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팀보이>와 오토모 가쓰히로 [2]
2005-08-09
글 : 김도훈

산업혁명 시대 발명가 소년의 활극 <스팀보이>

우연의 일치겠지만 오토모가 <스팀보이>를 기획한 1994년은 <아키라>가 마침내 제작비를 완전 회수한 해였다. 새로운 꿈을 품어볼 만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스팀보이>의 제작과정은 <아키라>와 여러모로 닮아 있어서, 그 고난의 세월을 묘사하려면 한권의 책을 온전히 바쳐도 불가능할 것이다(참조/ 박스2). 거쳐간 회사만도 ‘스튜디오 4℃’에서 ‘선라이즈’와 ‘프로덕션 IG’까지, 일본 최고의 아니메 제작사들이 줄줄이 개입한 뒤에야 <스팀보이>는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아키라>의 후속편이 아니다. 관객이 그같은 기대를 가지지 않고 봐주었으면 한다”는 오토모의 빈번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10여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던 대중의 기대치는 과중한 압력을 받은 증기기관처럼 스팀을 뿜어대고 있었고, 그들이 바랐던 것은 <아키라>의 뒤를 이을 아니메의 또 다른 혁명이었을 것이다.

<스팀보이>는 그처럼 과열된 기대를 단번에 충족시킬 수 있을 만한 작품은 아니다. 산업혁명이 한창인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스팀보이>는 “쥘 베른의 소설처럼 가슴 뛰는 모험을 디지털을 이용해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너무 정공법에 가까워서 <아키라>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어딘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는 와타나베 시게루 PD의 말처럼, 20세기 초적 상상력에 기원을 둔 소년 활극에 가깝다. 이유없는 두통에 시달리며 알약을 삼켜댔던 폭주족 데츠오 대신, 오토모가 소개하는 주인공은 빅토리아 시대의 발명가 집안 ‘스팀가(家)’의 순결한 소년 레이다. 그는 엄청난 규모의 보일러 없이도 에너지를 무한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증기가 압축되어 있는 기적의 발명품 스팀볼을 손에 넣게 되고, 여기에 스팀볼을 이용해서 최신예 무기를 판매하려는 미국의 ‘오하라 재단’, 재단에 반대하는 할아버지와 재단을 이용해 꿈을 이루려는 아버지의 위험한 야망이 얽혀든다(참조/ 82쪽 <스팀보이> 프리뷰).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괴력의 이미지

<아키라>의 날카로운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스팀보이> 역시 완벽주의가 빚어낸 최상의 화면을 비수처럼 관객의 망막에 내리꽂는다. 비주얼에 관한 한 오토모의 완벽주의는 익히 악명 높다. 원래 일본 아니메는 디즈니처럼 초당 24프레임을 모두 활용하지 않는다. 그만한 자본이 없는데다가 영세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제작 여건 탓도 크다. 그래서 대개 극장용은 16프레임 정도를, TV시리즈나 OVA(Original Video Animation/ 비디오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니메)의 경우에는 10프레임 정도를 사용하며, 적은 프레임 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독특한 연출법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리미티드 방식’이다. 오토모의 완벽주의는 그같은 한계에 머무르지 않았다. 일찍이 <아키라>는 초당 24프레임을 사용한 일본 최초의 ‘풀애니메이션’이었고, 사용된 작화 수만 총 13만5천매였다(이 기록은 10년이 지나서야 14만4천장의 작화를 이용한 <모노노케 히메>에 의해 깨어진다. <스팀보이>는 18만매). 풀애니메이션 기법과 극사실주의의 화풍으로 대표되는 그의 하이퍼 리얼리즘 스타일은 애니메이터와 기술자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제작자의 금고를 박박 긁어내면서 얻어낸 투쟁의 결과다. 와타나베 시게루 PD에 따르면 오토모는 “물건을 만드는 데 절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며, “작화가 엉성하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사람”이다. 오토모는 그같은 악명에 대해 “그게 바로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위한 방식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방식으로는 일할 수 없다”고 고집스레 털어놓는다. <스팀보이>의 티끌 하나 없는 듯한 완벽한 이미지들은, 지금 완벽할 수 없다면 10년을 더 기다리겠다는 오토모의 신념으로부터 완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스팀보이>는 전체의 1/4 분량에 CG가 사용되었지만 결코 CG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3D로 만들어진 장면을 2D로 정교하게 덧입혔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술은 같은 해에 공개된 <애플시드>나 그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디즈니의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2001), <아이언 자이언트>(1999) 같은 작품들에서 이미 선을 보인 적이 있다. 오토모는 늦었음을 안다. “우리가 10년 전에 그런 기법을 도입하고자 했을 때 그것은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개봉하는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혁신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되어버렸다”는 오토모의 이야기는 시대를 앞서갔으면서도 완벽주의에 의해 뒤늦게 도달한 어느 천재의 탄식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어떤 시도들도 <스팀보이>처럼 유려하게 2D와 3D의 이질감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CG를 사용하였으되 셀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온전히 간직한 <스팀보이>의 영상은 분명 오토모의 지독한 완벽주의만이 해낼 수 있는 마법이다.

