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사우스 파크>와 쓰레기 문화 [1]
2000-01-25
글 : 황혜림
금기에의 냉소계보, <사우스 파크>에서 <심슨 가족>까지

불경한 카타르시스의 태풍, “오 마이 갓!”

사시사철 봉우리에 눈을 얹은 로키산맥을 끼고 미국 콜로라도주 한켠에 자리잡은 가상의 마을 사우스 파크. 이 마을은 미국 애니메이션이 가닿은 표현의 신천지다. 내용의 새로움이라기보다 그 표현의 수위와 강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사우스 파크>는 동글동글한 2등신 꼬마 4명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다. 백인 깡촌 마을에서 살아가는 스탠, 카트먼, 카일, 케니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 동갑내기들. 하지만 아동용이라고 방심해선 안된다. 집, 가족, 학교, 선생님, 친구 등에 둘러싸인 평범한 일상은 곧 모순과 폭력의 지뢰밭이 된다. 아이들은 입만 열면 욕설이 튀어나오고, 엄마와 선생님과 정부와 의사 등 그 모든 기성의 권위는 발밑에 까뭉개지고, 흑인과 동성애자와 그 모든 소수자들이 놀림감이 되는 성인 만화? 그런것을 미국 TV와 극장은 어떻게 허용한 거지?

하지만 흥미진진한 것은, 기성의 모든 가치를 뒤집어 보이는 이 애니메이션이 지닌 탁월한 풍자와 통찰의 힘이다. 이 TV시리즈는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극장판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으며, 주인공인 네 악동은 계속 가장 잘 나가는 캐릭터 상품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극장용 <사우스 파크>는 최근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됐다.

귀여운 초등학생, 그들을 얕보지 말라

<사우스 파크>는 평범한 상식을 아연실색게 하는 데 5분이 채 안 걸린다. “하늘에는 새떼가 날고, 사슴도 몇 마리 뛰어놀아요. 비옥한 땅 위에 내린 새하얀 눈, 내 고요한 산골 마을의 아침이라네…” 하고 스탠이 노래를 부르는 도입부쯤에서는, 그야말로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아침 정경이군 하는 착각에 잠시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심 이를 ‘미녀’ 벨이 마을을 지나며 온갖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미녀와 야수>의 경쾌한 풍경에 겹쳐 놓았다면 재빨리 호흡을 골라두는 게 좋다. 엄마에게 8달러를 얻어 코미디 영화를 보러 나서는 스탠의 걸음 뒤로 묘한 전운이 감도니 말이다. 교회에 안 가고 스탠과 영화를 보러 가는 케니에게 엄마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면 사탄과 잘해보라며 노기어린 악담을 퍼붓고, 카일은 TV시리즈에서 그래왔듯 어린 동생 아이크를 발로 뻥 찬 뒤 친구들에게 합류한다.

넷이 의기투합해서 보러가는 영화는 평소 좋아하는 코미디언 테렌스와 필립이 출연한 캐나다 영화 <불타는 엉덩짝>. 부모동반관람가인 R등급 영화라 극장매표원에게 저지당하지만, 보드카값으로 동네 거지를 매수해 입장에 성공한 아이들은 앞줄에 올망졸망 앉아 테렌스와 필립의 황당한 개그에 넋을 잃고 빠져든다. 서로 방귀 대결을 벌인다든지, “돼지랑 교미할 놈”, “똥이나 처먹을 놈” 하고 지저분한 욕설을 퍼부으며 치고받는 저질 코미디에 아이들은 감동한 분위기다. 극장문을 나선 아이들은 “빌어먹을”을 입에 달고 다니고 “상담 선생님께 가보지 그러니?” 하는 선생님의 충고에 “내 밑이나 핥는 게 어때요?”라고 응수한다. 영화가 아이들을 망쳤다고 생각한 어머니들은 학부모회의를 열고, 카일의 엄마 실라 등을 필두로 이 영화를 만든 캐나다에 책임을 돌린다. 실라를 중심으로 '캐나다에 반대하는 어머니회'(Mother Against Canada)가 결성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미국 정부가 문제의 캐나다인 저질 코미디언 테렌스와 필립을 체포하자, 캐나다가 보복으로 할리우드 스타 볼드윈가를 폭격하면서 전쟁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레지스탕스를 결성해 사형 위기에 처한 테렌스와 필립을 구하러 나서고, 사고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케니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사탄과 후세인의 야욕을 친구들에게 알리기 위해 애쓴다.

무삭제판, 지옥의 연인 사탄과 후세인

극장용 장편 <사우스 파크>는 미국의 위성TV 코미디센트럴의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사우스 파크>를 바탕으로 한다. 97년 8월 시작된 TV시리즈 <사우스 파크>는 이제 3번째 시즌의 막을 내려가고 있다. 방송사 관계자는 “<CNN>이 시청률 1.4를 얻기 위해서는 전세계적인 재앙이 필요”한데 <사우스 파크> 크리스마스 방영분이 시청률 5.4로 코미디센트럴 사상 최고를 기록한 것은 경악할만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스탠의 동성애자인 개를 연기한 조지 클루니를 비롯해 나타샤 헨스트리지, 엘튼 존과 오지 오스본, 제니퍼 애니스톤 등 많은 연예계 스타들이 목소리 손님으로 거쳐갔다.

