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펑크의 자장 속에 꿈틀대는 희망
스스로가 스팀펑크(Steam-Punk) 장르에 속해 있음을 고백하는 <스팀보이>의 제목은 모호한 <아키라>에 비해 참으로 직설적이다. 스팀펑크는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실제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가상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 장르. 사이버펑크 계열의 SF작가들에게 적극 수용되어졌던 이 장르는 오랫동안 일본 아니메의 환대를 받아왔다(증기를 내뿜으며 걸어다니는 하울의 성!). 근미래를 다룬 작품들을 만들어왔던 오토모가 스팀펑크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 이유는 “<메모리즈>를 계기로 “증기기관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인터뷰의 조각들을 찾아본다면 “증기기관이야말로 진정한 인간혁명의 시작”이라거나, “내가 상상해왔던 세계를 능가하는 시대”라는 답변들을 찾을 수 있다. 오토모가 <스팀보이>에서 그리는 것은 순진할 정도로 테크놀로지에 대한 믿음이 충만했던 시대, 그래서 거리의 굶주린 올리버 트위스트들을 제대로 굽어 살피지 못했던 산업혁명의 시대다. 그 시기의 과학자들은 세계대전을 위한 악마의 도구들을 서서히 발전시키고 있었고, 런던은 하층세계와 메트로폴리스의 광채가 극단적으로 구분된 ‘네오도쿄’ 같은 괴물로 증식하고 있었다. 이는 <스팀보이>가 고색창연한 모험극의 숨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키라>의 자장 아래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오토모가 <아키라>의 영역 속에 머무르면서도 그에 대해 조금은 분열증적이고 양가적인 입장을 내보인다는 사실이다. <스팀보이>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과학기술의 공개를 반대하는 할아버지와, 인류가 결국에는 과학적 진보를 통제하는 기술을 습득할 것이라는 아버지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오토모의 비판적 문명론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오토모는 한 장면에서 주인공 레이로 하여금 과학의 힘을 자화자찬하는 아버지의 선언을 무시한 채 소녀(스칼렛)와 말싸움을 벌이도록 만든다. “솔직히 말해, 나는 <스팀보이>를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기 위한 이동장치로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것보다는 멋진 오락거리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물론 몇몇 대사들에서 굳이 메시지를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내가 고려했던 목적이 결코 아니다.” 오토모의 고백에서 감지되듯이, 거창하고 유아적인 과학적 잠언들로 가득한 <스팀보이>의 대사에서 구체적인 메시지를 얻으려는 시도는 조금 헛되기도 하다.
오히려 오토모의 지장은 파괴의 묘사에서 더욱 선명하다. 스팀볼의 힘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스팀성에 의해 파괴되는 런던의 이미지는 <아키라>의 클라이맥스와 비견될 만한 스펙터클이다. “파괴는 나의 주요한 목표다. 무언가를 파괴시키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그 사물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 당신은 그것의 외양을 지나칠 수도 있고, 혹은 속깊은 내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것은 파괴에 의해서만 보여지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오토모는 산업혁명의 아이콘이었던 만국박람회장을 두들겨 부수고, 템스강과 런던 거리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 압도적인 현실감에 숨이 멎는다. 그리고 파괴의 순간이 지나간 뒤, 오토모는 런던의 거리를 내달리는 순결한 아이들의 얼굴을 비춘다. 이 마지막 이미지는 분명 네오도쿄의 폭발 이후 오토바이를 달리며 새로운 시대로 향하던 가네다 일당(<아키라>)을 연상케 한다. 문명의 파괴는 계속되겠지만 그 파괴의 에너지가 다시 인간을 진보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아키라>에서보다도 더 긍정적인 어조로 충만해 있다.
