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웰컴 투 동막골>은 어떻게 태어났나 [2] - 세트, 특수효과
2005-08-02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동막골 세트와 로케이션

해남에서 평창까지, 주민들은 축지법의 달인?

정자나무

동막골은 산속에 안겨 있는 마을이다. 평탄한 길로 돌아가자면 하루가 넘게 걸리는 두메산골. 수백년 묵은 정자나무 둥치 아래 너와집 몇채가 아이들처럼 쪼그리고 모여앉은 동막골엔, 한눈에 보이진 않아도, 감자밭과 호박등이 늘어선 오솔길과 풀썰매 타는 언덕배기도 마당처럼 딸려 있다. 무척이나 조그맣다. 그러나 <웰컴 투 동막골> 제작진은 이 작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전국을 밟고 다녔다. 집터는 강원도 평창에 있지만, 메밀꽃은 전라도 고창에서 피었고, 호박등은 해남 대흥사 산길에 꽂아두었으니, 주민들은 축지법의 달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예쁜 것들을 좋아하는 박광현 감독과 비주얼 슈퍼바이저 김중은 동막골 안에 초가집이 아니라 삼척에서 발견한 너와집을 들어앉혔다. 한장한장 굴피를 겹쳐 잇고 틈새에선 덩굴이 피어나는 너와지붕, 폐가에서 주워모아 세월의 흔적이 밴 기둥과 마루, 벽난로처럼 우묵하게 들어가 한겨울 안방 화로 노릇을 하는 코담, 한가롭게 바람을 맞고 햇볕을 쪼이는 옥수수 다발. <웰컴 투 동막골>은 눈여겨보는 이 없던 시골집을 단장해 구름 속에서 꺼내온 듯한 낙원의 오두막으로 내놓은 것이다. 김중은 “전에는 한국적인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10년을 살다보니 그 아름다움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는 말로 창조에 가까운 재발견을 설명했다.

마을을 둘러싼 숲길을 타넘으면 방금 붓질을 끝낸 것처럼 선명한 녹색 풀밭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풀밭은 정말 물감으로 칠한 것이다. 군인과 아이들이 어울려 풀썰매를 타는 언덕은 이 세상 같지 않은 색채를 가져야 했고, 컴퓨터그래픽에만 맡겨둘 수는 없어서, 제작진은 식용색소로 시든 풀밭을 뒤덮었다. 페인트가 아니라 식용색소를 쓴 건 그 풀밭이 한일목장의 소들이 풀을 뜯는 밥상이었기 때문이다. 확보해놓은 장소가 계절 때문에 변해버린 경우는 이 밖에도 허다했다. 동막골 주민들은 죽은 이웃을 위해 묘비를 세우는 대신 호박등을 파고 음식을 차려놓는다. 애초 박광현 감독은 갈대밭 사이에 허수아비를 꽂으려고 했지만 어느덧 겨울이 되어 갈대가 시들어버렸다. “허허벌판에 허수아비를 세웠더니 흉측하기만 했다. 그래서 호박등으로 바꿨는데 오히려 잘된 것 같다. 지금의 대흥사 산길은 정일성 촬영감독(<취화선> <춘향뎐>)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는 곳이다.” 두루마리가 풀려나가듯 이어지는 꿈속의 풍경. <웰컴 투 동막골>은 그 꿈길을 따라 마지막 전쟁터로 발을 딛는다.

호박등길
감자밭

촌장집
메밀밭

국군과 북한군 다섯명은 꿈같았으나 덧없지 않았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눈밭에 기관총을 세우고 참호를 구축한다.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동막골을 구하려는 이 눈밭의 전투는 2005년 1월 “강원도니까 눈이 오긴 오겠지”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기다려 얻어냈다. 그러나 문제는 바람이었다. 밤 사이 쌓인 눈은 바람에 날아가 흔적도 없는데, 다섯명이 수십대의 전투기에 맞서 싸우는 장면이 괜찮아 보이려면, 여백을 메워줄 눈이 필요했다. 눈이 녹지 않은 땅은 그대로 얼어버려 차량으로 장비를 나를 수가 없었다. 대충하라고 붙잡는 손길이 많았지만, 횡계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제작진은 남아 있는 눈을 긁어다 눈밭을 만들었고, 세 군데 다른 장소로 옮겨다니며 하나의 전쟁터로 끼워맞추었다. 그 덕분에 지켜야만 하는 무언가를 갖게 된 군인들의 등 뒤로 눈가루가 흩날릴 수 있었고 무명의 시신을 덮는 하얀 무덤도 지어줄 수 있었다.

