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캐릭터
연극 <웰컴 투 동막골> 배우들이 기둥 역할
동막골에는 몇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공동각색자 김중은 “40여 가구쯤, 자급자족을 하려면 그 정도 인원이 필요하니까”라고 답했다. 거기에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군인 여섯명까지 덧붙이면 한품에 건사하기 힘든 인구. 재능과 믿음을 모두 가진 배우로 그 자리를 채우기란 쉽지 않았을 테지만 감독과 프로듀서는 캐스팅 과정에선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연극 <웰컴 투 동막골>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기본이 되어준 탓이기도 했다.
고집 센 북한군 소년 병사 서택기를 연기한 류덕환은 우연하게도 얼마 전에야 <내 나이키>를 본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것이다. 박광현 감독은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 싶어하는 소년으로 <시네마 천국>의 토토처럼 해맑은 눈동자를 가진 배우를 원했다. 그러나 예쁜 아이들은 연기를 못했고 연출부가 데려온 재능있는 소년은 눈이 너무 작았다(류덕환은 그 무렵 <전원일기>에 복길이 동생 순길이로 출연 중이었다). “평소 공부 잘하는 사람에게 열등감이 조금 있었던” 박광현 감독은 영리하고 어른스럽게 연기하는 우등생 소년을 캐스팅했고, 이번엔 그를 위해 택기의 나이까지 깎았다. “류덕환의 나이가 너무 어려 망설였는데 우연히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소년병의 사진을 봤다. 박박 깎은 머리와 가녀린 몸이 안쓰러웠다.” 지금 고3인 류덕환은 연극에선 아홉살 먹은 꼬마 동구를 연기했을 정도로 작지만 여일을 향한 애틋한 감정을 품기엔 조금도 작아 보이지 않는다.
여일의 캐스팅은 아마도 가장 난감한 숙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몇몇 여배우가 보석 같은 소녀라고는 해도 꾸미지 않은 모양새로 산천을 뛰노는 미친 여인을 마다했다. 강혜정을 발견한 사람은 박광현 감독이었다. 그는 CF 촬영장에 놀러갔다가 여일을 닮은 강혜정을 보았다. 빗물을 받아먹고 버선을 벗어 젖은 얼굴을 닦는 건 모두 강혜정의 어릴 적 습관. 조명부는 메이크업의 도움 없이도 그녀가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핵심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여일이 등장하는 대목만 되면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실제 인물이 영화에 투영된 건 북한군 하사 장영희도 비슷하다. <내 나이키>로 박광현과 장진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임하룡은 연극에서도 장영희를 연기했고 스스로 자신과 닮은 부분이 많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장영희 또한 임하룡과 겹친다. 그는 주변 사람을 챙기고 허물없이 말 사이에 농담을 섞고 푸근하게 마을 사람들과 어울린다. 장편은 처음인 신인감독이어서 캐릭터를 만들기가 어려웠다는 박광현 감독은 그렇게 배우들로부터 거름과 물을 얻어 캐릭터를 키울 수 있었다.
정재영과 신하균은 60여명의 배우들이 바글대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도드라지지 않게 무게를 싣는 두개의 추와도 같았다. 같은 배역을 맡은 신하균은 스케줄이 지연되는 중에도 영화를 기다려주었고, 연극 공연 때문에 일정이 맞지 않아 애를 태웠던 정재영은 무섭게 생겼지만 은근히 정이 많은 리수화로 합류했다. 그들이 진가를 발한 순간은 지척에서 폭탄이 터지는 마지막 폭격장면이었다. 가짜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다 해도 척추까지 흔들리는 폭발음을 들으며 웃음이 나오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재영과 신하균과 류덕환은, 환하게 웃었다. 동막골 사람들은 다섯명의 군인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는 사실을 결코 모르겠지만, 그 웃음이 있으므로, 이 영화는 해피엔드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