파괴하라, 그리고 새롭게 생성하라
“솔직히, 나는 <아키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시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극장을 걸어나와버렸고, 엄청나게 실패할 졸작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를 되돌아보며 웃기도 한다.” (웃음) 오토모의 집요한 완벽주의는 기대에 어긋난 결과물을 용서할 만한 여유를 한치도 용납하지 않을것만 같다. 그런 연유로, 판권을 특정 스튜디오에 넘기지 않고 직접 ‘아키라 제작위원회’를 만들어 창작의 자유를 누리고자 했던 오토모 가쓰히로의 결벽증적 완벽주의는 ‘스팀보이 제작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재현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매쉬룸’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인재들을 모집해서 프로젝트팀을 꾸리는 방식을 애용해왔고, <스팀보이>의 기획이 시작된 ‘스튜디오 4℃’는 창작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프리랜서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별로 모여서 작업하는 제작사다. 문제는 오토모가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창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도 더디다는 사실이다. <아키라>로부터 16년이 지난 뒤에야 두 번째 장편 아니메를 탄생시킨 오토모는, 34살의 젊은이에서 50살의 장년이 되었다. 아이디어로 가득 찬 예술가에게 빠르게 흐르는 시간과 더딘 작업의 간극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지 않던가. 하지만 그런 간극이 여간해서 좁혀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오토모는 “또 다른 10년을 하나의 영화를 만드는 데 보내고 싶지는 않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토로하고 있지만, <스팀보이>에 참여했던 한 스탭의 고백처럼 “오토모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마라톤 코스를 단거리 주행의 스피드로 완주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스스로를 파괴시키며 에너지를 얻는 <아키라>와 <스팀보이>의 세계는, 완벽주의와 집념의 예술가. 오토모 가쓰히로 그 자신의 거울이다.
“나는 내가 상상한 것이 어떻게 만들어져가는지 지켜보는 것을 사랑한다. 그것이 바로 한 작품을 그리도 오랫동안 고독하게 만들 수 있는 이유다.”(오토모 가쓰히로)
오토모의 펑크 카니발
<로봇 카니발>부터 <메트로폴리스>까지 오토모 가쓰히로의 작은 걸작들
애니메이션 작가 8명이 모여 <로봇 카니발>(1987)을 만들었던 시절은, 작가들이 고유한 작품세계를 비교적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었던 OVA의 전성시대였다. 이 작품에서 오토모 가쓰히로는 ‘로봇 카니발’이라는 제목이 쓰여진 전차가 집들을 파괴하며 달리는 오프닝과 엔딩을 담당하면서 애니메이션에 입문했다. 린 타로, 가와지리 요시아키와 함께 만든 <미궁이야기>(1987) 역시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작품. 오토모가 감독한 에피소드 <공사중지명령>은 정글 속 공사현장을 지키는 남자가 공사용 로봇 집단과 살아가다가 겪는 이야기로, 기계화된 미래의 인간을 탐구하는 주제의식이 슬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오토모 세계’의 시발점이라 할 만하다. <아키라>(1988)의 흥행 실패 이후 오토모는 <노인Z>(1991)로 흥겹게 재기했다. 이 작품은 일본 후생성이 만든 간호용 컴퓨터 침대의 실험 대상이 된 노인의 폭주를 다룬 SF 중편. 주위의 물건들을 결합하며 자가증식하는 침대의 이미지는 전작인 <아키라>를 떠올리게 하며 일본 고령사회의 노인문제를 절묘한 코미디 감각으로 엮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오토모는 세 번째 옴니버스 모음집인 <메모리즈>(1995)로 본격적인 CG 실험을 시작한다. 특히 단 하나의 컷으로 22분18초간 진행되는 <대포의 거리>는 전체주의에 대한 명징한 비판의식과 새로운 아니메 기술이 아름답게 결합된 걸작이다. 이같은 기술적 실험을 총감수를 맡은 SF액션 <스프리건>(1998)에서도 시도한 오토모는, 아니메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의 원작을 바탕으로 15만장의 작화 매수와 당대 최고 수준의 CG 기술이 도입된 대작 <메트로폴리스>(2001)에 각본가로 참여했다. <은하철도 999>와 <X>의 린 타로가 연출을 맡았지만 음울한 사이버펑크적 미래도시의 묘사에서는 (데즈카 오사무의 원작에 지고 있는 빚을 차치하고서라도) 오토모의 영향력 역시 또렷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