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SICAF2005 가이드 [5] - 애니스펙트럼 섹션
2005-08-10
글 : 주도연 (자유기고가)
애니메이션의 진화는 계속된다
<블랙모르의 섬>

SICAF 애니스펙트럼 섹션은 게임과 영화, 애니메이션을 융합하는 시도로 주목받는 머시네마 특별전과 단편선, 디지털 기법을 적용한 다채로운 애니메이션들을 만날 수 있는 애니테크, 밴쿠버필름스쿨 학생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밴쿠버필름스쿨특별전 그리고 픽실레이션, 로토스코핑, 컷아웃 등 다양한 기법과 오브제를 사용한 작품들이 모인 애니메이션의 신물결로 구성된다.

먼저 머시네마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의 특별전과 단편전이 눈에 띈다. 머시네마(machinima)는 machine+animation+cinema의 합성어로, 게임을 구동할 때 사용하는 게임 엔진을 이용해 작가의 의도대로 연출된 영상을 말한다. 머시네마가 아직 낯선 이들은 이른바 ‘3D게임’으로 분류되는 게임들의 플레이 도중에 등장하는 영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 듯(<바이오하자드>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중간중간 나오는 동영상들, 바로 그것이다). 게임의 오프닝과 엔딩 등 별도로 제작된 CG 영상이 아닌 게임 내에 생성된 인물과 사물 등의 오브젝트들을 사용해, 연출자의 의도에 맞게 재구성된 영상물이 머시네마라는 장르에 속한다. 게임 제작을 위해 이미 생성되어 있는 인물과 배경, 사물들을 사용해 별도의 카메라워크와 더빙만으로 영상을 만들 수 있으므로, 다른 방식의 애니메이션들에 비해 저렴한 제작비와 짧은 제작기간 등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다.

머시네마는 제작 관련 비용 외에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를 다른 방식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쉽게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벽에 부딪히고 있다. 텍스처 표현의 한계로 CG애니메이션에 비해 질감 등의 표현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고, 인물과 사물 등 오브젝트 움직임의 제한, 카메라워크와 시점의 제한 등 게임엔진 태생의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제작방식으로서 지닌 장점(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과 짧은 제작기간)과 그래픽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잠재된 표현 영역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은 머시네마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아나크로녹스>

이번 머시네마 특별전에 초대된 작품은 동명의 롤플레잉 게임을 원작으로 한 <아나크로녹스>(Anachronox, 133분). 이 작품은 2002년에 제작되었지만 1999년에 발매된 원작 게임에 사용된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지금의 게임과 비교하면 지독할 정도로 그래픽이나 움직임이 거칠고 투박하다. 그러나 게이머들 사이에 수작으로 평가받았던 원작 게임의 방대한 세계관과 설정을 그대로 차용한 작품의 이야기는 투박한 그래픽과 어울려 묘한 힘을 갖는다. 우주를 파괴하려는 음모에 맞서 행성과 행성을 넘나들며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슬라이 부츠와 동료들의 모험, 그리고 육체는 이미 죽었으나 영혼만이 남아 슬라이 부츠와 함께 행동하는 비서 파티마와의 미묘한 로맨스 등이 거친 그래픽 속에 나름의 매력을 풍기며 그려지고 있다.

CG애니메이션과 만날 수 있는 애니테크전에서는 장 프랑수아 라귀오니 감독의 <블랙모르의 섬>(Black Mor's Island, 85분)이 기다린다. 이 작품은 CG를 사용하면서도 늘 CG의 한계점을 이야기하던 라귀오니 감독의 2004년 작품으로, 아날로그의 느낌을 가득 느낄 수 있는 풍부한 색감과 움직임이 담긴 디지털애니메이션 작품. 1803년의 암울한 도시 콘월을 배경으로 밧줄 공장에서 죄수처럼 지내오던 15살 소년 키드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유명한 해적 블랙모르의 책에서 나온 섬의 지도를 밑천으로 모험을 떠나는 키드의 모험은 감독의 전작 <원숭이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펼쳐진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었다는 팀 밀러 감독의 <락피쉬>(Rockfish, 9분, 2004)는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풀어내는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깔끔한 영상을 선사한다. <딥라이징> <방탄승> 등의 영화에서 선보인 CG 효과와 게임 <헬게이트 런던> <워해머 40,000> 등의 CG 영상으로 유명한 스튜디오 블러(studio blur)의 노하우가 그대로 살아 있는 작품.

다양한 오브제와 기법들을 사용한 애니메이션들이 자리한 애니메이션의 신물결전에는 웃음과 허무, 섹스와 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작방식만큼이나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픽실레이션과 CG, 컷아웃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기법과 현란한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시티 파라다이스>(City Paradise, 7분40초, 2004), 로토스코핑과 카툰렌더링 방식을 혼합한 <생일잔치>(pinata, 4분12초, 2005) 등 프로그램에 선정된 11작품을 통해 현존하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기법을 만나본다고 할 정도로 다채로운 기법의 작품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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