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영애의 재발견 [2]
2005-08-09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글 : 이종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이영애가 말하는 배우 이영애에 대한 오해와 진실

“더 세게 가길 원했는데 감독님이 줄여 가자고…”

낯을 많이 가릴 거라는, 또는 지적으로 난감한 질문을 잘 피해갈 거라는 선입견은 이영애의 다갈색 눈동자 앞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지그시 상대방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때로는 까르르 웃음을 던지고 때로는 신중하게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한명의 배우가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오히려 불쑥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을 하는 그에게서 엉뚱하고 장난기 많은 금자씨의 단면을 보았다. 박찬욱 감독이 양보해서 더 세게 찍을 수도 있는 걸 약하게 간 것이 아니냐는 음모성 질문부터 왜 스캔들이 없느냐는 잡담성 질문에까지 웃음을 머금고 일일이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복수하는 금자씨의 여유를 보았다. 인터뷰 중간에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절한 금자씨> 전야제 표를 잃어버렸다는 아버지에게 친절하게 일러주는 장면에서 여느 상냥하고 귀여운 여염집 딸을 보았다. 그는 소속사 없이 같은 매니저와 7년째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영화를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이영애라는 여신의 이미지 속에 어떻게 저런 그악스러운 여자가 숨을 수 있을까 싶더군요.

=인터넷에 무명으로 댓글을 다는 것과 비슷하죠. 누구나 무명으로 이름없이 상상하는 게 있잖아요. 영화 속의 금자가 이영애냐, 그럼 난감하죠. 금자랑 똑같지 않냐고 추궁하다보면 배우의 변신 폭이 좁아지지 않을까요.

-KAL기 폭파범 김현희처럼 잡혀갈 때, 자기가 범인이라고 우길 때 모습을 보며 저런 웃기는 모습, 그러니까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모습을 박찬욱 감독이 활용하려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섭지만 웃기는 여자, 또 과묵할 것 같지만 엉뚱한 여자.

=애초에 그런 부분 때문에, 영화를 선택한 주요 요인이 그런 거니까요. 하면서도 재미있었어요. 극과 극을 넘나드는. 김현희는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보신 분들이 많이 얘기하시고 추측해서 보신 분이 있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어요.

-한상궁이 나가려고 할 때 한상궁 치마를 장난으로 발로 누르고 있었다는 얘기를 독자 게시판에서 읽었어요. 원래 그런 장난기가 있나 봐요.

=저도 오늘 <씨네21>을 받아 봤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게 양미경 선배가 아니라 홍리나 선배고요. 그 선배와 재미있는 일이 많았어요.

-<대장금> 끝나갈 때 힘들어서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든 뭐든 하겠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인기도 높은데 뭐가 힘들었기에 그런 얘기를 했을까 궁금해지던데요.

=일단은 드라마라는 게 제약이 많잖아요. 나중에 2/3 분량쯤 돼서는 당일 바로 대본이 나오고 외우고 녹화하고, 80% 이상을 그렇게 했으니까 제대로 대본을 받아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거나 이런 게 많이 부족했어요. 장금이가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많은 사랑을 받으니까 조금 더 체계적으로 열심히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나중에는 어려운 대사 외우기에 급급하고 또 그걸 NG내면 시간을 지연시키게 되고 나 때문에 그런 거니까 미안하게 되고.

-<봄날은 간다>에서 가령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대합실에서 낮잠을 잔다든지, 가득 담은 밥을 유지태가 덜어주려 하자 못 먹을 것 같냐고 따지는 구석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지점 같거든요. 본인은 그런 면이 원래부터 있던 건데 남들이 못 보는 건지, 또는 자신의 연기력에 비해 과소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요.