어쩌면 너덜너덜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방랑기가 아닐까. 그러나 <웰컴 투 동막골> 제작진은 떠돌이 티를 내지 않고서 바깥이라고는 모르는 채 붙박이로 살아온 마을을 창조했다. 그들이 한달 반 동안 굴곡을 고르고 다듬어 만들었다는 평창 산길을 따라오르면, 군인과 주민들이 떠난 동막골이, 아직도 오롯이 남아 있다고 한다.

특수효과와 CG

수류탄으로 팝콘 튀긴 사연

자전거가 둥근달 위로 날아가던 <내 나이키>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지. <E.T.>를 인용한 그 장면을 보고 “감독님, 제가 그때 실소를 금치 못했어요”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지만, 나이키 운동화를 가질 수 있게 된 소년의 벅찬 마음은 정말 그러했을 것이다. 때로 마음은 현실을 뛰어넘으므로. 박광현 감독은 판타지를 그렇게만 아껴서 사용한다. 그에게 판타지는 직설화법이 무용해질 때나 기나긴 드라마를 한순간에 압축해야 할 때에 꺼내드는 와일드 카드다.

애니메이션처럼도 보이는 멧돼지 사냥 장면이 그러하다. 북한군과 국군, 미군이 멧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은 굳건한 적대감을 찰나에 허무는 대목.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지만 한컷한컷 정지와 지연이 반복되면서 군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구하고 힘을 모은다. 이 멧돼지는 진짜다. 블루 스크린 앞에 멧돼지 우리를 두고 배우들은 “최고의 표정”을 뽑아내라는 주문을 받았다. 수줍은 신하균이 난감해하지 않았을까. 박광현 감독은 “다들 신나했다. 오버하라고 하니까 좋아들하더라”라며 존재하지도 않는 위협 앞에 놓인 배우들의 연기를 전했다. 슈퍼맨처럼 북한군 병사 서택기를 낚아채 날아가는 국군 소위 표현철, 스미스 대위의 목발을 받아 코난처럼 멧돼지 목에 내리꽂는 북한군 상위 리수화, 야생의 북소리처럼 울리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 주변에선 느닷없다고 걱정했던 이 장면은 현실에선 불가능한 해빙기를 끌고 들어올 수 있었다.

제작진이 아끼는 팝콘의 눈발도 한순간의 환상이되 현실의 동인이 된다. 수류탄이 곳간으로 굴러떨어지면서 폭발하니 옥수수가 공중으로 솟아올라 팝콘이 되어 눈처럼 흩날린다.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 위에서 옥수수가 한알한알 꽃을 피우는 이 장면은 접사촬영한 팝콘의 이미지에 컴퓨터그래픽을 덧입혔다. 그렇게 일년 양식을 날리는 바람에 군인들은 같은 밭줄기를 갈고 캐며 농사일을 도와야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강원도의 거센 바람은 비록 철골 위에 플라스틱을 덧입혔다고는 하지만 1t이 넘는 비행기 잔해를 뒤집어놓았다. 스미스가 동막골에 추락한 시점은 가을. 망가진 비행기를 고치고 나니까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이 되었다. 풀밭 위에 비행기가 가로놓인 <웰컴 투 동막골>의 무심한 풍경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손을 보아 계절을 뒤바꾼 노고의 결과물이다. 여기에서 작은 옥에 티. <웰컴 투 동막골>의 폭격기는 유럽에서 쓰였던 P-47인데 한국전쟁 당시 비행기였던 머스탱이 “조금 촌스럽게 생겨서” 과감하게 디자인에 손을 들어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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