극장판은 원제가 <사우스 파크: 더 크고 길어진 무삭제판>인 만큼, 사건의 규모가 더 커지고 TV판에서는 좀 자제됐던 욕설들이 그야말로 살벌하게 무삭제로 난무한다. 폭력과 외설, 불경함의 수위도 한층 높아졌다. 한 육군 장성은 윈도98이 너무 느리다며 빌 게이츠를 쏴 죽이고, 좋아하는 여자애만 보면 토악질을 하는 스탠은 여자에게 잘 보이려면 클리토리스를 찾으라는 흑인 요리사의 말을 듣고는 사람들에게 "혹시 클리토리스 못 봤나요?"하고 묻고 다닌다. 요리사는 사우스 파크 어른 중 거의 유일하게 삶의 지혜를 주는 사람이다. 70년대 솔 음악의 상징 아이작 헤이스가 목소리를 빌려준 요리사는, 한마디 충고를 건네기 전에 항상 성적인 함의를 지닌 노래를 걸쭉하게 부르곤 한다.

이미 보통 비위는 넘는 수위에서, 방귀에 불을 붙이다가 심한 화상을 입은 케니의 수술이나 지옥의 연인 사탄과 사담 후세인에 이르면 불경한 농담은 극을 모른다. 케니의 내장과 각종 기관을 마구 쑤시며 피를 튀기던 의사는 급기야 심장이 멈추자 심장을 데우기 위해 오븐에 넣었다가 오븐 속에 있던 구운 감자를 심장 대신 수술해 넣는다. 지옥에서, 틈만 나면 섹스나 하자고 덤비는 후세인과 감수성 예민한 사탄 사이의 동성애관계도 웬만한 상상력의 틀을 뛰어넘는다.

이 악동들의 판타지에서는, 흑인이든, 유대인이든, 가톨릭이든, 가난하건 부자건,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혹은 양성애자건, 미국문화 속에 산재한 모든 요소가 무차별적인 냉소와 풍자의 대상이랄까. 윤리적이건, 종교적이건, 성적이건, 정치적이건, 꼬마 4인방의 놀이 도마에 오르면 자근자근 욕설과 뾰족뾰족한 풍자로 다져버리는 <사우스 파크>는 무차별적이고 무정부적인 냉소주의의 유희로 한층 발칙하게 불경과 외설의 금기를 뛰어넘는다.

<사우스 파크> 감독은?

키아로스타미의 정반대편, 악동시리즈의 산실

<사우스 파크>의 세계를 꾸려나가며 살벌한 냉소를 쏟아내는 감독은 트레이 파커(31)와 매트 스톤(29)이다. 콜로라도 대학 동창생인 두 사람은 각본과 연출에서 공동작업을 해왔다. <사우스 파크>의 원형은 91년에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의 정신>(The Spirit of Christmas). 4명의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이 살아나 마을을 위협하는데, 두 아이는 눈사람 괴물에게 죽고, 나머지 아이들이 아기 예수와 함께 괴물을 물리친다.

95년 리메이크작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사우스 파크>의 맹아. 이 5분짜리 단편애니메이션은 <예수 대 산타>라고도 알려져 있다. 내일이 자신의 생일이고 그래서 의미있다는 예수와 크리스마스는 선물을 주고 아이들을 기쁘게 하는 날이라는 산타가 싸움을 벌이고, 아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때 훗날 아이들의 삶에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는, “브라이언 보이타노라면 어떻게 했을까”가 등장한다. 고민하는 아이들 앞에 등장한 보이타노는 예수와 산타 중 누가 이길 것이냐를 고민할 게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를 고민하라고 충고한다. 결론은? 중요한 건 하나, 크리스천이든, 유대인이든,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선물’이라는 게 아이들의 결론이다. 이 작품은 97년 LA비평가협회상에서 디즈니의 <헤라클레스>와 함께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꼽혔다.

색판지를 오린 종이 컷아웃을 활용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특유의 조잡하고 단순한 그림과 캐릭터도 틀을 굳혀갔다. 두 사람이 단시간에 손쉽게 만들어낸 듯 화려하다기보다는 통통 튀어다닐 듯 만화적인 움직임과 둥그스름한 윤곽, 단순하면서도 악동 같은 표정 등등. 파커가 스탠과 카트만 외 다수, 스톤이 카일과 항상 모자를 깊숙이 뒤집어써서 말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케니 외 다수를 목소리연기한다. 이들은 또한 컨트리풍의 오프닝 음악을 비롯해 대부분의 음악을 직접 작사, 작곡하기도 한 팔방미인. 특히 장편의 경우, 파커와 작곡가 마이크 샤이먼의 공동작업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디즈니, 특히 앨런 메켄의 전형을 훌륭하게 패러디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장편은 99년 LA 비평가협회에서 최우수음악상을, 뉴욕비평가집단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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