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메의 성서가 되어버린 <아키라>로부터 16년. 오토모 가쓰히로의 두 번째 장편 아니메 <스팀보이>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작기간 10년, 일본 아니메 역사상 최고인 제작비 24억엔, 역시 아니메 역사상 최고의 작화 수 18만장. <스팀보이>는 무시무시한 규모로 완성된 일본 아니메 기술력과 자본력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키라>와 <스팀보이>를 중심으로 고집스럽게 자신의 세계를 지켜온 완벽주의자의 세계를 살펴보고, 도쿄에서 날아온 서면 인터뷰를 싣는다.
2003년 여름. 영국의 어느 지방도시. 아이맥스 극장 앞에 20대 젊은이 서너명이 모여 있다. 극장에는 “<아키라> 아이맥스 재개봉”이라는 문구가 큼직하다. 두리번거리던 젊은이 중 하나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한다. 6명의 젊은이들은 하얀 알약을 하나씩 삼키고 극장으로 들어섰다. 극장 안에는 10대 후반에서 3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경배를 드리듯 앉아 있다. 몇몇의 눈동자는 이미 몽롱하다. 존 레넌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1년 365일 성전에서 상영해야 할 영화라고 했던가. 이건 영화관람이라기보다는 숫제 종교의식에 가깝다.
촌스럽게 말하자면 <아키라>는 ‘컬트’다.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을 일컫는 말)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통과제의이며, 어떤 이에게는 아니메의 전부이기도 하다. 오토모 가쓰히로가 <아키라>(1988) 이후 두 번째 장편영화인 <스팀보이>로 돌아오기까지의 지난 16년 동안 <아키라>의 가치는 열광적인 팬들에 의해 거의 훼손되지 않고 신성시되어왔다. 하지만 20억엔에 가까운 초유의 제작비를 들였던 <아키라>가 일본 개봉시에도 후대의 신화를 예고했던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이 사상 최고의 기대작은 1차 배급에서 단 7억엔의 수익을 기록했고, 휘청이는 오토모의 어깨 위로 가시돋친 비평들이 쏟아져내렸다. 오히려 <아키라>는 서구 관객에 의해 수렁에서 건져져 다시 일본으로 유입된 신화였다. <아키라>는 서구에서 먼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환대받았다. 이는 일본 아니메가 특유의 지역성을 거둬내고 서구의 관객에게 재발견된 첫 번째 사례였고,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나 린 타로의 <메트로폴리스>(2001)처럼 해외를 지향한 거대 프로젝트들이 가능할 수 있는 시장적인 기반을 다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