장편을 준비하던 박광현 감독이 희곡 <웰컴 투 동막골>을 건네받으며 탐탁지 않아 했던 것도, 그런데도 읽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박광현 감독은 언어유희에 능숙한 장진 감독의 희곡에서 자연에 섞여들어간 사람들과 그들이 치유해주는 상처를 발견했고 원작과는 다른 색채를 더할 여지 또한 발견했다.
“이 영화의 키워드를 묻는다면 나비와 여일이라고 답하겠다.” 생각보다 지루했던 각색과정에서 박광현 감독은 순백에 가까운 두 가지 존재로 동막골을 감싸안았다. 여린 날개를 가진 나비들은 낮은 허공을 맴돌며 전쟁터에서 거칠어진 숨결을 쓰다듬지만, 침입자들을 향해선 분노를 내뿜는다. 그들은 동막골의 수호신이다. 나비처럼 순수한, 자연 그대로인 영혼이, 여일이다. 장진 감독의 오랜 천사였던 이연에서 이름을 바꾼 여일은 미쳤다고들 하는 여론과는 다르게 그저 무구한 소녀다. 비를 맞고 비를 마시고 비에 젖는. “신비한 마을”이라는 단어를 한타쯤 쏟아내던 박광현 감독은 완벽하게 고립돼 있으나 외롭지 않은 공간을 창조한 듯하다. 그곳에선 총알도 힘을 잃는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편에 순수가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재기가 있다. 박광현 감독은 각색과 비주얼 슈퍼바이저를 겸한 김중과 함께(박광현 감독은 광고회사에 들어가려고 했던, 역시 모르는 사이인 그에게, 문득 영화 이야기를 건넸다고 한다) 마을 하나를 충분히 건사할 만한 기초공사를 다졌다. 먼저 역사가 필요했다. “조선시대 말기 즈음에 10여 가구 정도가 산속으로 피난을 갔을 것이다. 그들이 동막골을 이루었고 바깥 세상과는 다른 그들만의 진화과정을 거쳤다고 상상했다.” 무인도에서 새로운 인류가 진화해가는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갈라파고스>처럼, 동막골은 유일무이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저승길을 밝혀주는 호박등, 동막골만의 노랫가락, 착하다는 세속의 어휘가 무색한 심성, 고기를 먹지 않는 순한 습관, 장대 위에 다리를 걸치고 정자나무 주변을 휘젓는 한밤의 잔치. “아직까지 내게 영화는 꿈”이라고 말하는 박광현 감독은 꿈결같은 낙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데뷔작을 만드는 감독과 프로듀서의 조합을 믿어주지 않았다. 제작비를 낮추라고 요구했던 투자사가 손을 뗐고, 영화 찍는 내내 화살처럼 박히는 불신의 시선이 맴돌았다.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겠다고 승낙한 건, 기적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는 오직 그를 위해 번역한 일어 시나리오를 보고선 <웰컴 투 동막골>에 음악을 주었고 엔딩 크레딧에 들어갈 선율까지 소홀한 부분없이 채워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