10년의 간추린 제작일지

[1994년] 6월/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이 기획안을 완성. 처음에는 극장 공개용이 아니라 40분짜리 에피소드 3개를 모아놓은 OVA 기획이었음.

[1995년] 12월/<메모리즈> 개봉.

[1996년] 4월/영국으로 1주일간 로케이션 헌팅. 7월/<스팀보이> 각본 초고 완성.

[1997년] 1월/완구회사 반다이에서 정식 제작을 결정. 제작비로 12억엔(120억원) 책정. 8월/제임스 카메론과 협력 논의. 10월/반다이, 기자회견을 열어 <스팀보이> 제작을 공식발표. 11월/각본 완성.

[1998년] 8월/제임스 카메론이 “존경하는 오토모 감독에게 프로듀서로서 지시를 내리는 일은 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협력을 거절. 9월/오토모가 총감수한 <스프리건> 개봉. 혹평받음. 12월/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센트로 폴리스’ 프로덕션과 공동개발 논의. 12월/미국 각본가가 참여한다는 조건하에 ‘센트로 폴리스’가 협력 결정.

[1999년] 3월/미국 각본가가 각본을 완성. 지나치게 할리우드적인 각본에 놀란 오토모쪽이 난색 표명. ‘센트로 폴리스’와의 협력 파기. 12월/조엘 실버와 워쇼스키 형제가 <스팀보이>에 관심 표명. 조엘 실버, “어떻게 해서든 함께하고 싶다”며 제작에 참가.

[2000년] 2월/비디오 판권을 둘러싼 견해차로 조엘 실버가 퇴장. <건담> 시리즈의 제작사인 ‘선라이즈’쪽에 제작 참여 타진. 5월/콘티 완성. ‘선라이즈’가 참여 결정, 제작비를 18억엔으로 상정(97년보다 6억엔 늘어난 금액).

[2001년] 5월/<메트로폴리스> 개봉. 흥행성적 저조.

[2003년] 3월/한스 짐머에게 음악을 맡기려 했으나 높은 개런티의 압박으로 그의 제자인 스티브 자브론스키(<아일랜드> <위기의 주부들>)가 참여. 4월/포스터가 공개되면서 연내 개봉 가시화. 6월/여러 가지 이유로 개봉을 2004년으로 연기. 9월/<스팀보이>의 원화 완성. 작화에 걸린 기간은 모두 7년3개월24일. 참여한 애니메이터의 수가 100명을 넘어섬.

[2004년] 4월/모든 영상이 완성. 최종 제작비 24억엔(97년 배당되었던 금액보다 2배로 늘어난 제작비). 6월/대대적인 완성 기자회견과 시사회 개최. 7월/마침내 전국 개봉. 와타나베 PD가 속편 기획을 발표. 첫 주말 전국 4위. 속편 계획은 없었던 일로…. 9월/베니스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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