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SICAF2005 가이드 [3] - 공식경쟁장편 5편
2005-08-10
글 : 김도훈
우리가 몰랐던 장편애니의 세계

디스트릭트

헝가리에서 날아온 저예산애니메이션(제작비 42만유로) <디스트릭트>는 올해 SICAF의 가장 혁신적인 장편일 것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8번 구역은 집시와 부패한 경찰, 갱들, 매춘부, 힙합과 랩 배틀(Rap-Battle)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가득한 할렘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난과 미움이 흐르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집시 소년 로메오는 젊은 소녀 줄리와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계급이 다른 두 사람의 집안이 철천지원수라는 것. 로메오와 친구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석유를 찾기로 하고, 선사시대까지 시간여행을 떠나 8번 구역에 유전을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시간여행에는 언제나 부작용이 따르는 법. 8번 구역의 유전이 만들어낸 엄청난 부는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미 만들어진 350여개의 표정을 이어붙여 캐릭터들의 감정을 묘사하는 <디스트릭트>는 일종의 컴퓨터 컷아웃(Cut-out) 애니메이션. 제작진은 다민족이 모여사는 부다페스트 빈민가에 대한 세밀한 소묘를 통해 한정된 표정을 지닌 캐릭터들에 놀랄 만큼의 진정성을 담아낸다. 동구권 애니메이션의 예술적인 접근법에 MTV적 감성을 혼합한 <디스트릭트>는 미국과 일본 외에도 창조적인 장편애니메이션이 끊임없이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5년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그랑프리 수상작.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2차대전 이후 연합군과 미군에 남북으로 분리통치되고 있는 대체역사 속의 일본, 연합군은 훗카이도의 중심에 끝없이 하늘로 뻗어 있는 미지의 탑을 세워놓았다. 탑을 동경하는 중학생 호로키, 타쿠야와 소녀 사유리는 비행기를 만들어 함께 탑으로 가자고 약속하지만 갑자기 사유리가 사라지고 만다. 꿈을 접은 채로 흩어져버린 소년들. 구름의 저편에 있는 장소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혼자서 기획·각본·연출·제작 등 거의 모든 부문을 전담하는 ‘자주애니메이션’ 작가 신카이 마코토의 두 번째 작품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마치 꿈속에서 보는 현실의 재현처럼 느껴진다. 낯익은 전철의 풍경, 시리듯 파란 하늘, 흔들리는 바람. 실사에 디지털 작업을 가해 만들어진 ‘신카이의 풍경’들은 저예산 1인 제작 공정으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캐릭터 작화에도 불구하고 깊은 감성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전작인 중편 <별의 목소리>(2002)가 지닌 기운을 그대로 장편으로 이어버린 듯,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의 센티멘털한 감정에서 조금 과잉된 느낌을 받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알로샤

먼 옛날 러시아의 마을 로스토프. (몽골인으로 여겨지는) 야만족 투가리안이 침략해오자 마을의 힘꾼인 알로샤는 사람들이 갹출한 금으로 덪을 놓지만, 결과적으로 로스토프는 파괴되고 금덩이마저 도둑맞는다. 이제 알로샤는 몇몇 동지들과 함께 금덩이를 되찾고 투가리안을 굴복시키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난다. 고전적 영웅담을 재구성한 보기 드문 러시아산 장편애니메이션. 러시아의 상징인 자작나무를 미장센으로 활용하는 예술적 감각과 마트료시카(러시아 인형)를 연상시키는 여주인공의 모습에서 러시아적인 대기와 유럽 애니메이션의 향취가 고루 묻어난다. 디즈니의 자장 안에서 탄생했으나, 그보다는 버릇없어 보이는 블랙유머가 제법 알싸하다.

뽀로로의 대모험

펭귄 뽀로로와 친구들은 독감에 걸린 산타클로스의 사절단이 된다. 그들의 임무는 사탕과 과자의 나라인 ‘쿠키캐슬’에 산타의 특별 토핑을 전달하는 것. 긴 여정에 오른 그들은 토핑을 노리는 겨울마녀와 세상을 얼려버리려는 초콜릿 백작의 음모에 맞닥뜨리면서 우정과 용기에 대해 배워간다. EBS에서 여러 재방되며 어린이용 학습만화와 완구로도 큰 인기를 모았던 <뽀롱뽀롱 뽀로로>의 첫 번째 장편OVA애니메이션. 극장용으로 제작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3D화면의 질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지만, 간결한 이야기 구조는 영화의 타깃인 아동의 눈높이에 잘 맞춰져 있다. 해외 판매를 위해 아일랜드 작가 에이든 히키가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하이디

잘 알려진 요한나 슈피리의 원작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장편애니메이션화한 작품. 양친을 잃은 고아소녀 하이디는 알프스의 목장에 홀로사는 괴팍한 할아버지에게 맡겨진다. 익숙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알프스의 자연을 벗으로 삼아 자라난 하이디는 할아버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병든 클라라의 말동무가 되기 위해 대도시로 돌려보내진 하이디. 도회지의 삶을 견디지 못한 그는 몽유병에 걸린 채로 다시 알프스로 돌아온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하이디>는 전통적인 2D애니메이션의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조금 낡아 보이지만 어린 시절 TV애니메이션을 보며 일깨웠던 아이의 감수성을 되살리기에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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