=허진호 감독님이 많이 풀어주시는 스타일이잖아요. 현장에서 애드리브가 많았죠. (과소평가에 대해) 저는 예전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요 이제는 공감 안 해요. 제가 20대 때 처음 데뷔했을 때 30대 선배 한분이 계셨는데 연기가 너무 똑같고 변화가 없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나중에는 저 나이 되면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했어요. 초반에 그렇게 생각해서 기억이 나는데 적어도 제가 지금은 그러지는 않지 않은가,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고 그리고 처음보다 못하다는 그런 소리는 듣지는 않았다는… 그러니까 나름대로 광고 이미지에 맞춰서 천편일률적으로 제 외모나 이미지만 내세워서 드라마나 영화를 한 적도 없었고 노력해온 것만큼은 인정을 받고 싶죠. 과소평가도 원하지 않고 이거보다 더 많은 포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 만큼의 평가를 받고 싶고, 이번 영화를 계기로 죽 돌아보니까 제가 밟아왔던 길이 적어도 조금씩이라도 노력해 밟아 올라왔고 그 노력의 대가는 인정받고 싶다는 조그마한 욕심이 생겼고 그래서 그 이야기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영애씨만 생각하면 좋아 죽겠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저런 웃음을 지어줄 줄은 몰랐는데, 예전의 이영애와 다른 모습을 볼 거다, 이런 말씀을 하세요. 이런 얘기에 배우는 어떤 생각이 드나요. 그럼 우리가 선입견만 가지고 지금껏 이영애를 본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렇게 보시면 그런 거고. (웃음) 뭐 어쩌겠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돌이켜보니까 20대 때 적어도 이제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부터 아니면 그전부터라도,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고민을 했던 시기조차도, 최선을 다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 어떤 분들이 이영애가 하나의 이미지다, 뭐 아니다 그러면 할 수 없죠. 그렇게 보시면 그런 거고. 그런데 그렇게 보지 않으시는 분도 계시고, 그러니까 긍정을 할 수도 부정을 할 수도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내가 나 자신을 바라봤을 때 열심히 치열하게 차근차근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고 만족을 해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물었을 때 대답은 안 하지만 표정으로 사랑이 변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받았는데 <친절한 금자씨>에서 복수극이 끝나고 나서 클로즈업으로 우는 듯 웃는 듯 찡그린 표정이 길게 가잖아요.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컷을 어떻게 찍고 연기했나요.

=맨 처음에 편집할 때 저도 같이 감독님과 있었으니 제 부분은 같이 편집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처음엔 짧게 가셨더라고요. 감독님한테 제 의견을 얘기한 게, 그 부분만큼은 금자의 감정이 조금 더 관객에게 와닿을 수 있게 길게 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하나가 아니라 되게 복잡한 표정이잖아요, 여운이 깊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원래 조금 약했는데 조금 길게 조금 강하게 갔어요. 그 장면이 그래서 좋았어요. 현장이 추워서 집중하기도 힘들고 그랬는데 만족해요. 처음엔 원 테이크에 감독님이 오케이 하셨는데 저는 그보다 다른 방법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다시 테이크로 가서 두 번째 것이 오케이됐던 것 같아요.

-그럼 두 번째 게 첫 번째 찍은 걸 만회한 건가요.

=으으으흐. (웃음) 제가 여배우로서는 이번 작품이 미모가 막 뛰어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감독님의 미장센을 떠나서) 여배우로서 조금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지만(웃음) 그래도 제가 원해서 한 것이라서.

-안타까움이라면.

=일단 <봄날은 간다>나 <선물>처럼 곱게 안 나온 거 같아요. 피부도 그렇. (웃음) 감독님한테 영화 촬영장에서 (안 예쁘게 나오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너무 또 제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생각 안 하고 제 개인적인 바람만 앞세우는 것 같아서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근데 영화 보면 금자의 상황이나 심적인 변화를 따라간 거니까 옳다고 생각은 해요.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데요.

=충북 영동의 폐교 부분에서는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고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엔딩 부분을 끝에서 안 찍고 중간에서 찍었거든요. 감정도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힘들어서. 그런데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잘 산 것 같아요.

-여자 성우 목소리를 통해 범인 이금자의 충격적인 미모에 대한 과장된 설명이 나오죠. 저렇게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여자가 저토록 충격적으로 복수를 하다니, 그게 이 영화의 흥미인데 혹시 내가 조금만 덜 예뻤어도 내 뛰어난 연기력이 더 돋보이는 건데, 아쉽다, 이런 것은 없었나요.

=아하. 아유. 무슨 말씀이세요? (웃음) 제 스스로가 그런 걸 느낀 적은 없어요. 예전에 <내가 사는 이유>를 할 때 사람들이 제 외모하고 작부 역할하고 조금 간극이 크지 않나, 그런 평은 들어봤어요. 그렇다고 해서 배우로서 도전할 가치가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지만 그런 평이 들려온다 하더라도 도전하지 말아야 할 역은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보통 사람과는 거리감이 있고 그래서 경외감을 느끼는 걸 텐데, 나와는 다른 천상에 있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저도 단점 있죠. 우리 영화의 대사처럼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죠.

-단점이 있다고만 얘기하고 뭐가 단점인지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는데요.

=단점이 많죠. CF로 데뷔했고 제가 연기를 전공으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연기 자체를 잘 몰랐고 발성도 초반에, 제가 지금보다 하이톤이었어요, 빠르고. 이런 부분을 조금씩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죠. 그 과정에서 그런 걸 고쳐가고, 단점들이 많죠.

-아름다운 사람이 하는 아름다운 연기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듯한 엉뚱함이나 잔인함, 냉혹함 같은 연기를 하면 더 아름다워지는 역설이 생기는데 본인이 연기를 할 때도 그럴 때 쾌감이 더 생기지는 않나요.

=맞아요.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이런 역이 지금까지 영화 가운데 없지 않았나요. 제대로 된 영화 구조 안에서 여배우가 다양한 역할을 펼칠 수 있는 게. 모르겠어요, 전 영화를 많이 모르지만. 앞으로도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 그런 가정을 했을 때 놓치면 안 되겠구나. 물론 부담도 됐고 고민도 했지만 꼭 잡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요. 배울 것도 많고 앞으로 배우면서 보여줄 것도 많으니까 (그게) 가장 큰 이유였죠.

-부담이라 하면.

=강하잖아요. 역할 자체가. 드라마에서 그런 역할을 많이 해봤지만 영화에서 보여준다는 건 색깔이 또 다른 거니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인데 이제까지 나를 보아온 팬들이 생각하면 많이 동떨어진 게 아닐까, 그런 걸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었죠. 예를 들어 <대장금>을 보셨던 분들이 이영애는 곱게 그런 거만 했으면 좋겠다 하는 분도 계시고 그런 거에 대한 생각이 많으니까 나름대로 생각도 많이 해보고 그런 생각의 시간이 있었죠.

-총으로 쏘고 달려가는 걸 볼 때 의외로 어울려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총을 쏜다고 감독님도 그러셨는데.

=재밌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어떻게 군대도 갔다 오지 않았는데 그럴 수 있냐고요. 처음엔 당연히 깜빡였죠. 그런데 감독님이 깜빡이면 안 된대요. 어떻게 해요, 감독님 말 들어야지. 감독님이 또 오버해서 그렇게 잘 얘기하시잖아요. 그렇게 한 건데. 남자분들이 액션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액션 연기라는 것도 따로 있는 것 같더라고요.

-본인이 소심하다고 했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인터뷰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대장금> 때는 인터뷰가 거의 불가능했는데.

=지금은 영화 끝냈잖아요. 그냥 끝낸 게 아니라 아주 시원하게, 한여름에 샤워한 심정이에요. <대장금> 때는 한여름에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거기서 일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니까 끝나고 몇달 동안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제가 힘들었으니까요. 제가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모아두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 상황이었으니까요.

-시원하게 끝냈다면 앞으로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끼치겠죠.

=글쎄, 아직은 가속이 붙지 않는 걸 보니까 이 느낌에 젖고 싶은, 금자의 분위기 내지는 관객의 반응도 즐기는 것 같기는 해요.

-이 만족스러운 경험이 또 다른 변화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까요.

=앞일은 아무도 모르죠. 더 좋은 센 역할이 오면 할 수도 있고 멜로도 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따뜻한 영화가 좋아요. 따뜻하고 휴머니티가 있는 영화가 훨씬 좋아요. 이번 영화도 맨 처음에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결국엔 따뜻한 휴머니즘쪽으로 갔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이렇게 변화를 준 게 좋더라고요.

-너나 잘하세요, 같은 대사는 표정과 일치하지 않는데 감독은 아마 거기에서 웃음과 아이러니의 매력이 나온다고 본 것 같은데, 본인이 보기에 자연스러웠는지 어색했는지 궁금해요.

=흔치 않은 표현들이잖아요. 일단은 재밌었어요. 모든 게 다 새로운 시도이고. 드문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위를 갈 것인가가 관건이었죠. 이런 표정이 좋겠다 했는데 모니터 보면 다른 거예요, 그런 거에 대한 조그만 차이, 디테일들. 감독님과 맞춰가는 과정이었죠. 저는 재밌었어요, 예상한 만큼. 제가 어떻게 나올 거라는 건 어떻게 봐도 또 봐도 재밌더라고요.

장소협찬 씽카이XINGK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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